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 (방통은 어떻게 자신을 어필했는가 - 역량평가 서류함 기법)에서 역량평가의 '서류함 기법'에 대해 알아보았는데, 이번에는 역량평가의 또 다른 중요한 방법인 RP(Role Play, 역할수행) 기법에 대해 알아보자. RP기법은 실제 업무 상황을 시뮬레이션하여 응시자의 행동과 의사결정을 평가하는 방법이다.
# 서서 이야기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서서'라는 인물이 있다. 당시 유명했던 인물들이 대부분 명문가의 자제였던 데 반해, 서서는 흙수저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젊은 시절엔 검술을 익히고 건달로 살다가, 마음을 고쳐 먹고 학문을 닦았는데 학문적으로도 매우 뛰어났고 당시 유명하던 제갈량, 방통 등과 매우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유비가 신야에 있을 때, 서서는 먼저 유비 세력에 들어갔다가 A급 참모로 혁혁한 활약을 했다. 조조의 선발대였던 여광, 여상, 조인, 이전 등의 장수들을 계략으로 격파한 것이다. 조조는 인재에 대한 욕심이 많았기에 서서를 데려오려고 서서의 모친이 보낸 것처럼 편지를 위조하여 서서가 스스로 유비를 떠나 자신에게 오도록 한다. 이 때 서서는 유비에게 제갈량을 추천하고 눈물을 흘리며 떠나간다.
# 소설과 정사의 차이: 현실은 냉혹하다
참으로 아름다운 이야기다. 하지만 삼국지연의(소설)가 아닌 '정사'를 살펴보면 다소 다른 스토리가 펼쳐진다.
당시 조조와 유표의 대결에서 유비는 유표 세력의 총알받이 역할을 하는 위치에 있었다. 용맹한 부하들(관우, 장비, 조운)과 오랜 기간 함께 해온 패거리들(간옹, 손건, 미축) 덕분에 근근히 유지하고는 있었지만, 미래에 대한 확신은 전혀 없던 상황이었다.
그 상황에서 유표가 죽고, 유표 세력이 조조에게 항복하자 유비는 오갈 데 없는 상황이 되었다. 왜냐하면 예전에 한 번 조조의 뒤통수를 쳤던 전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비는 남쪽으로 대이동(이라 쓰고 헐레벌떡 도망 이라고 읽는다)을 한다.
유비의 인망이 높기도 했고, 조조의 악명이 높기도 했기에 많은 백성들이 함께 움직였는데, 이 때 유명한 사건들이 나온다. 유비 가족들이 고립되자 조운이 대활약해서 유비 아들을 구해 오기도 하고, 장판파 다리 위에서 장비가 혼자서 조조군의 진격을 막은 것도 이때이다.
아뭏든, 전체적으로 보면 거의 망한 상황이었다. 서서의 어머니도 이 난리통에 조조군에게 붙잡혔다고 한다. 이에 서서는 유비에게 가서 "당신을 따른 것은 가슴이 시킨 일이었으며 지금 어머니가 조조군에 붙잡혀버리셔서 어머니를 구하고자 당신을 떠나는 것도 제 가슴이 시킨 일이므로 이해해주십시오." 라는 말을 하며 유비군을 떠난다.
# 현대적 관점으로 본 서서의 선택
당시 서서의 입장에서 발칙한 상상을 해보자.
'아... 떠오르는 스타트업인줄 알고 지원했는데, 쫄딱 망했네.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관우, 장비, 조운) 너무 고인물들이 많고(간옹, 손건, 미축) 자금력도 없고(땅 없이 도망가는 중) 대기업의 압박이 심하고(조조군의 공격) 하니 조금씩 망해가고 있는 중인 것 같다. 대표님(유비)은 나를 믿어 주시지만, 이미 나보다 더 뛰어난 제갈량이 합류했으니 나는 할 만큼 했다. 기회를 보아 탈출해 보자!'
# 역량평가 RP로 만든 서서의 이직 시나리오
이 상황을 가지고 RP(Role Play, 역할수행) 기법을 간략하게 만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응시자 시트]
[상황]
당신은 조조군에 쫓겨 백성들과 함께 남쪽으로 피난 중인 유비입니다.
당신의 휘하에는 관우, 장비, 조운 등 엄청난 장수들이 있고, 또한 외교의 달인 손건, 전재산을 털어 당신을 도운 전직 재벌 미축 등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당신의 덕에 감화된 건달들도 잔뜩 있습니다.
3년 전 당신에게 임관했던 '서서'는 문무를 겸비한 재능충입니다. 그 덕분에 많은 위기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그의 권유에 따라 엄청난 귀인이라 하는 '제갈량'도 당신의 세력에 영입했습니다.
호사다마라고 하더군요. 당신의 뒷배로 있던 유표의 세력이 조조에게 항복하는 바람에 당신은 정처없이 남쪽으로 쭉 도망가는 중입니다. 백성들도 조조가 잔혹하다는 소문을 듣고 함께 도망치는 중인데, 조조군이 기병대로 휘젓는 바람에 지금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많은 백성들이 함께 오지 못하고 조조군에게 잡혀 도로 복귀한다고 합니다.
오늘 아침에 서서로부터 면담 신청이 들어왔습니다. 아마도 서서의 어머님이 조조군에 억류되어 있다는 첩보 때문인 것 같습니다. 엄청나게 효를 중시하는 시대를 살고 있기에, 만약 그가 어머님을 구하러 조조군에게 망명한다고 하면 딱히 막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인재, 특히 참모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당신의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하여 검증된 인재인 서서를 잡아야 합니다.
[수행목표]
서서를 설득하여, 당신의 조직에 남아 충성을 다하게 하십시오.
[역할수행자 시트]
[상황]
당신은 '서서' 역할을 하게 됩니다.
당신은 유비 세력이 신야에 자리잡은 초기에 유비군에 임관했고, 기존의 임원들(관우, 장비, 조운, 미축, 간옹, 손건 등)과 소소한 의견충돌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인정받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최근 국제정세가 확 변했습니다. 조조와 대립하던 유표가 죽고 그의 세력은 조조에게 항복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가운데 끼인 유비군은 풍전등화에 가깝습니다. 유비는 조조에게 항복하기는 어려운 상황으로 보입니다. (예전에 한 번 배신했던 사례가 있어서) 그래서 백성들도 모두 함께 피난길에 올랐는데, 아주 아수라장이 따로 없습니다. 그러다가 어제, 어머님이 계셨던 행렬이 조조군에 막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머님 걱정도 되고, 한편으로는 이 조직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 것도 있고 해서, 죄송하기는 하나 조조군에 귀순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비에게 면담신청을 했습니다.
[지침]
대화가 시작되면, "죄송합니다 주군, 어머니께서 조조군에 잡혀 계시다고 합니다." 라고 말하면서 상황의 불가피함을 이야기한다.
만약 유비가 막무가내로 남아달라고 하면, '효'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며 놓아달라고 부탁한다.
만약 유비가 당신을 존중하며 대화를 이어나가면 부분적으로 아래의 정보를 알려 드림으로써 대화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당신이 공개한 정보들에 대해 유비가 만족할 만한 대안을 제시할 경우, 감사를 표하며 '함께 하겠다'고 말한다.
[당신의 정보]
처음부터 오픈하지 말고, 유비가 적극적으로 묻고 경청할 때 하나씩 오픈하시오
당신의 어머님은 명문가가 아니므로 조조군의 직접적인 타겟이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피난 행렬이 끝난 후 수소문해서 조용히 모셔올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당신은 엄청난 재능충이지만 가문의 도움을 기대하기 힘들다 보니, 일반적인 루트로는 큰 성공을 하기가 어렵다고 여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성공의 기회가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유비의 세력에 임관했다.
당신은 소싯적에 검 좀 다뤘다고 말했지만, 장비한테 한 방에 털렸다. 그는 괴물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둘이나 더 있다. 아직도 그 때 일을 가지고 놀림당하고 있긴 하다.
그런데 지략에 있어서도 입지가 흔들리는 상황이다. 최근 영입한 제갈량은 어느 모로 봐도 당신보다 뛰어난 사람이다. 제갈량이 조직에 합류한 상황에서는 당신은 최고 레벨로 올라가긴 어려울 것 같다.
유비의 조직에는 고인물들이 많다. 10년 이상 함께 한 동료들이 있다 보니, 텃세도 심하고 시스템적인 문제가 있어도 대대적인 개선을 하기가 힘들다.
# RP 기법의 효과와 교훈
역량평가 중 RP를 진행하다 보면, 리더들이 실제로 자기 스스로 느끼는 것보다 훨씬 '의사소통'에 있어서 일방적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저는 최대한 직원들의 말을 들어주려 해요"라고 하던 리더도, 이런 RP 상황에서는 목적을 위해 자기 이야기만 하고 윽박지르는 경우가 굉장히 자주 발견된다.
이러한 역량평가를 통해 알 수 있는 핵심역량은 다음과 같다.
의사소통: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적절히 응대하는 능력
설득: 상대방의 니즈를 파악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능력
갈등관리: 위기상황에서 감정을 조절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능력
일단 리더들이 스스로 인식하기만 하면 그 이후로는 개선이 가능해진다.
그러므로 역량평가 기반 RP 훈련을 통해 리더들은 자신을 인식하고, 자신의 리더십을 되돌아 보는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다.
# 마무리: 인재 유출을 방지하는 현대적 방법
서서의 2000년 전 이야기가 오늘날 기업의 인재 유출 문제와 놀랍도록 유사하다.
핵심 인재가 떠나려고 할 때, 리더가 취해야 할 접근법은 아래와 같다.
단순히 붙잡으려 하지 말고 진짜 이유를 파악하라
가능한 범위 내에서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라
때로는 떠나는 인재를 존중하며 보내주는 것도 장기적 관계를 위한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리더십은 항상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는 균형 잡힌 판단이 중요하다.
[출처] 당신의 코칭은 효과적입니까 | 작성자 AGH 이동초 박사
**이동초 대표는...
▸ 서울대학교 수의학 학사
▸국민대학교 경영학 석사 (리더십과 코칭 MBA)
▸국민대학교 경영학 박사
▸Pfizer Korea – 영업사원 (MR)
▸GSK Korea – 세일즈 트레이너, 브랜드 매니저
▸행복한변화연구소 – 대표코치
▸화이트메디앙스 – AP 마케팅 이사
▸이외 현재 다수 제약회사에서 영업과 마케팅 직원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중
* 외부 필자의 기고와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침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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