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성은아 박사
사진. 성은아 박사

솔리리스(성분명: 에쿨리주맙)는 희귀질환에 사용되는 항체 약물로서 일종의 면역 억제제이다. 희귀질환이란 말 그대로 희귀한 질환, 즉 유병률이 낮거나 유병률이 파악되지 않은 질환이다. 솔리리스는 2007년에 처음 발작성 야간혈색소뇨증에 대하여 미국 FDA의 승인을 받았으며, 이후 다른 몇 가지 아주 희귀한 질환에 대하여 사용하도록 승인을 받았다.

희귀질환 치료제라고 해도 환자 수를 비교적 많이 확보한 약들도 있고, 무늬만 희귀질환 치료제일 뿐 널리 사용되는 약들도 있다. 솔리리스는 희귀질환 중에서도 아주 희귀한 질환에 대하여 사용되는 약인데도 불구하고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어서 전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매출을 올리는 약들 중 하나이다.

솔리리스는 ‘최초’라는 타이틀을 여러 개 가진다. 솔리리스는 최초의 발작성 야간혈색소뇨증 약이다. 질병관리청의 통계에 따르면, 한국에서 2021년에 보고된 환자의 수는 50명에 미치지 못한다. 병에 대한 인지도가 낮아서 이 질환으로 진단을 받지 못한 환자가 있음을 감안해도, 아주 드물게 발병한다.

솔리리스는 비정형 용혈성 요독증후군에 대한 최초의 약이다. 이 질환은 더 희귀해서, 한국에서 2021년에 보고된 환자는 30명 미만이다. 중증 근무력증에 대한 최초의 약이며, 시신경 척수염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최초의 약이기도 하다.

작용하는 방식에서 솔리리스는 최초의 보체 억제제이다. 구체적으로 보체 단백질 C5에 대한 항체이다. 보체는 우리의 면역 체계의 한 축을 담당하는 한 무리의 단백질들을 통칭해서 말한다.

보체 단백질들은 혈중에 풍부하게 존재하여 외부에서 침투한 감염원을 제거하거나 체내에서 손상된 세포를 제거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하여 신체의 보호와 유지를 위해 두루두루 일을 한다.

역으로, 여러 가지 면역 질환이나 만성 염증 질환이 보체 작용의 불균형을 동반한다. 이물질이나 손상된 세포를 제거하기 위해 50종이 넘는 보체 단백질들이 서로 협업하는데, C5는 그중 하나이다.

보체가 면역 과정에서 중요하다고 일찍부터 알려졌지만, 약물 개발의 대상으로 보지는 않았다. 보체가 워낙 광범위하게 여기저기에 관여하기 때문에 보체의 작용을 섣불리 억제해 봐야 효과를 별로 기대하기 어렵고 단지 부작용을 일으키리라고 여겨졌다.

체내에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들어오면 보체가 제일 먼저 반응하고 이에 대처한다. 이러한 이유로 보체를 억제하면 환자가 감염에 취약해지리라고 예측되었다.

보체가 약물 개발의 타겟으로 부상하게 된 계기는 솔리리스의 2007년 약물 승인이다. 개발자 알렉시온이 수행한 임상시험에서 솔리리스가 발작성 야간혈색소뇨증의 증상과 환자의 삶의 질을 개선했으며, 부작용의 면에서도 플라시보와 비교하여 감당할 정도였다.

솔리리스는 보체의 활성이 문제를 야기하는 질환에 대하여 거의 15년 동안 독보적으로 사용되어 왔다. 울토미리스(성분명: 라불리주맙)가 2018년에 나왔지만, 이는 알렉시온이 솔리리스를 약간 변형하여 만든 솔리리스 버전 2.0에 해당한다.

지금까지 십여 종의 보체 억제제들이 약물로 승인을 받았는데, 솔리리스와 울토미리스를 제외한 나머지는 2021년 이후에 나왔다. 약물 개발에 걸리는 평균 기간을 15년이라고 볼 때, 2020년 이후 등장한 보체 억제제 약물들은 솔리리스의 개발이 성공하면서 비로소 개발을 시작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체 억제제는 주로 면역 불균형이나 염증과 관련된 만성 희귀질환에 대한 약물로 사용되지만, 최근에는 보다 일반적인 질환에 대하여도 개발이 이루어지는 추세이다.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중에는 심각한 증상을 보인 환자들에게 보체 억제제를 사용하기도 했다. 바이러스 감염으로 환자에게서 보체가 과도하게 활성화되었기 때문이다.

알렉시온은 솔리리스를 처음 류머티스에 대하여 개발했으나, 임상시험에서 효과를 얻지 못했다. 이에 따라 알렉시온은 보체의 활성이 과도한 질환이 아니라, 보체가 발병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질병에 주목했다. 발작성 야간혈색소뇨증과 비정형 용혈성 요독증후군이 바로 그러한 질환들이다. 이들 희귀질환에 대하여 비교적 적은 수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 솔리리스가 효과를 나타내고 비교적 안전함을 보임으로써 개발에 성공했다.

약물을 사용하는 환자의 수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솔리리스의 가격이 매우 비싸다. 처음 허가를 받을 당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약으로 기록되었다. 요즘은 CAR-T 항암제 등 솔리리스에 준하는 가격의 치료제가 줄줄이 나와 있고, 십억에서 수십억 원을 넘나드는 유전자 치료제들도 나오지만, 솔리리스는 여전히 건강보험 혜택이 없이 사용하기 어려운 약이다.

솔리리스는 여러 가지 질환에 대하여 순차적으로 승인을 받음으로써 환자의 수를 확대하고, 동시에 희귀질환 치료제로서의 독점적 권리를 행사하는 기간을 연장함으로써 상업적 이익을 극대화했다.

발작성 야간혈색소뇨증에 대하여 2007년에, 비정형 용혈성 요독증후군에 대하여 2011년에 승인을 받고, 중증 근무력증에 대하여 2017년에, 시신경 척수염 스펙트럼 장애에 대하여 2019년에 허가를 받으면서 각 질환에 대한 독점적 권리 기간과 특허 기간을 연장해 왔다. 솔리리스의 독점권을 보호하기 위한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2024년 드디어 비켐브와 에피스클리 등 바이오시밀러 약들이 나왔다.

솔리리스의 독점 기간이 만료되고 경쟁약과 바이오시밀러의 출현에 대비하기 위하여 알렉시온이 개발한 약이 울토미리스이다. 울토미리스와 솔리리스의 구조를 비교하면 아미노산 4개만이 다를 뿐인데, 이 차이로 인해서 약물의 혈중 반감기가 아주 다르다.

임상시험에서 울토미리스는 솔리리스와 비교하여 효과나 부작용의 면에서 별 차이를 보이지 않지만, 체내에서 더 지속적으로 존재한다. 그 결과, 솔리리스는 2주에 한 번 투여하고 울토미리스는 4~8주에 한 번 투여한다. 울토미리스는 편리한 투약 스케줄과 함께 비용 면에서도 결과적으로 절감된다는 장점을 부각함으로써 솔리리스의 환자를 흡수하고자 한다.

글. 성은아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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