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혁신신약 불평등 해소 및 규제개선 정책 토론회'

[팜뉴스=김민건 기자] 다중적응증 약가결정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다중적응증을 가진 약물 허가가 증가하면서다. 지난 2018년 기준, 미국에서는 항암 치료 약물 75%가 다중적응증으로 승인됐다. 한국에서도 지난 2021년 당시만 해도 다중적응증 항암제는 32개나 됐다.

그러나 한국은 성분별 약제 가격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단일 적응증, 단일 가격이다. 다중적응증 약제임에도 단일 상한 금액을 적용하면서 다국적제약사를 위시한 업계에선 "다중적응증 혁신신약의 가치 반영이 어렵다"는 목소리가 계속되고 있다. 

업계에선 이로 인해 "첫 번째 적응증은 급여를 받을 수 있지만 이후 추가로 적응증 확대를 받은 경우 급여가 어려워 환자 치료 접근성을 저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적응증별로 혁신신약의 적정한 가치를 인정할 수 있는 '다중적응증 약가제도' 도입을 이제는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혁신신약 불평등 해소 및 규제개선 정책 토론회'에서는 다중적응증 약가 제도 도입을 놓고 업계와 정부 간에 의견을 나누는 자리가 열렸다.

이날 행사는 서미화, 소병훈, 김윤, 장종태 의원이 주최하며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 주관으로 열렸다.

한국아스트라제네카 대외협력·MA를 총괄하는 방혜련 전무는 KRPIA와 다국적제약산업계를 대변해 이날 자리에 나섰다. 먼저, 방 전무는 한국의 약가 제도는 비용효과성 기반으로 약제 가치를 평가하고, 이를 통해 급여 적정성을 판단하는 체계로 "굉장히 훌륭하게 운영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방혜련 아스트라제네카 대외협력·MA 총괄 전무
방혜련 아스트라제네카 대외협력·MA 총괄 전무

 

그러나 방 전무는 "단일 적응증, 단일 약가 제도에 적합하며 다중적응증 약제 핵심인 혁신신약에는 적용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제도이다"며 한계성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방 전무는 보건복지부가 중요하게 추진하는 두 가지 정책 목표인 ▶보장성 강화와 건강권 형평성 확보 ▶혁신신약 가치 인정이라는 목표를 하나도 실현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방 전무는 "그래서 현행 제도를 시급히 보완해야 하며, 이런 문제를 세계 각국에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적응증별 약가제도를 현지 시스템에 맞게 운영하고 있다" 말했다.    

방 전무는 이날 정부측에 과거 위험분담제도(RSA) 도입 당시를 회상시켰다. "과연 RSA가 필요하냐, 제도의 부작용은 무엇이냐"며 굉장히 많은 논의와 고민이 있었지만 10여년이 지난 지금에는 아무도 RSA 제도를 의심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방 전무는 "지금 되돌아보면 RSA 제도를 그때 도입하지 않았다면 과연 혁신신약이 지금처럼 국내 보험권에 들어올 수 있었을까 싶다. RSA 도입 결정이 얼마나 중요한 결정이었는지 의심하는 사람은 이제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다시 적응증별 약가제도 도입을 비슷한 맥락에서 고민할 시점이다. 폐암처럼 신약이 많이 개발된 암종에 비해서 간암, 담도암, 췌장암은 현재 비용효과성을 평가하기가 너무 힘들다"며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임핀지(더발루맙) 등 면역항암제를 통해 미충족 수요가 큰 담도암 치료에 혁신적인 기회를 만들었지만 급여 등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폐암은 신약 개발이 활발해 비용효과성 평가가 어렵지 않지만, 간암·담도암·췌장암은 오랫 동안 신약 개발이 이뤄지지 않아 기존 표준치료 대비 얼마나 가치있는 약제인지 비용효과성 평가를 통한 가치 인정을 받기가 쉽지 않다.

기존 제도로는 비용효과성 평가가 어려워 급여 진입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이므로 미충족 수요에 있는 치료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적응증별 약가제도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방 전무는 "희귀 암종 치료제를 소외시키지 않고 급여권에 들여오기 위해선 적응증별 약가제도가 필요하기 때문에 일단 시범사업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이미 KRPIA 등 다국적제약산업계는 복지부에 다중적응증 약가 결정을 위한 적응증별 약가제도 시범사업을 제안한 상황이다.

방 전무는 "시범사업을 우선 해보면 해외 사례를 참고해 한국에 가장 적합한 제도는 무엇인지, 현재까지 급여군에 들어오지 못한 다른 암종이나 적응증에서 보장성을 어떻게 강화할 수 있을지 장점과 보완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적응증별 약가 제도 도입이 필요한 것은 항암 치료 영역 뿐만이 아니다. 이날 문지용 건국대병원 호흡기알레르기 내과 교수는 만성폐쇄성폐질환(COPD)처럼 일상생활에서 발생할 수 있는 만성 질환에도 다중적응증 약가 제도가 중요하다고 했다.

문지용 건국대병원 호흡기알레르기 내과 교수
문지용 건국대병원 호흡기알레르기 내과 교수

 

COPD는 결핵과 같은 바이러스 감염이나 담배, 미세 먼지에 오래 노출됐을 때 발생한다. 기관지와 폐포가 망가져서 기침, 가래, 호흡곤란 같은 증상이 생기며 암이나 심뇌혈관 질환 다음의 사망 원인 3~4위에 해당하는 질병 부담이 꽤 큰 만성 질환이다.

문 교수는 "환자들이 평소 기침이나 가래, 호흡 곤란을  꾸준히 앓고 고생하는 것 이외에도 갑자기 증상이 나빠지는 것을 급성 악화라고 하는데, 급성 악화가 되면 입원을 하거나 약물 치료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급성 악화로 입원한 환자 중 3~4%는 호흡 부전이라고 해서 숨을 잘 못 쉬는 경우 10명 중에 1명이 사망한다. 더 큰 문제는 퇴원했을 때이다"며 "1년 사망률이 24%, 호흡 부전 같은 심한 중증을 앓는 환자의 45%가 1년 이내 사망하고 있다. 꽤 높은 사망률이다"고 말했다.

문 교수가 밝힌 심평원 자료에 따르면, 국내 COPD 치료를 받는 환자 10명 중 1명이 COPD 악화로 입원하며 20% 이상은 1년에 한 번 이상 응급실을 방문한다. 또, COPD 치료를 받는 환자 10명 중 1명이 입원하며 상당 수 사망에 이를 것으로 우려된다.

문 교수는 "급성 악화를 예방하기 위해 보통 흡입제를 사용하며 충분히 썼음에도 불구하고 악화를 겪는 환자가 분명히 있다. 이런 분들은 삶의 질 저하나 사망 같은 일이 발생한다"며 "이러한 일을 줄일 수 있는 혁신신약이 최근에 나왔는데 유럽과 미국에선 두 가지를, 한국에서 한 가지 약제가 최근 허가됐다"고 말했다.

문 교수가 언급한 치료제는 사노피 듀피젠트(두발루맙)이다. COPD 자체는 자가면역질환이 아니지만 듀피젠트는 발병 원인인 면역을 억제하는 자가면역 치료제이다.

문 교수는 "과거 폐암 치료에 키트루다를 비급여로 사용했을 때, 키트루다를 쓰면 생존율이 2배 이상 오르는데 환자들에게 연간 1억원이 넘는 비용을 꺼내기가 미안하고, 환자도 고민하는 상황들이 벌어졌다"며 "지금 COPD 환자에서도 동일한 상황이다"고 강조했다.

문 교수는 "COPD 악화를 반복하는 환자는 과학적 지식과 양심에 기반한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COPD로 고생하는 환자들이 충분한 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방 전문와 문 교수 이야기에 김형민 건강보험공단 약제관리실 부장은 공감을 표했다. 

김 부장은 "우선, 다중적응증 약제를 포함한 환자 생존과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면역항암제, 희귀질환 등 혁신신약의 치료 접근성 제고를 위해 비급여 적응증은 조속히 급여를 적용해야 한다는 부분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약제관리실 부장
김형민 국민건강보험공단 약제관리실 부장

구체적으로 김 부장은 건보공단이 2023년 '사용범위 확대 협상 제도 개선 연구'를 통해 신약 가치 반영과 치료 전문성 제고 측면에서 다중적응증 약가 결정 제도를 중장기 방향으로 제안한 바 있다고 했다.

이 연구에서 다중적응증 약가 결정 제도 방안으로 세 가지를 제안했는데 ▶적응증 가중평균가(Blended Pricing) ▶적응증별 개별 약가 선정 ▶적응증별 환급률 차등 적용이었다.

김 부장은 "먼저, 적응증별 개별 약가는 약가를 달리하는 부분에서 복수의 청구 코드 신설과 가중 급여 목록 사항으로 명시할 수 있기 때문에 환자 간 형평성 문제가 있을 수 있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적응증별 환급률 차등 적용 방안에 대해서도 "명목상 가격 또는 실제 약가 지불에서 형평성 문제가 있다"고 했다. 건보공단 입장에서 적응증별 환급이나 고지 방식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적응증별 가중평균가(Blended Pricing)는 "제품별 단일 가격을 적용하기 때문에 현행 건보 약가 제도에서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본다. 환급 고지에 대해서도 현재 제도와 유사해 현행 체계를 유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김 부장은 "현행 제도 대비 적응증을 가중하게 되면, 적응증 확대에 따른 가격 상승 가능성이 있다. 이로 인해 적응증별 가중평균가를 적용받지 않는 약제와 형평성, 적응증별 가중평균가를 높거나 낮게 적용한 치료제를 사용한 환자 간에 역차별적인 부분이 있다"며 "등재 이후 적응증별 모니터링 등 사후 관리 측면과 재정 부담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 국가에서 적응증별 약가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공단에서는 제도 도입 효과가 일부라고 판단한다. 실제로 해당 제도를 적용한 것은 모든 약제가 아니라 한정된 것으로 안다"며 부정적인 의견을 표했다.

또 김 부장은 접근성 측면에서 "적응증별 약가제도를 채택한 국가를 벤치마킹하는데 있어 포괄적인 관점에서 왜 이런 제도를 도입했는지, 다른 제도와 연계해 이해할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 부장은 "공단은 가입자 보험료를 재원으로 해서 재정을 관리하고 있다. 약품비는 건강보험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 계속 증가하고 있어 효율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며 "연구에 따르면 항암제 같은 고가 의약품의 급여 등재 이후 지속적으로 사용 범위가 확대됐고, 이에 따라 청구액도 증가했기에 재정 관리가 필요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김 부장은 "그래서 다중적응증 약가 결정(적응증별 약가)은 환자 접근성 측면에서 치료제가 가진 각각의 적응증에서 혁신적 가치와 환자 치료 접근성, 이에 더해 재정 관리도 동시에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위험분담제도(RSA)에 따라 신약의 약가 결정과 제2건강보험 종합계획 추진에 따른 신약 우대상항이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김 부장은 "작년부터 경제성평가에서 ICER 탄력 적용과 위험분담제 대상 확대 등 여러 부분으로 확대했다. 약가 결정 우대 제도와 사후 관리 제도를 포괄적인 관점에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선 학계에서는 적응증을 달리하는 부분에 있어 소비자 부담 증가, 전반적인 사회 후생에 긍정적이지 않다는 언급이 있었다"며 "이런 부분을 포함해 학계와 이해관계자, 건보 가입자 간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적응증별 약가제도가 중증 암 질환 환자의 치료 접근성을 낮추고, 급여 적용으로 본인 부담을 낮출 수 있지만 신약 및 등재 우대에 대한 단계적 검토는 약가 사후관리와 종합적으로 연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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