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정혜승 변호사(법무법인 반우)
사진. 정혜승 변호사(법무법인 반우)

의료인이라면 침습적인 행위 전에 환자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것을 당연히 알고 있다. 환자에게 ‘설명’을 해야 하는 이유는 환자 스스로 자기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누구든 자기에게 닥친 상황을 정확히 알고 있는 상태에서 향후 진료행위에 대해 동의해야 한다. 이러한 설명의무는 판례에 의해 형성되었는데, 판례는 의료행위의 전 단계(진찰, 처방, 투약, 검사, 시술, 수술 등등)에서 의사는 환자에게 설명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하고 있다.

만약 의료행위 과정에서 악결과가 발생했다 하더라도 의료인 측이 환자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을 하고 동의를 구한 사실을 바탕으로 환자가 충분히 이해할 만큼 설명을 하고 동의를 구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면 설명의무 위반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게 된다.

그리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환자에게 침습적인 행위를 할 경우 문서화된 설명동의서를 만들고 환자에게 서명을 받아 설명했다는 사실을 확인받아 놓는다.

한편, 의료법 제24조의2에도 ‘의료행위에 관한 설명’이라는 조문이 있고 이 조항은 2016년에 도입된 것이다.

물론, 2016년 이전에도 판례는 의료인에게 설명의무를 부과하고 있었지만, 당시 A라는 의사에게 수술받는 줄 알고 진료계약을 체결하였는데 막상 환자가 마취에 이른 후에는 다른 의사가 들어와 수술을 하는 일이 사회적 문제가 되자 환자의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발생하게 할 우려가 있는 수술, 수혈, 전신마취(이하 ‘수술 등’)을 시행하는 경우 수술에 참여하는 주된 의사의 성명을 비롯, 수술의 필요성, 방법 및 내용, 전형적인 후유증 또는 부작용, 환자의 준수사항 등을 설명하도록 법제화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과태료의 부과처분을 할 수 있게 한 것이어서 기존의 설명의무와 특별히 다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의료분쟁이 발생한 경우 설명의무 이행 관련 법원의 판례를 살펴보면 의료현장에서는 성실히 설명의무를 이행한다 하더라도 다소 혼란스러울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다음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겠다.

미성년자가 수술 등 침습적 진료행위를 받을 경우 대부분 보호자(거의 대부분은 부모)와 함께 내원하게 된다. 이 사례에서 환자는 만 12세였고 모야모야병에 걸려 수술이 필요했다. 의료진은 보호자에게 환자의 상태, 수술 필요성, 부작용 등에 대해 설명을 하고 동의를 구한 후 환자를 수술했지만 결국 환자에게는 우측 편마비와 언어장애 등 후유증이 발생하였다.

이에 환자 측에서는 미성년이었던 환자 본인에게 설명을 하고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법원은 원칙적으로는 미성년자라 하더라도 환자 본인에게 설명을 하고 동의를 구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제시하면서도, 위 사안에서는 친권자 등에게 설명을 하면 당연히 환자 본인에게도 설명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이므로 환자 본인의 자기결정권이 침해되지 않아 설명의무를 위반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판결의 결론은 현실적으로 타당하다. 그러나 문제는 판례가 제시한 ‘원칙’은 미성년자 본인에게 설명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만 12세 사례에서는 친권자에게만 설명하면 의무를 다했다고 보았지만, 만약 만 15세 환자라면 본인에게 반드시 설명해야 하는지, 반대로 더 어린 환자의 경우 환자 본인에게는 설명을 생략했으나 알고 보니 환자 본인의 의사는 진료에 강력히 반대하였다면 어떻게 되는지 등등의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또, 최근에는 한부모 가정도 늘어나고 이혼한 부모가 반드시 친권을 보유하고 있다는 보장도 없는데 친권자라고 전제하고 부 또는 모의 승낙을 받았으나 실제 친권자는 진료행위에 반대한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환자 본인에게 직접 설명이 실시되었고 동의도 받았음에도 환자에게 적절한 시간적 여유를 두고 동의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다면, 설명의무를 다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판례도 있다.

비파열성 신장동맥류에 대해 코일색전술을 받은 환자가 수술 하루 전날 색전술과 관련한 시술 동의서에 서명하였고, 시술 당일 혈관조영 검사를 진행하면서 의사가 색전술의 위험성 및 통증이 있으나 향후 동맥류가 더 커질 가능성 등이 있으니 치료를 진행하면 좋겠다고 구두로 환자에게 동의를 받은 사안에서, 법원은 혈관조영검사 역시 침습적이고 그 과정에서 색전술을 하는 경우가 많으니 의료진은 이 혈관조영검사 전에 적절한 시간적 여유를 두고 시술의 내용과 필요성, 예상되는 위험이나 부작용 등에 대해 설명했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반면, 시술 직전에 설명 및 동의서 징구가 이루어졌지만 급성관상동맥증후군 진단 하에 관상동맥조영술이 시행된, 즉 긴급한 필요가 있었던 경우에는 설명의무를 적절히 이행했다고 보기도 했다.

특히 이 사안에서는 동의서에 환자 본인이 아닌 배우자의 서명만 있었지만, CCTV를 통해 확인해본 바 배우자가 동의서를 작성하는 동안 환자는 바로 옆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었기에 환자 역시 충분한 설명을 들었을 것이고 당연히 동의했을 것이라는 점이 참작되었다.

환자에 대한 설명의무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해 충실히 이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설명의무 이행 여부를 단지 기계적으로만 판단할 경우 실제 환자의 의사가 존중되기보다는 악결과가 발생했을 때 설명의무 위반을 주장함으로써 의료진에게 책임을 묻기 위한 수단으로만 전락할 수 있다.

법원도 설명의무 위반 여부를 형식적으로만 판단할 것이 아니지만, 의료현장에서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보건복지부 또는 의료전문가단체에서 실질적인 설명의무 이행을 위하여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수립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 외부 필자의 기고와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침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이 시각 추천뉴스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