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뉴스=김민건 기자] 블린사이토, 애드세트리스, 젬퍼리, 프락스바인드는 공통점이 있다. 단일군 임상 설계로 비용효과성 입증에 한계가 있는 약제들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해당 약제들은 국내 건강보험 급여 목록에 등재에 성공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바로 경제성평가 자료제출 생략 가능 제도(이하 경평 면제)를 통해서다.
5일 팜뉴스가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가 작성해 최근 보건복지부 등에 보낸 '경제성평가 생략제도 운영 및 사후관리 개선 방안 의견서'를 확인한 결과, 경평 면제를 통해 국내 중증 희귀·암 환자들이 신약으로 제대로 치료받게 됐다는 내용이 눈에 띈다.
앞서 언급한 블린사이토, 애드세트리스, 젬퍼리, 프락스바인드 같은 신약들이 경제성 평가를 받았다면 급여 등재가 어려웠지만 경평 면제를 통해 환자 접근성을 높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우선 KRPIA는 "블린사이토, 애드세트리스, 젬퍼리, 프락스바인드 등은 단일군 임상으로 허가돼 비용-효과성 입증에 한계가 있는 약제들이다"며 "경평 면제가 없었다면 주요 선진국(A8)에 등재된 이후 매우 늦게 국내에 도입되거나 아예 (급여) 등재되지 못 했을 것이다"고 했다.
희귀질환이나 희귀 암은 임상 3상 시점에 기존 표준치료제를 대조군으로 설정해 효능·효과와 안전성을 통해 임상적 유용성을 확인하는 대규모 비교 연구가 어렵다. 환자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2상 시점에서 확인한 단일군 설계 데이터로 시판 허가와 급여 등재 절차를 밟는다.
1, 2상에서 신약을 투여한 단일 그룹의 치료 효과를 평가한 데이터만으로는 비용-효과성을 명확히 입증하기가 어려움이 있는 게 사실이다. 비용-효과성이란 신약을 사용해 환자에게 임상적, 치료적 혜택을 얼마나 줄 수 있는지를 '비용' 측면에서 평가하는 것이다. 상대적인 데이터가 부족한 단일군 임상으로는 급여 등재를 위한 비용-효과성 평가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실제 복지부와 심평원, 건보공단은 임상 환자가 많지 않은 단일군 2상 수준에서 보인 신약 효과가 단기간에는 좋을지 몰라도, 3상 대규모 비교 연구에서 확인한 최종적인 생존 연장 데이터가 없으면 고가 신약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고 본다.
지난 2007년 1월 정부가 치료적·경제적 가치가 우수한 의약품을 선별해 건강보험 급여를 적용하는 선별등재제도(positive list)를 도입한 뒤 후폭풍이 따랐다. 혁신신약 가치를 단순히 '가격'으로 따진다는 지적이었다. 이에 2015년 5월 도입한 제도가 경평 면제다.
앞서 블린사이토, 애드세트리스, 젬퍼리, 프락스바인드는 1, 2상 단일군 임상으로 비용-효과성 평가가 어려웠지만 경평 면제를 통해 급여 등재에 성공했다. 혁신신약 가치를 단순히 비용 측면에서 평가한다는 지적받은 선별등재제도 보완을 위해 도입한 경평 면제가 환자의 신약 접근성을 높인 것이다.
KRPIA는 "경평 면제가 선별등재제도 사각지대를 해소했다"며 희귀질환을 비롯해 중증(암)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혁신신약 접근성을 크게 향상시켰다는 입장이다.
"선별등재 제도를 도입한 지 20년이 된 지금, 신약 요구도는 질환 종류나 중증도에 관계없이 높다"며 "현재 경평 면제는 비용-효과성 위주 제도의 미비점을 보완하면서 국내 환자들의 신약 접근성을 제고하는데 크게 기여했다"고도 KRPIA는 설명했다.
오히려 KRPIA는 "경평 면제 퇴보가 아닌 개선을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고 강조한다. 경평 면제를 통해 급여 등재된 신약들이 다양한 사후관리 제도를 통해 효과적으로 관리되고 있는 만큼 제도를 더욱 개선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종혁 중앙대 약대 교수 등이 연구한 자료를 근거로 KRPIA는 지난 2015년부터 경평 면제를 통해 급여 등재 신약의 건보 지출 비용은 전체 의약품의 0.3%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KRPIA는 "해당 신약들의 약품비는 표시가 기준 27억원에 지나지 않는다"며 "실제가를 고려하면 이보다 더 낮을 것이다"고 예측했다.
비용을 신약으로만 한정해도 5% 미만일 정도로 경평 면제 신약들이 건보 재정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는 이야기다.
현재 경평 면제로 급여 등재된 신약은 총액제한형, 환급형 등 위험분담(Risk Sharing Agreement, RSA) 계약과 5년 주기 정기 재평가로 약가, 총액 조정 등 사후관리를 하고 있다.
위험분담은 건보 재정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제약사와 맺는 계약이다. 임상 성과와 재정 영향을 근거로 환급형, 총액제한형, 성과기반 환급형 등을 운용하고 있다.
성과기반 환급형은 임상 성과에 따른 일정 금액을 제약사가 환급하는 방식이며, 총액제한형은 일정 기간을 정해 특정 금액 이상 사용하지 않도록 급여 총액을 제한하는 것이다.
KRPIA는 "정부와 제약사는 총액제한형 위험분담 계약을 의무적으로 맺고 있어 예상 청구금액을 초과할 경우 초과분 전액을 환급해야 한다"며 "등재 후 5년 마다 정기적인 재평가를 통해 상한금액, 총액 등 세부 계약사항을 다시 평가해 추가적으로 약가인하를 한다"고 강조했다.
KRPIA는 소수 환자 대상 평가 기준이 강화된 2023년 1월 이후 경평 면제로 등재된 약제 5개를 사례로 제시했다. 경평 면제로 인한 불확실성을 총액제한형과 추가적인 사후 조건을 붙여 관리하는 품목들이다.
▷럭스터나(보레티진네파보벡)
약물 투여 전(첫 번째 눈 투여 전 90일 이내)과 투여 후(양안 투여 시 두 번째 눈 투여 후) 1~3개월, 12개월 또는 매 1년 마다 4년까지 임상 평가(광감수성, 시력, 시야 등)를 실시하고, 평가에 대한 진료기록부 등 객관적인 자료를 반드시 제출하고 있다. 황반 수술 치료 경험이 있는 관련 분야 망막 전문의에 의해서만 투여하도록 했다.
▷크리스비타(부로수맙)
신속등재 약제 1호로 2020년 국내 시판 허가를 받았다. 환자 수가 적고 ICER 값이 높다. 경평 면제 외에 실질적인 등재 방안이 없어 경평을 통한 일반 절차로 급여 등재를 할 수 없었다. 올해 1월 1일부터 경평 면제 약제 대상을 확대해 '소아에 사용하는 약제로 치료적 위치가 동등한 제품 또는 치료법이 없고 임상적으로 의미있는 삶의 질 개선을 입증하거나 기타 위원회에서 인정한 경우'를 포함했다. 국내 시판 승인 29개월 만에 경평 면제로 급여 등재가 가능했다.
▷오뉴렉(아자시티딘)
소수 환자가 대상인 신약으로 임상적 근거 생산이 어렵다. 총액제한형, 환급형, 구간별 추가 환급형 총 3가지 위험분담 환급방식을 맺었다. 총액제한형에 더해 구간별 추가 환급형을 도입한 것은 재정 부담을 나눠 위험을 줄이려는 정부의 사후관리 측면이다.
▷비라토비(엔코라페닙)
치료적 위치가 동등한 약제 또는 치료법이 없으며 생존을 위협할 정도의 질환에 사용하는 항암제다. 대조군과 비교한 3상 임상을 했지만 대상 환자가 소수이며, 해당 유전자 변이 환자의 기존 치료제 임상 데이터가 부족해 근거 생산의 곤란함을 인정받았다. 이에 2024년 1월 급여 등재됐다. 연간 투여 환자는 134명, 청구액 39.3억원을 예상하며 상대적 재정 영향이 크지 않다. 하지만 총액제한형, 환급형 위험 분담 계약과 함께 계약 평가 기간 만료 시 국내 약제 사용 자료를 제출하도록 하는 기타 항목을 추가 논의한 약제다.
관련기사
개의 댓글
댓글 정렬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