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의 ‘식약처 패싱’ 현상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식약처 인허가 ‘심사인력’의 부족으로 인해 신약 임상 관련 불확실성은 물론 소요시간이 가중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럴때마다 식약처는 의사 인력 충원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근거를 들며 이 같은 지적을 반박해왔다. 하지만 팜뉴스 취재진은 식약처의 이런 해명을 뒤엎을 수 있는 정황이 곳곳에 담긴 문서를 단독 입수했다. [심층기획]으로 ‘식약처 의사 심사관’ 현황을 단독 보도한다.

그동안 식약처는 의사 심사관 인력 부족이 거론될 때마다 의사 충원 계획을 발표해왔다. 이의경 식약처장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의사 자격이 있는 직원 숫자를 2.5배로 늘리고 전문 인력을 확충해 식약처의 전문성을 높이겠다”며 “현재 11명인 의사 인력은 2022년까지 25명으로 증가시키겠다”고 말했다.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서경원 의약품심사부장 역시 “현재 식약처의 의사 심사인력은 12명이 근무하고 있다”며 “올해안으로 두 배 수준인 23명으로 증원할 계획을 추진중에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팜뉴스 취재진이 바른미래당 최도자 의원실로부터 단독입수한 2014~2019년 11월 현재까지 ‘최근 5년간 식약처 심사관 현황’에 따르면 이의경 식약처장과 서경원 심사부장의 발언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이 자료에 따르면 2019년 11월 현재 식약처 가급심사관(의사)의 총 정원은 ‘20명’이다. 실제 근무 의사 심사관은 12명이다. 심지어 의사 심사관 8명은 올해 무더기로 퇴사했다. 앞서 식약처 이 처장과 서 부장은 ‘무더기 퇴사 인원’을 고려하지 않고 현재 근무 의사수를 기준으로 삼아, 마치 의사 심사관을 두 배 이상 늘릴 것처럼 발언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이유다.

 

심사관 연도별 현황(단위: 명, 2019.11.06. 현재)

문제는 또 있다. 강윤희 식약처 의약품심사부 종양약품과 심사관은 “식약처가 전문성 강화를 위해 2016년 임상심사위원제도를 만들었다. 하지만 해마다 정원을 채운 적은 거의 없었다”며 “식약처는 최소한의 정원을 채우고자 하는 의지가 약하다. 사직자가 속출하는데도 올해 역시 의사 심사관 채용공고를 한번밖에 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최근 5년간 식약처 심사관 현황’에 의하면 2015년(3명)에서 2016년(10명)으로 의사 심사관 의사 정원수가 대폭 늘어났다. 2017년(16명), 2018년(21명), 2019년(20명)에도 증가세를 보였다.

하지만 퇴사자 역시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2017년(3명), 2018년(3명), 2019년(8명)에 의사 심사관이 퇴사한 점을 감안하면 실근무자수는 더 줄어든다. 전체 심사관 중 의사 심사관의 점유율 역시 2017년(6%), 2018(7%), 2019년(6%)로 한자리 수대에 머물렀다.

이에 대해 식약처는 “의사 인력의 우수한 인재 채용을 위해 노력했지만 근무지 보수 등의 문제로 인력 채용에 어려움이 있었으며 올해의 경우 지속적 결원 발생에도 예산 부족 등의 사유로 충원하지 못한 상황이었다”고 해명했다.

또 “현재 12명의 인원이 근무 중이다. 내년에는 예산이 증액돼 의사 등 심사관 인원을 증원해 신속히 채용할 계획이다. 국공립 병원과의 업무 협약을 통해 외부 임상 전문가를 활용할 계획도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연도별 재직기간 역시 다른 심사 인력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었다. 가급 의사 심사관의 평균 재직기간은 2016년에 1년5개월, 2017년 1년9개월, 2018년 1년7개월, 2019년 현재 2년 7개월을 기록했다. 하지만 다른 직역(나~마급 심사관, 에디터, 심사보조원)의 평균 재직기간은 같은 기간인 2016년 3년7개월, 2017년 3년3개월, 2018년 3년2개월, 2019년 3년11개월로 의사 심사관의 재직기간보다 길었다.

이에 대해 강윤희 심사관은 “임상계획과 약물이상반응(SUSAR) 검토 등 과중한 업무가 늘면서 수시 충원이 필요했지만 식약처의 방관으로 평균 재직기간이 떨어졌다”고 증언했다.

이에 대해 식약처는 “식약처 임상시험 계획 승인현황을 보면 연도별 승인건수가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며 “업무 과정으로 인해 의사 심사관 평균 재직기간이 현저히 낮다고 보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다만 한정된 인원으로 심사 업무를 수행하다보니 전공분야가 아닌 질환에 대해 심사하는 경우가 있어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며 “2020년에는 항암제 등 임상시험이 다수 접수되는 질환이나 전문가가 없는 분야에 대해 의사 인력을 충원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처럼 식약처 내부에서 의사 인력의 전문성이 존중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신약의 경쟁력’과 ‘의약품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이다. 특히 최근 유전자치료제나 세포치료제 등 바이오의약품 개발이 ‘대세’로 자리잡은 상황에서 병리학을 전공한 의사 심사 인력의 부족은 수년 동안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 온 것.

실제로 식약처가 허가한 유전자 치료제 ‘인보사’는 바뀐 주성분으로 인해 최근 품목 허가가 취소됐고, 국산 세포치료제 22품목 중 6개는 품목이 취하됐다.

이에 대해 약업계 한 관계자는 “세포치료제에 대한 ‘쉬운 허가’를 남발했지만 정작 소득은 없었다. 신약과 세포치료제에 대한 허가의 전문성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신약도 다르지 않다. 국산 신약 1호 ‘선플라주’를 시작으로 신약이 줄줄이 쏟아져나왔지만 해외 규제당국의 허가를 받은 신약은 손에 꼽을 정도다. 대부분의 신약들이 매출 100억을 넘기지 못했다. 신약과 세포 치료제의 허가당국인 식약처의 ‘전문성’ 수준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는 배경이다.

또 앞서 기대를 모았던 한미약품의 29호 신약 올리타는 지난 2016년 임상시험에서 중증 이상반응으로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부작용 이슈에 휩싸였다. 당시 식약처는 올리타 복용과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허가 과정에서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2018년 한미약품은 경쟁 제품인 아스트라제네카 ‘타그리소’의 시장 선점을 이유로 결국 신약 개발을 중단했다.

한미약품은 시장 경쟁력이 신약 포기의 가장 큰 이유라고 설명했지만 사실상 임상 과정에서 일어난 사망 사건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식약처가 ‘신약 지키기’에 실패한 것이다.

미국의 의약품 심사인력은 식약처와 차원이 다르다. 식약처의 바이오의약품 품목당 심사인력은 5명으로 FDA(40~45명)의 9분의1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FDA는 1개 품목 심사를 위해 10개분야로 나눠 40여명의 전문가가 참여한다. 반면 식약처는 3개분야에 심사인력은 6명에 그친다.

강윤희 심사관은 “의사들이 임상시험, 허가, 약물부작용 등 다양한 임상적 판단이 필요한 분야에 골고루 분포돼 있으면 그 만큼 제대로된 약이 허가를 받을 확률이 높다”면서 “하지만 식약처는 의사 수도 적을뿐더러 대부분의 임상 의사들의 업무가 임상계획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것과 약물이상반응(SUSAR) 검토에 치우쳐져 있는 상황이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식약처 임상 의사들은 NDA(신약허가신청) 관련 심사에 전혀 관여하지 못하고 있다”며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허가 심사를 할 수 없다. 허가 심사 자체가 행정적인 절차를 보완하는 것에 치우쳐진 이유다”고 비판했다.

강윤희 심사관은 식약처 내부에서 전문성을 존중하지 않는 분위기가 이러한 문제점들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 심사관은 “식약처 내부에 의사의 전문성을 존중하고 활용하는 마인드나 시스템이 없다”며 “임상계획을 검토해도 평가원 내에서 임상전문가가 아닌 연구관이나 과장에게 보고하고 결재받는 시스템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런 행정주의적, 관료주의적 시스템이 아니라 전문가들이 Peer review를 통해 함께 검토하는 시스템이 되어야 획기적인 신약에 대한 심사가 유연해지고, 부적절한 허가는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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