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성은아 박사
사진. 성은아 박사

항생제 부족은 21세기 의료계가 직면한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이다. 기존의 항생제로는 치료가 어려운 내성 세균이 범람한다. 한국과 아시아는 항생제 내성균의 문제가 특히 심각한 지역이다. 새로운 항생제들이 꾸준히 나와서 2000년 이후에 나온 항생제만 전세계에 수십 종에 이르지만, 내성균의 문제는 호전되지 않는다.

가장 최근 등장한 항생제들을 훑어보면 상황이 대략 파악된다. 엠블라베오가 유럽에서 2024년에 승인을 받았으며, 미국에서도 2025년 초입에 승인되었다. 엠블라베오는 아작탐과 아비박탐의 복합제이다. 아작탐은 1980년대부터 사용되어 온 페니실린계 항생제이다.

아비박탐은 내성균의 내성 기전인 베타락타마제를 억제하여 항생제의 작용을 돕는 약물로서 10년 전부터 사용되어 왔다.

미국 FDA는 2024년에도 엑스블리펩, 올린바, 제브테라, 피비야 등 4종의 항생제를 허가했다. 엑스블리펩은 항균 성분인 세페핌과 내성균의 내성 기전을 무력화하여 항생제의 작용을 돕는 엔메타조박탐의 복합제이다. 세페핌은 1990년대부터 사용되어 온 4세대 세팔로스포린 계열 항생제이다. 베타락타마제 억제제인 엔메타조박탐이 새로운 성분이다.

올린바는 술로페넴과 프로베네시드의 복합제이다. 술로페넴은 카바페넴 계열의 새로운 항생제이다. 카바페넴 계열은 내성균에 대하여 최후 수단으로 사용하는 종류이지만 카바페넴에 대한 내성균이 증가 추세이다. 프로베네시드는 항생제의 배출을 억제하여 항생제의 혈중 농도를 유지해 주는 목적으로 오래 전부터 사용되어 왔다.

제브테라(성분명 세프토비프롤)는 5세대 세팔로스포린 계열의 항생제이다. 제브테라는 2008년에 스위스에서 승인이 되었다가 사용이 중단되었으며,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는 내성균에 대한 효과가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승인을 받지 못했다. 이후 추가로 수행된 임상시험을 근거로 FDA의 허가를 이끌어 내었다.

피비야(성분명 피브메실리남)는 항균 작용의 범위가 좁은 항생제인데, 40년 이상 유럽에서 사용되어 왔다. 추가 임상시험의 결과를 근거로 미국에서 승인을 받았다.

약물의 이름이나 복잡한 성분명을 굳이 기억하지 않아도, 아주 새로운 종류의 항생제들이 아니라는 점이 금방 눈에 뜨인다. 기존의 항생제와 다른 종류가 나와야 내성균에 효과적이겠지만, 1990년대 이후 새로운 계열의 항생제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항생제는 본래 천연물에서 기원한다. 세균 간의 생태계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 세균들이 만들어 내는 물질들이다. 천연물 중심의 항생제들은 20세기 중에 대부분 개발되었다. 천연물이든 합성물이든 개발 과정이 점점 까다로워지고, 새로운 항생제의 출현은 어렵다.

항생제 개발은 사양산업으로 여겨져서 투자가 부진하고 파이프라인이 두텁지 못하다. 항생제를 개발하려면 10년 이상 노력과 연구비를 투자해야 하지만, 개발에 성공해도 이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분야이다.

항생제는 단기간 사용하는 약물이니, 만성질환 약물처럼 수요가 장기적으로 축적되지도 않는다. 새로 나오는 항생제의 가격이 아무리 비싸다고 해도 항암제나 면역제제에 비할 바가 못된다. 새로운 항생제가 나오더라도, 의료계는 이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새로운 항생제에 대한 내성균의 출현을 우려하여 신약을 가급적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 놓고 부득이 한 경우에 사용한다. 의료 현장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이지만, 개발자의 입장에서는 수요 부족으로 이익을 창출하기 어려운 구조이다.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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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승인을 받더라도 개발 비용을 회수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데, 그 사이 내성균이 나타난다. 개발의 보상이 따르지 않으니 제약회사들이 항생제 개발에 적극적이지 않다. 거대 제약회사들은 1990년대 이후 항생제 개발에서 철수했다.

학계나 중소 규모의 바이오텍이 개발의 주력이다. 이들은 항생제 개발의 비용을 확보하기에 재정적으로 취약하다. 신약 승인이 되어도 회사의 가치 상승으로 이어지기 보다는 항생제를 개발한 회사에게는 흔히 자금난이 심화되는 과정에 불과하다.

항생제 개발에 투자가 부진하자, 세계보건기구와 국가의 정부들, 거대 제약회사 컨소시엄과 비영리단체들이 항생제 개발을 지원하는 정책들을 추진한다. 개발의 비용을 지원하는 ‘밀기 전략’과, 개발 후에 판매량과 무관하게 수익을 보장해 주는 ‘당기기 전략’ 등의 지원 프로그램에도 불구하고, 항생제 개발은 이익을 수반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이런 와중에도 개발 단계의 항생제 몇 종류가 관심을 끈다. 항생제 내성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항생제와 구조적으로 다르거나 작용 기전이 다른 물질을 찾아야 한다. 게포티다신과 졸리플로다신은 세균의 DNA 합성을 억제하는 물질이다. 이들은 작용 기전의 면에서는 새롭지 않으나, 화합물의 구조 면에서 기존의 항생제들과 다르다.

게포티다신은 미국 FDA에 신약 허가를 신청하여 2025년 결정을 기다린다. 졸리플로다신도 신약 허가를 신청할 단계에 진입했다. 조수라발핀은 세균의 세포벽 형성을 억제하는 화합물인데, 지금까지 어느 항생제도 사용하지 않은 새로운 타겟을 통해 작용한다.

아직 임상시험의 초기 단계에 있지만, 수십년 만에 새로운 계열의 항생제가 나올까 벌써부터 주목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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