[팜뉴스=김민건 기자] “난소암은 10차 이상 항암 치료를 하는데 자궁내막암은 쓸 수 있는 항암제가 단 2개 밖에 없었다. 젬퍼리(도스탈리맙)라는 치료 옵션이 하나 더 생기면서 생존율을 증가시킬 수 있게 됐고, 지금 의사들 사이에서는 면역관문억제제를 앞에서부터 쓸 것인지 아니면 뒤에 사용할 좋은 옵션으로 남겨 놔야 하는지가 이슈다.”
김희승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지난달 24일 팜뉴스와 인터뷰에서 최근 면역항암제 같은 신약이 개발돼 자궁내막암 치료에 새로운 돌파구가 생겼다고 말했다. 외과 종양 수술을 주로 하는 김 교수는 재발·진행성 자궁내막암 치료에서 세포독성항암요법을 비롯한 면역요법, 분자표적치료제 사용은 거스를 수 없는 변화의 물결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의 말처럼 지난 2022년 등장한 젬퍼리는 불일치 복구결함(dMMR)/고빈도 현미부수체 불안정(MSI-H) 자궁내막암 허가를 받은 뒤 빠르게 2차치료 단독 투여 급여까지 확보하면서 변화의 물결을 확산시키고 있다.
최근에는 1차치료에서 dMMR 여부와 상관없이 전체생존기간을 44.6개월까지 연장한 데이터까지 발표했다. 자궁내막암 3상 연구 중 유일하게 1차 표준치료 대비 통계적으로 생존율 개선을 입증했다. 김 교수는 “젬퍼리가 치료 패러다임을 아예 바꿨다”며 이런 상황이 의사들이 좋은 치료제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김 교수는 지난 4월 26일 대한부인종양학회(KSGO) 2025 콘퍼런스에서 ‘재발·진행성 자궁내막암에 혁신을 가져온 도스탈리맙’을 주제 발표했다. 인터뷰는 앞선 24일 서울 강남 노보텔 앰버서더에 마련된 KSGO 행사장에서 진행했다.
병원에서 수술을 끝내자마자 인터뷰 장소에 도착한 김 교수는 “이제 더 이상 수술을 할 의사가 많지 않다. 신약이 개발되면서 더 이상 수술에 관심을 보이는 의사는 줄어들고 약물 요법을 공부해야만 상황이 됐다. 환자들도 많은 공부를 하고 오기 때문에 의사로서 공부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지난 20년간 국내 자궁내막암 치료 현장은 변화라고 할 만한 게 없었지만 면역관문억제제 등장 이후 1~2년 만에 매우 빠르게 바뀌고 있다. 김 교수와 인터뷰를 통해 현실적인 자궁내막암 치료 이야기를 전한다.
다음은 김 교수와 일문일답.
▶면역항암제 젬퍼리를 중심으로 자궁내막암 치료의 변화를 발표하신다고 들었다. 이 주제로 발표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지금이 이 주제로 발표하기에 최적의 시기라고 생각했다. 가장 큰 첫 번째 이유는 최근 자궁내막암 환자가 깜짝 놀랄 정도로 늘었다는 사실이다. 전임의를 시작했던 2009년만 해도 산부인과 항암 치료는 자궁경부암과 난소암 중심이었고 자궁내막암 환자는 거의 없었다. 자궁경부암은 백신 예방 접종으로 환자가 많이 줄었고, 난소암은 비슷한 수준인데 자궁내막암은 '바다에 그물을 던지기만 하면 물고기가 잡힌다고 할 정도'로 많아졌다.
그러다보니 과거 환자들이 특정 암 치료를 받기 위해서 빅5 병원을 선호했던 구조가 지금 무너지고 있다. 대부분 의료기관에 자궁내막암 이전 단계 병변을 가진 환자들이 올 정도로 많아졌다.
유병률 증가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서구식 식습관으로 인한 비만이나 여성 호르몬 노출이 증가했고, 수명이 늘어나는 등 여러 요인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유병률이 많아지면서 진행성 자궁내막암이 굉장히 늘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자궁내막암 3~4기라고 하면 의사들이 “뭐하다가 이제 오셨냐”고 할 정도로 보기 힘들었는데 요즘에는 젊은 연령대에서도 많이 생긴다."
▶젊은 환자가 많아졌는데 특히 진행성 단계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 문제이군요.
“자궁 안 내막에 암이 생기니까 처음에 부정 출혈로 오는 분들이 많다. 이후에 부정 출혈이 있었지만 병원을 늦게 찾으면서 진행성인 경우가 늘어난 것이다. 2018년 자궁내막암 유병률이 10만 명당 2~3명이었는데 지금은 3~4배 정도 증가했다. 유병률이 증가한 만큼 진행성 질환도 많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 것이다.
과거 부정 출혈로 수술만 하고 끝났다면 지금은 진행성 단계에서 진단되는 환자가 많아졌기 때문에 여러 치료를 해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자궁내막암에서는 수술과 방사선 치료 이후 사용할 수 있는 항암제가 단 2개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번에 발표하게 된 계기가 환자 생존율을 증가시킬 수 있는 (젬퍼리라는) 치료 옵션이 하나 더 생겼고 치료 패러다임을 아예 바꿨다고 할 정도로 이슈가 되고 있어서다.”
▶젬퍼리 허가 자체가 이슈인 상황이라고 하셨는데, 자궁내막암 환자가 증가한 상황을 고려한다면 어떤 면에서 중요한 것인가요.
“항암 치료만 하던 때에는 3~4기 환자의 생존율 자체가 25~40% 정도 됐다. 치료하다가 더 할 게 없으면 의료진이나 환자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아니면 정말 70, 80년대 항암제를 써야 했다. 이전까지 수술하고 방사선 요법 이후에 쓸 수 있는 표준치료 2개 모두 백금기반 항암화학요법이었고 여기에 젬퍼리를 추가하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이 됐다. 가장 최신의 무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환자들의 삶의 질이 좋아지고, 더 오래 살게 되면서 의사들도 적극적으로 치료할 수 있게 됐다."
▶젬퍼리는 자궁내막암 1차치료에 허가만 돼 있고, 급여는 2차만 적용 중인데 진료 현장에서는 어떻게 쓰고 계신가요.
“원래는 1차부터 급여를 받아야 하는 게 맞다. GSK가 GARNET 연구에서 재발성∙진행성 고빈도 현미부수체 불안정(MSI-H)/불일치 복구결함(dMMR) 자궁내막암 1상만으로 젬퍼리 허가를 받았다. 경쟁 제품이라면 렌비마(렌바티닙)나 키트루다(펨브롤리주맙)를 쓰는 조합이 있지만 젬퍼리는 약을 하나만 써도 되고, dMMR이 있는 환자도 타깃한다는 장점이 있다.
경쟁 제품도 효과는 있지만 렌비마는 독성이 굉장히 강하다. 설사나 피부가 벗겨지는 부작용이 있다보니 안전성을 확보한 신약을 도입하게 됐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고, 환자들 사이에서 소문이 빠르게 났고 이런 내용을 알고 있었다.
재발 또는 진행성 자궁내막암에서 젬퍼리를 쓸 정도면 상대적으로 완치율이 높지는 않다. 그래서 의료진 사이에서 보험 기준에 맞춰서 항암 전략을 할 것인지 아니면 비급여라도 처음부터 좋은 약제를 쓸 것인지인가 이슈이다.
먼저 항암제를 쓰고 이후에 면역관문억제제(키트루다 또는 젬퍼리)를 사용하는 치료 전략을 짜야 하는지, 처음부터 좋은 치료제를 사용하는 전략을 쓰는 게 좋은지 선택해야 한다. 결론을 말하면 환자를 위해 좋은 게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좋은 치료제를 사용하나, 나중에 좋은 치료제를 사용하나 결과적으로 차이가 없다면 환자들이 가장 행복할 때가 언제인지를 생각했을 때 ‘재발 없는 기간이 길면 길수록 좋다’는 것이다. 그래야 여행도 가고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 재발하면 계속 치료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못할 수가 있다.
젬퍼리가 1차치료에 비급여지만 허가돼 있다는 것은 결국 환자들이 완치는 어려워도 재발 기간을 크게 늘려줄 수 있다는 것이고, 이번에 전체생존기간까지 개선한 상황이 됐으니 확실한 임상적 혜택이 있다고 생각한다.”
▶작년 12월부터 MSI-H/dMMR 바이오마커와 상관없이 정상형에서도 젬퍼리를 쓸 수 있게 적응증이 확대됐는데, 바이오마커 분류에 상관없이 쓸 수 있다는 것이 현재 상황에서 어떠한 의미가 있나요.
“PARP억제제 중 BRCA 유전자 변이나 HRD(상동재조합결핍)가 있는 경우 효과가 있는 경쟁 약물이 린파자(올라파립)였는데 다케다 제줄라(니라파립)가 먼저 BRCA나 HRD가 없어도 효과가 있는, 모든 환자가 쓸 수 있는 올커머로 비슷한 결과를 냈다. 이제 젬퍼리가 그런 상황을 만들었다. 3~4기 진행성 자궁내막암 환자가 바이오마커에 따라 얼마나 효과를 볼 수 있는지를 떠나서 젬퍼리를 사용하면 (생존) 혜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큰 무기가 됐다. MSI-H/dMMR이 전체 자궁암에서 25% 정도 밖에 안 되는데 유전적 결함 없이 진행한 75%에서 혜택을 입증한 것 자체가 굉장히 큰 이슈이다."
▶의료진마다 어떤 환자에게, 치료제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방법은 각기 다르겠지만 진행·재발성 자궁내막암에서 올커머이면서 재발을 최대한 늦출 수 있는 옵션이 생겼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네요.
“(재발 기간을 최대한 늦출 수 있다는) 이 부분이 환자의 삶의 질 측면에서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비용을 떠나서 ‘무엇이 환자를 위한 것인가’를 생각할 때 무진행생존기간을 늘리는 게 가장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 항상 허들이 되는 게 재정 독성(Financial Toxicity)이다. 처음에는 1차치료에서 젬퍼리를 못 쓰는 상황이 많을 줄 알았는데 요즘 환자들은 어떻게든 비급여로라도 사용해보려고 한다. 과거 환자와 달리 요즘에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진행성 환자 대부분 (젬퍼리를) 사용하고 있다.
다만 유지요법으로 가야 하는 치료이기 때문에 보통 1차치료만 2~3년 정도 써야 한다. 경제적 문제로 여기까지 치료를 못 받는 환자가 상당하다. 경제적 감당이 되는 환자들은 비용적인 부분까지 감안하지만 “선생님 도저히 돈이 없어서 여기까지만 할게요”라고 하는 환자들이 적지 않다.
예전에 비해서 돈이 없어서 이 약을 못 맞겠다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요즘에는 의·정 갈등을 비롯해 실손보험을 손본다는 얘기가 많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
▶비급여로 쓰고는 있지만 환자 접근성 개선을 위해선 급여 적용도 중요하겠네요.
“맞다. 현재 비급여로 쓰고 있지만 실손보험 가입이 많아져서 환자 부담이 줄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이번 5월부터 항암제 급여 적용도 가능할 것 같다고 해서 기대 중이다. 젬퍼리도 관련해서 (1차치료) 급여 적용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
▶ 현재 상황을 고려하면 급여 이후 임상 현장에서는 젬퍼리를 먼저 쓸 가능성이 높은가요.
“많이 사용할 것으로 본다. 키트루다와 젬퍼리는 임상 디자인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키트루다는 2년 유지요법이고, 젬퍼리는 3년간 유지요법으로 진행했다. 아무래도 경제적 비용 문제만 없다면 더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젬퍼리 혜택이 있으니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경우가 많을 것으로 본다.”
▶ 임상 현장에서 체감할 때 급여와 비급여 간에 차이가 크다고 생각하시나요.
“차이가 크다고 본다. 암 환자는 중증환자 산정특례를 받으면 본인부담금 5%만 내면 된다. 그렇지 못하면 건강보험 본인부담금이 20%로 늘어난다. 산정특례는 5년까지만 적용되는데, 예전에 아바스틴 투여 기준을 재발할 때까지 급여를 인정하도록 바꿨고 그 덕분에 환자들이 치료를 잘 받았다. 그런데 한 환자는 중증환자 적용 기간이 끝났다고 본인부담금을 5%에서 20%로 4배나 오른 경우가 있었다. 당시 전국에서 처음으로 이런 상황을 내가 경험했었다. 결국 환자는 아바스틴 사용을 중단했고 3달 뒤 재발했다. 지금 정부가 실손보험을 잡겠다고 하는데 만약 그렇게 된다면 비슷한 문제가 계속 나올 수 있다.”
▶같은 면역항암제이지만, 키트루다는 여러 암종에 쓰이고 젬퍼리는 특정 암종에만 쓰이는 데 두 면역항암제의 차이는 어떤 게 있나요.
“가장 큰 차이는 임상시험 설계와 환자군 모집에 있다고 생각한다. 콩하고 팥이 자라는 환경이 다른 것처럼 같은 계열의 약물이어도 임상시험에서 어떤 환자를 모집했는지, 어떻게 설계했는지에 따라서 임상에 어떤 환자가 참여했는지가 달라지고 약효를 해석하는 부분도 조금씩 다를 수 있다. 당연히 키트루다와 젬퍼리 임상에 참여한 환자들이 약간씩은 다를 것이다.
젬퍼리 RUBY 임상 연구를 좀더 의미있게 생각하는 것은 실제 임상 현장에서 만날 수 있는 환자군들을 연구에서 재현했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임상시험 환자를 모집할 때 보통은 기준이나 조건에 맞지 않으면 제외시킨다. RUBY 연구에서는 이런 환자들까지 포함해서 결과를 냈다. 어떻게 보면 제약사 입장에선 도박을 한 것인데 ‘잭팟’을 터뜨린 셈이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RUBY 파트 1 연구는 자궁내막암 1차치료에서 최초로 dMMR 바이오마커와 상관없이 기존 표준치료 대비 전체생존기간 연장을 입증했는데, 이 데이터에서 주목할 것이 있다면요.
“첫 번째는 이전까지는 조직 유형이 달라서 (치료제를) 못 쓰던 자궁내막암 환자까지도 치료 옵션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자궁내막암에는 여러 조직 유형이 있는데 대부분 자궁내막양 종양(자궁내막과 비슷한 암종)으로 한정된다. 앞에 말한 것처럼 이번 연구에서는 모든 종양 유형의 환자를 포함했다는 게 제일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두 번째는 전체생존기간 데이터의 신빙성이다. 임상시험에서 대상 환자를 선정할 때는 어떤 기준으로 잡았느냐가 의학적으로 중요하다. 왜냐면 생존 데이터 결과가 나온 이후에 임상적으로 어떻게 반영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표준치료인 항암요법 파클리탁셀+카보플라틴 전체생존기간 중앙값이 정확히 3년이었다. RUBY 연구는 파클리탁셀+카보플라틴을 대조군으로 한 다음 전체생존기간 중앙값을 3년으로 설정한 다음에 이 기준으로 환자 수를 산정했다.
젬퍼리는 항암치료 대비 전체생존기간 중앙값을 16.4개월 연장했는데, 대조군 데이터로 환자 수를 산정한 결과인 만큼 그대로 (임상 현장에도) 적용할 수가 있다. 보통 임상 결과가 잘 나왔다고 하는 것은 대조군 대비 상대적인 개선 효과를 보는 개념이다. RUBY 연구는 대조군 자체 데이터 기반으로 결과를 냈기 때문에 좀더 신빙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무작위 대조 임상이지만(RCT) 연구지만 리얼월드데이터(RWD)와 비슷한 결과를 낸 셈이네요.
“보통 임상을 할 때는 여러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서 이런저런 환자를 다 탈락시키기 때문에 삐뚤림(Bias)이 있을 수밖에 없다. RUBY 연구에서는 임상 시작부터 RWD 조건을 고려해서 설계하다보니 기존에는 탈락시켰던 다양한 환자들을 다 포함시켰다. 의사들이 평소에 어떤 환자에게 치료제를 사용할 때 ‘이런 이유로 약을 못 쓴다’ ‘이런 조건 때문에 예측이 어렵다’는 조건들을 사전에 임상에 반영한 것이다. 연구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키트루다를 썼는데 이후부터는 (젬퍼리로) 다 바꾼 상태이다.”
▶기존 항암치료 대비 전체생존기간을 16.4개월 연장한 44.6개월 결과를 냈는데, 기존에 4년 이상 생존한 환자에서 1년을 더 연장한 것이 실제로는 어떤 가치가 있는 건가요.
“중요한 것은 환자들이 단순히 ‘몇 개월 더 산다’는 숫자적인 개념이 아니다. 최근 신약 임상시험에서 전체생존기간 결과까지 확보한 연구가 거의 없다. 대부분 무진행생존기간만 늘리지 전체생존기간은 (대조군과) 비슷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번 연구 결과가 대단한 것이다. 전체생존기간을 늘렸다는 것은 환자들의 사망 위험을 줄이고, 생존 가능성을 높였다는 것이다.
환자들은 처음에 ‘완치가 될 수 있냐’를 생각하지만 치료를 받다 보면 ‘나중에 언젠가는 죽겠지만 지금은 치료를 덜 받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이게 무진행생존기간 개념이다. 엄밀히 말해 젬퍼리는 무진행생존과 전체생존기간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치료제라는 게 중요하며, 의료진 입장에서 설명하기 편하고 환자도 좀더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도 있다.”
▶전체생존기간 데이터에서 HR(위험비) 지표를 의미 있게 보는데요, 전체 진행성·재발성 자궁내막암 환자군에서 대조군 대비 사망 위험을 31% 줄이면서 HR 0.69를 기록한 것은 산부인과 질환 또는 자궁내막암 치료에서 가지는 의미가 적지 않겠네요.
“약제를 하나 더 추가했을 때 정해진 시점에서 재발이나 전체생존기간 관련 위험률 자체를 31% 줄였다는 결과는 굉장히 큰 이벤트이다. 다른 약제의 경우 위험비가 보통 0.8이나 0.9가 제일 많고, 통계적 신뢰구간을 겨우 넘겼다는 정도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한다.
발병 빈도가 높은 암종은 환자를 빨리 모집할 수 있고 직접비교(Head to head)한 연구가 많기에 의사들이 공통적으로 통용할 수 있는 기준이 있다. 하지만 자궁내막암은 다른 암종보다 상대적으로 유병률이 적다보니 RUBY 연구 같은 규모로 하려면 전 세계 기관이나 의료진이 달라붙어야 한다.
RUBY 연구 임상 설계 자체가 항암을 받지 않은 환자, 이전에 치료 반응이 좋지 않았던 환자를 대상으로 해서 긍정적인 결과가 나온 영향이 있을 수 있지만, 무진행생존과 전체생존기간 위험도 모두를 일관되게 낮췄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전체생존기간 곡선 그래프를 보면 36개월 시점에서 젬퍼리 투약군 생존율이 54.9%이고, 위약 대조군이 42.9%인데요. 3년 시점에서 12%p 차이가 났다는 것은 앞서 말한 HR 0.69 감소와 비슷한 가치를 가진다고 볼 수 있을까요.
“투약군과 대조군 간에 생존율이 벌어졌다는 것을 볼 때는 실질적으로 통계적인 유의성이 있느냐가 제일 중요하다. 예를 들어서 환자 수가 적은 상황에서 12%p 라면 나타날 수도 있는 결과이다. 하지만 많은 환자들이 3년 시점에 대조군 대비 12%p나 생존했다는 것은 실제 치료에 많은 도움이 된다는 의미이다.”
▶임상 8~12개월 사이에 젬퍼리 투약군과 대조군 간에 생존 곡선이 점점 벌어지는데, 8개월까지는 초기 치료 효과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나요.
“항암화학요법은 보통 3주기, 6주기, 18주기 이렇게 4달 정도 함께 진행한다. 임상 초반 실험군과 대조군 간에 생존 곡선 차이가 크지 않은 것은 세포독성항암제 효과이다. 하지만 이후부터 생존 곡선이 벌어지는 것은 항암요법 이후 유지요법으로 젬퍼리를 사용했는지 여부에 따른 차이다. 초기 반응과 달리 유지요법이 생존율 향상에 미치는 영향으로 차이가 난 것이다. 다만, 이전까지는 항암제 효과가 주로 작용한 환자가 상당수 있었다."
▶그렇다면 젬퍼리 효과가 좋은 환자군을 예측하는 방법은 없나요.
“아직은 MSI-H/dMMR 관련한 바이오마커만 있다. 나 또한 젬퍼리를 겪은 지 1년 밖에 안 됐다. 이전에 키트루다를 쓸 때는 6회 투약한 이후 유지요법에서 최대한 효과를 가져가기 위해 중간에 수술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기대와 달랐다. 환자에서 암이 줄었던 이유가 항암제 효과였던 것이다. 그러니깐 통계를 보고 무조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효과가 진짜 있을지 알기 위해서는 경험을 쌓아야 한다.
비슷한 경우로 항암제와 아바스틴 표적치료를 병용한 경우가 있었다. 유지요법 효과를 보기 위해서 썼는데 항암 치료 이후 오히려 나빠지는 분들이 있었다. 유지요법 효과가 좋은 환자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고민했었고 당연히 바이오마커는 없었다. 3~4년 경험을 쌓고나서 전수 조사를 해보니 유지요법으로 정확히 13~14회 정도 사용한 환자가 오래 생존했다.
즉, 항암 효과가 컸던 환자는 13~14회 투약까지 치료를 이어가지 못하고 재발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래서 아바스틴을 쓰는 환자는 10회까지만 잘 넘기자고 얘기한다. 젬퍼리도 임상적 경험이 쌓이면 비슷한 기준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RUBY 연구에서 전체 환자군에서 좋은 반응을 확인했는데 고위험군도 포함한 결과인가요.
“고위험군을 다 포함한 결과이다. 앞서 자궁내막암은 여러 유형의 조직을 가진 환자가 있다고 했는데 그중에서도 장액성을 포함한 기타 조직이 있는 경우 확실히 항암 반응이 떨어지는 환자가 많다. 그리고 임상에는 항암 치료를 하지 않은 환자만 포함한 게 아니고 백금기반 항암화학요법을 하고 6개월 이후 재발한 경우도 있었다. 어떻게 보면 고위험군으로 분류할 수 있는 환자들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이오마커가 없는 환자를 포함했다는 점이다. 아쉬운 것은 여러 유형의 고위험군에 대한 하위 분석 결과가 나오지 않은 것이다. 여러 데이터를 살펴보고 싶은데 아직 공개하지 않고 있고 ‘잘 나왔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다.”
▶환자들이 항암치료를 받은 대조군 대비 더 오래 생존하고, 반응을 보인 것은 흔히 말하는 ‘면역항암제 특성’이 나타난 결과로 볼 수 있나요.
“항암화학요법하고 면역항암제를 같이 사용했을 때 나타난 시너지 효과라고 생각한다. 암 세포가 우리 몸에서 성장하는 가장 큰 원인 중에 하나가 면역시스템이 암세포를 친구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항암화학요법과 면역항암제를 같이 사용하면 세포독성항암제가 암세포를 직접 죽이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항원을 발현해 종양미세환경을 바꾼다. 그 다음에 면역관문억제제를 사용하면 암세포가 친구가 아니라는 것을 더 잘 인식해서 면역반응을 활성화하는 상태가 된다. 세포독성항암제와 면역항암제 각각 역할과 기전이 있지만 이 둘을 병용하는 것은 이런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면역항암제 사용으로 인한 부작용은 어떤가요. 중점적으로 관리하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한 환자가 심한 부작용을 겪은 적이 있는데 굉장히 드문 경우였고 실제로는 거의 없다고 본다. 면역항암제 부작용은 갑상선이나 췌장 같은 내분비선에서 가장 많이 생긴다. 뇌하수체도 영향을 받아서 기능 저하나 당뇨가 생기기도 한다.
렌비마 복용 환자 중에 죽을 정도로 힘들어 하는 경우가 있다. 자궁내막암 첫 번째 면역관문억제제인 키트루다가 처음에 나왔을 때 가장 주목받았던 것도 효능을 떠나 안전성 이슈가 자궁내막에서 가장 컸기 때문이었다.
세대별 치료제를 쉽게 설명하자면 1세대가 VEGF 표적치료제, 2세대 PARP억제제, 3세대는 면역관문억제제, 그리고 4세대를 요즘 가장 유행하는 항체약물접합체(ADC)라고 할 수 있다. PARP와 면역관문억제제의 가장 큰 장점이 값은 비용이 들어가는 약인데도 환자들이 덜 괴로워 한다는 부분이다. ADC는 약효는 좋지만 복잡한 부작용 관리와 새로 경험해야 하는 안전성 이슈가 너무 많다.”
▶ADC 부작용은 세포독성 항암제 영향 때문인가요.
“그럴 가능성이 있지만 ADC라는 약물 자체 특성상 영향이 있는 것 같다. 최근 다양한 임상에서 ADC를 계속 경험하고 있는데 PARP나 면역관문억제제를 사용할 때 보다 부작용 발생 보고가 더 많다. 일주일에 10건 정도 발생했다는 연락을 받고 있다.
현재 항암 치료에서는 효과만이 중요한 게 아니다. 과거에는 통계적 유의성만 확보하면 주목받았지만 이제는 임상시험 초기 단계부터 ‘독성을 얼마나 조절할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본다. 환자가 견딜 수 있는 수준인지를 평가하는 게 중요한 기준인데 면역관문억제제는 독성이 순한 편이다.”
▶젬퍼리 유지요법도 언젠가는 효과가 떨어지는 시점이 올 텐데요. 그때는 다시 항암화학요법으로 돌아가는 방법 밖에는 없나요.
“그때쯤이면 ADC 약제를 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지금 유럽이 전 세계 임상시험 대부분을 주도하고 있다. 자궁암 분야에서도 면역항암제와 ADC 중심으로 신약 개발을 연구 중이며 ADC 임상 120개 정도가 동시에 진행 중이다. ADC 임상 중 부인암이 30~40개 정도인데 이 중에서 새로운 신약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임상 42개월 시점에서 젬퍼리와 항암화학요법 투여군 모두 생존 곡선이 떨어지는데 중간 분석 결과라는 것을 생각하면 향후 추가적인 데이터를 봐야 할까요.
“장기추적 결과는 계속 지켜봐야 한다. PARP억제제도 처음에 생존 곡선 그래프가 대조군과 차이가 나지 않는 것 같았는데 7년간 추적관찰 했더니 다시 벌어지면서 그 차이를 유지했다. 젬퍼리도 대조군과 생존 곡선 차이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가 중요하며, 현재까지 데이터만 봤을 때는 (장기 효과 유지) 가능성이 꽤 높다고 본다.”
▶개인적 경험 등을 토대로 젬퍼리 생존기간 연장 효과가 어느 정도 수준까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시나요.
“지금 상황에서 예측하기란 굉장히 어렵다. 의료진이 임상에서 얼마나 경험을 쌓느냐가 관건인데 안타깝게도 한국 의료진은 RUBY 연구에 참여를 못 했다. 파클리탁셀, 카보플라틴과 면역관문억제제를 병용한 큰 연구가 두 개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한국 의료진이 빠졌다. 국내 의료진의 실제 사용 경험이 부족하다. 허가 이후부터 비급여로라도 사용 경험을 쌓고 있지만 젬퍼리+항암화학요법 병용 경험은 1년 밖에 되지 않았다.”
▶현재 진행성 자궁내막암 환자가 새롭게 진단된다면, 치료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첫 번째는 수술이 가능하다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종양을 축소시키는 것 자체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젬퍼리를 써야 하는 환자라면 암이 너무 많이 퍼져 있기 때문에 대부분 수술이 불가하다. 수술을 해도 되지만 항암만 하던 시대에는 어차피 방법이 없었고, 항암요법 이후 상태가 나빠지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서라도 수술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과거 자궁내막암은 쓸 수 있는 항암제가 2개만 있었고 선택지라고는 수술 외에는 없었기 때문에 진단하고 수술하고, 재발해도 수술하고 계속해서 수술을 했다.
그러나 면역관문억제제 도입 이후는 일단 약부터 쓰고 있다. 이렇게 트렌드가 바뀐 것은 임상연구를 통해 면역항암제가 진행성 자궁내막암 환자 대상으로 입증한 결과들이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더 좋은 예후를 기대할 수 있기에 후향적으로 수술할 이유가 없어졌다.
10년 전만 해도 ‘명의’라고 하면 수술 잘하는 사람을 얘기했다. 그런데 요즘에는 의사가 얼마나 많은 약물 요법을 할 수 있고, 얼마나 많은 임상 연구를 진행하고 있냐가 더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실제 환자들이 ‘어떤 치료 옵션을 가지고 있냐'고 물어볼 정도다. 의료진도 여기에 맞춰 공부를 해야 하는 시대이고 진행성 자궁암인 경우에는 저처럼 수술을 할 일이 많이 없어진 것이다.”
▶앞으로 의료진 중에는 수술 대신 약물 치료를 중심으로 진료하는 경우도 있겠네요.
“미국이 현재 그런 상황이다. 산부인과는 과거부터 수술과 항암 치료를 같이 한 유일한 과이며 이런 상황은 미국 산부인과에서도 같기에 여전히 쓸 수 있는 약물이 많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라도 신약 파이프라인이 많아져야 한다.
여성암 신약을 개발할 때 대부분은 유병률이 많은 유방암부터 시작해서 자궁내막암으로 확대하는 경우가 많다. 작년과 재작년 미국 학회에 참석했을 때 이런 변화를 직접 느꼈다. 같은 부인암을 진료하는 산부인과 의사들 사이에서도 약물 치료를 중심으로 하는 종양 내과(Medical Oncology)와 수술을 많이 하는 외과 의사(Surgeon)로 역할이 나뉘고 있었다.
작년에 또 재밌었던 것이 수술하는 의사 중에서도 로봇수술이나 합병증이 적은 양성 수술을 하는 그룹으로 다시 나뉘고 있었다는 것이다. 외과적 암 수술을 하는 의사는 정말 더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한국도 비슷하다. 젊은 교수들 중에서 암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가 있는지 찾기 전에 먼저 수술에 관심이 있는지를 봐야 하는 정도다. 이제 내 밑으로는 더 이상 수술할 의사가 없는데 개발되거나 개발 중인 신약 효과가 좋아지면서 의사들이 약물 치료를 공부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부인암에서도 수술하는 의사가 점점 적어지고 약물 치료를 중심으로 하는 의사가 많아지고 있다.
아직까지는 수술을 할 줄 아는 의사 역할이 필요하다. 환자들도 ‘수술을 잘 하는 의사’를 먼저 찾고 있다. 다만, 암을 수술로 제거하는 것에서 생물학적(Biology) 특성을 이용하는 상황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인식도 10년 안에는 바뀔 것으로 생각한다.”
▶국내 자궁내막암 환자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주의하거나 경각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어떤 게 있을까요.
“현재 자궁내막암은 여성암 중 3~4위권에 해당하며 앞으로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무엇보다 조기 발견과 예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궁경부암 같은 경우 국가예방접종 백신을 맞을 수 있고, 자궁내막암은 비교적 간단하기 때문에 월경이 조금만 이상하다 싶으면 병원에 가면 된다. 부정 출혈이 조금이라도 있는 것을 ‘요즘에 피곤한가 보다’하고 지나치면 갑자기 암으로 진행할 수 있어서 본인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두 번째는 다낭성 난소 증후군(PCOS)을 주의해야 한다. 비만인 경우 배란이 잘 안 되는 난소에서 이런 패턴이 있다. 아시아에서는 또 마른형 PCOS가 많다는 특징이 있다. 배란이 이뤄져야 호르몬이 내려가고 올라가고 하는데 고용량 에스트로겐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다보니 자궁내막이 계속 자극을 받아서 결국 암으로 진행한다.
여성분들은 본인의 몸에 나타나는 신호를 잘 챙겨야 한다. 아직 산부인과 진료를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은데 몸에서 보내는 신호만 잘 챙기면 자궁내막암은 아주 드문 사례를 빼고는 충분히 관리할 수 있다.”
▶ 자궁내막암 환자분들이 교수님께 궁금해하는 게 많을 것 같습니다. 환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신가요.
“자궁내막암은 아주 드문 종양의 유형이 아닌 이상 조기 진단이 가능하다. 60~70%는 1기에 발견하는데 수술로 끝날 수 있다. 본인 몸의 변화를 좀더 신경쓴다면 진행성으로 진단받을 일이 거의 없다는 얘기이다. 진행성 환자분들도 치료 옵션이 많아진 것이 사실이니 절망하시거나 원망하지 않으셨으면 한다. 암이라는 게 모든 환자가 똑같은 상황일 수 없다. 그동안 의사들도 어떻게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많았던 게 자궁내막암이었는데 이번에 젬퍼리 생존기간 개선을 기회로 좀더 많은 치료 옵션을 드릴 수 있을 것 같다. 희망을 가지시고 치료를 받으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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