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뉴스=김민건 기자] "주문, 이 사건 진정은 각하하지만 생명과 직결된 신약(新藥)은 건강보험에 신속하게 등재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할 필요성이 있다." 지난해 급성림프구성백혈병 진단 아동이 세상을 떠난 뒤다. 이달 12일 국가인권위원회 아동권리위원회가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
인권위는 이날 '생명과 직결된 신약은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동시에 심사·결정해 허가 후 시판되는 즉시 환자에게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임시 약값으로 우선 치료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그 이후 제약사와 건보공단이 최종 약값을 확정해 차액을 정산하는 등 제도를 도입, 식약처 허가를 받은 신약은 건보 등재 이전이라도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권위는 진정은 각하하면서도 신속한 신약 등재 제도 필요성을 강조했다. 팜뉴스는 이번 인권위 결정문을 통해 생명보다 중요한 '약'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국가는 국민 건강과 생존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인권위 결정문을 보도한다.
▶"생명에 대한 권리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
한국노바티스는 지난 2021년 3월 3일 '허가-급여평가 연계제도'를 이용해 CAR-T 항암 신약 '킴리아주(이하 킴리아)'의 건보 급여 등재를 심평원에 신청했다. 그러나, 2021년 7월 14일(제5차 암질환심의위원회, 이하 암질심)에는 안건으로 상정조차 되지 않았고, 같은 해 9월 14일 제6차 암질심에서야 상정됐다. 급여기준이 설정된 것은 그 뒤인 10월 13일 제7차 암질심에서였다. 한국노바티스가 추가 재정을 분담하는 조건이었다. 그 사이에 급성백혈병 환자들이 죽어갔다.
문제는 건보 급여 기준만 설정했을 뿐이었다는 점이다. 실질적 건보 적용을 위해선 급여등재 결정, 약제급여평가위원회 상정·심의(이달 1월 13일 급평위에서 급여 적정성 인정), 건보공단 약가협상과 복지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 심의와 고시 절차가 남아있다.
환자단체는 인권위에 보건복지부 장관을 대상으로 "국가기관의 백혈병 치료 신약 건보 등재 지연은 급성림프구성백혈병·림프종환자 200여명의 행복추구권, 생명권 등을 침해하고 있다"며 진정서를 냈다.
인권위는 "생명은 한 번 잃으면 영원히 회복할 수 없고,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 존재이며, 존엄한 인간 존재의 근원"이라는 생명권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인용한 결정문을 냈다. 인권위는 "인간 생명과 이에 대한 권리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으로 국가는 보호·보장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킴리아를 비롯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는 고가약 건보 등재 문제에 국민 건강과 생명 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고 일침한 것이다. 그 이유는 사회보장제도인 '건보' 도입 목적과 헌법 등을 들어 국가 책임을 명확히 했다.
인권위는 "건보제도는 질병과 부상이라는 불확실한 위험에 대비하고 실제 질병 등으로 과다한 의료비를 일시적으로 지출 시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국민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고액 의료비 부담을 해소하기 위한 사회적 연대 성격의 '사회보장제도'"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인권위는 건보 제도 도입 취지, 헌법과 관련 법령에서 규정한 생명권, 헌법재판소 결정 등을 종합해 "적어도 정부는 기존 의약품보다 현저히 안전성 또는 유효성이 개선된 '생명과 직결된 신약'은 가능한 모든 수단을 활용해 환자의 생명권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결론내렸다.
인권위는 "특히, 국가는 국민이 치료할 약제는 있으나 경제적 이유로 환자가 사망하는 과정에 이르지 않도록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메디컬 푸어로 전락하는 국민, 복지부는 앵무새?
이번 사건 진정은 '국가기관의 백혈병치료 신약의 건강보험 등재 지연'이 발단이다. 실상 킴리아 뿐 아니라 많은 혁신의약품이 건보 등재를 기다리고 있다. 인권위 결정문에는 메디컬 푸어(medical poor)'나 현 건보 제도의 문제점이 드러나있다. 그러나 복지부는 규정과 제도만 운운한 부분이 나타나 있다.
킴리아는 세계 최초 CAR-T 치료제이자 국내 첫 허가된 첨단바이오의약품이다. 개인 맞춤형 유전자 치료제로 단 1회 투약으로도 치료 효과가 있다. 일명 '원샷(one-shot)' 치료제로 불린다. 작년 3월 25일 식약처 허가를 받았다.
킴리아 1회 투약으로 말기 급성림프구성백혈병 환자 10명 중 8명, 말기 림프종 환자 10명 중 4명이 장기 생존이 가능하다. 효과가 좋은 만큼 초고가다. 이미 보험이 적용되는 미국에서는 약 5억4500만원, 일본은 약 3억4000만원이 책정됐다. 국내에서는 국민건강보험(이하 건보)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그 결과 비급여로 약 4억6000만원(삼성서울병원 기준)에 사용할 수 있다.
복지부는 이번 진정에 대해 요양급여 대상은 선별급여제도에 따르고, 그 여부는 건보 관련 법령에 따른다고 답해왔다. 그 이유로 ▲대체약제 대비 임상적 유용성 개선 ▲개선된 임상적 유용성 대비 추가 소요비용에 따른 비용 효과성 ▲외국 등재 여부 또는 약가 수준 ▲건보 재정상황 등을 종합 평가·결정한다는 규정을 들었다.
복지부는 "신속한 보험 적용을 위한 위험분담제도, 경제성 평가 자료 면제 제도 등 선별등재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환자 접근성 향상에 노력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기존 입장에서 달라진 부분이 전혀 없는 답변이다.
인권위는 환자단체와 복지부 입장을 모두 들어 환자단체 진정을 기각했다. 그 이유는 "의학 분야 관련 부처 전문성 등을 감안해 진정사건으로 조사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판단이었다.
중요한 것은 진정 기각이 아니었다. 인권위는 이보다 우선하는 중요한 의견을 내놨다. 바로, "안전성이 검증되고 효능이 생명과 직결된 신약이 일반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범위에서 가격이 형성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결정이다.
인권위는 "복지부는 신약의 신속 등재를 위해 위험분담제도, 경제성평가 면제제도, 허가-급여평가 연계제도, 약가협상제도 생략 제도 등을 운영함을 주장하지만 이같은 제도들은 기본적으로 선별등재제도 원칙 아래 운영하는 것"이라고 했다.
"공식적으로 건보 등재가 완료되지 않는 한 건보 재정을 통해 신약 치료를 받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고 짚은 것이다.
현재 임상시험용 의약품을 치료 목적으로 무상 사용하는 제도가 있다. 하지만, 식약처 허가 이후부터 건보 등재 전까지 생명권을 보호하는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백혈병 환자들은 적금 해지, 주택 등 부동산 매각, 대출부채 방법으로 약값을 마련하고 있다. 메디컬 푸어로 전락하는 실정이다.
인권위가 "킴리아를 건보에 신속히 등재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국민 생명권과 행복추구권 등 기본권 보장 차원에서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배경이다.
킴리아와 같이 대체 불가능하거나 치료적 위치가 동등한 제품 또는 치료법이 없는 항암제, 희귀질환 치료제로 생존을 위협할 정도의 심각한 질환에 사용하는 신약은 건보 등재 이전이라도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권위는 "아무리 건보등재를 신속히 진행하더라도 2022년 3월경이 되어야 건보 등재가 완료될 것이다. 약값을 지불할 능력이 되지 않는 저소득층 환자, 민간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환자는 신약 혜택을 받지 못하고 상당수 건보 등재를 기다리다가 사망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실손의료보험 상당수 연간 6개월간 5000만원 한도 보장, 재난적 의료비 지원제도 연간 3000만원 한도로 킴리아 약가를 부담하기에는 크게 부족하다"고 현실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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