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T GPT로 다이이찌산쿄와 엔허투를 표현한 그림.
CHAT GPT로 다이이찌산쿄와 엔허투를 표현한 그림.

[팜뉴스=김민건 기자] 일본 사무라이 칼의 정수는 장인정신에 있다. 일본도(카타나 등)는 철 제련 기술이 부족하던 당시 여러 무쇠를 섞어 수백, 수천 번의 단단한 망치질을 견디는 과정에서 태어났다. 불순물을 줄이고, 단단하고, 날카로워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칼이 똑같을 수는 없는 법이다. 어떤 장인이 만들었냐에 따라 품질이 매우 달랐다. 

현 시대 칼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고순도 품질의 강재를 사용하고 공장에서 찍어낸다. 사무라이 일본도와 비교할 수 없는 튼튼함과 날카로움을 가진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일본도가 지금도 '명검'으로 추앙받는 건 장인정신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제약산업도 마찬가지다. 과학에 기반하는 건 동일하지만, 누가 어떻게 만드냐에 따라 '시대를 바꾸는 신약'이 만들어진다. 다이이찌산쿄와 엔허투는 오늘날 항암 분야에서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본의 한 연구실에서 수백, 수천, 수만 번 두드린 항체와 링커, 세포독성 페이로드가 시대를 바꾸는 혁신적인 '명약'으로 태어났다. 그 뒤에는 R&D를 갈망하는 장인정신이 있다.

세상은 과정보다 결과를 중요하게 여긴다. 하지만 과정 없이 결과는 나오지 않는다. 다이이찌산쿄의 엔허투 개발은 준비된 자의 결실이었다. 그간 심혈관계, 내분비계 등 만성 질환 영역에서 탄탄한 파이프라인을 갖춘 제약사로만 알려졌지만, 125년이 넘는 시간 제약사업을 영위하며 과학적 R&D 역량을 쌓아왔다.

'실패에서 배울 게 있다. 꾸준히 연구하고 개발하라.' 다이이찌산쿄의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한 문장이다. 스타틴 제제를 처음 개발했으며, 수많은 신약이 실패하는 제약산업에서 미충족 수요를 충족할 혁신적 치료제들이 다이이찌산쿄라는 이름 아래 처방됐다.

이제 다이이찌산쿄는 항암 영역에서 가장 혁신적인 제약사로 거론된다. 첫 번째 항암 신약인 ADC 표적치료제 엔허투(트라스투주맙데룩스테칸)는 2022년 미국 임상종양학회(ASCO)에서 가장 뜨거운 기립 박수를 받았다. 단순히 생존기간을 개선한 것 이상의 '감동'을 전 세계에 줬기 때문이다. 

전이성 유방암에서 보인 엔허투의 유례 없는 치료 성과로 ADC 제제는 다시금 제약업계에서 가장 유망한 신약 개발 분야로 떠올랐다. 전이성 유방암 치료 환경 자체를 바꿨고, HER2 저발현이라는 새로운 치료군을 발견했다. 수많은 환자들에게 삶의 희망을 안긴 것이다.

종양학 분야만 20년 이상 넘게 판 한국다이이찌산쿄 항암 부문 의학부 부서장(메디컬 디렉터)은 엔허투 성공에 대해 "장기간 R&D에 헌신하는 문화와 경영 철학이 기여했다"고 말한다. 특히, 다른 제약사와 구별되는 독특한 항암사업부 조직 구조는 긴밀한 내부 협력을 이끌며 엔허투 개발과 허가 승인, 급여 등재까지 핵심적인 기여를 했다.

2018년 설립된 한국다이이찌산쿄 항암사업부에 합류한 이 디렉터는 의약품 개발 과정에는 도전 정신과 끈기,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강조한다. 디렉터는 노바티스와 세엘진, 한국먼디파마에서 항암제 Medical Affairs(이하 MA)를 담당했던 고형문 이사다.

약사신문(팜뉴스) 취재진은 창간 37주년 특집 '항암 R&D에서 빛나는 신성 3개 제약사' 중 마지막으로 다이이찌산쿄를 만났다. 고 이사와 인터뷰를 통해 항암사업부 설립과 종양 포트폴리오의 전략 R&D, 엔허투가 HER2 양성 유방암·위암을 비롯한 다양한 암종에서 뛰어난 효과를 보일 수 있는 이유를 들었다.

고형문 한국다이이찌산쿄 항암사업부 의학부 부장(메디컬 디렉터) / 사진. 김민건 기자
고형문 한국다이이찌산쿄 항암사업부 의학부 부장(메디컬 디렉터) / 사진. 김민건 기자

고 이사는 다이이찌산쿄 R&D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다이이찌산쿄가 엔허투를 개발한 게 마치 벼락부자된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거든요. 이런 얘기는 외부에 많이 안 알려져 있어요. 정말 좋은, 혁신적인 항암제를 개발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또 과정을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해요. 엔허투는 10년, 20년 투자해서 얻은 결실이에요."

다음은 고형문 이사와 일문일답.

▶엔허투 미디어세션에서 본 지 2년 만에 만났어요. 지금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요

"지금 한국다이이찌산쿄 항암사업부 의학부 부서장을 맡고 있어요. 공식 타이틀은 메디컬 디렉터인데, 이제 항암제 분야의 주요 연구자와 과학적 파트너십을 공고히 하는 일을 하고요. 주된 업무는 항암제 포트폴리오가 시장에 잘 안착될 수 있도록 협업하는 일이죠."

▶한국다이이찌산쿄 항암제 사업부가 생긴 지 얼마 됐나요

"한국다이이찌산쿄에 항암제 사업부가 생긴 건 2018년 11월이에요. 처음 항암사업부 부장(전무급)을 영입하면서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고요, 3개월 뒤인 2019년 2월 제가 합류하면서 의학부를 신설했어요. 그리고 2021년 4월 1일 마케팅과 마켓엑세스(MA) 헤드가 합류하면서 지금은 항암사업부 조직이 메디컬, 마케팅, 마켓엑세스 '3M' 체제로 구성돼 있죠."

▶3M 체제가 독특하네요

"글로벌 제약사는 일반적으로 사업부가 마케팅과 영업부로 이뤄지는데 다이이찌산쿄 항암제 사업부는 마케팅과 영업부, 의학부, 약가급여부가 같이 있는 굉장히 독특한 조직 구조에요.

예전 노바티스가 이런 구조를 가지고 있었어요. 제가 노바티스에서 일할 당시 글리벡을 성공적으로 출시하기 위해서 항암제 사업부와 제네럴 메디신(General medical) 부문을 완전히 분리 시켰거든요. 의학부와 마켓엑세스, 세일즈, 마케팅을 항암제 사업부라는 하나의 리더십 아래에 둔 덕분에 굉장히 빠르고 신속한 의사 결정을 내렸고 항암제를 잘 출시할 수 있었죠.

다국적제약사 중에 이런 조직 구조를 가지고 있는 회사는 저희가 유일한 걸로 알아요. 굉장히 늦게 항암 영역에 도전했기 때문에 MSD, 노바티스, 로슈 같은 항암 분야 거인들과 경쟁하고, 따라잡기 위해 독특한 조직 구조가 필요했던 거죠. 

항암제는 허가 뿐만 아니라 출시·급여 때 의학부와 약가급여부 역할이 굉장히 중요해요. 마케팅, 세일즈, 메디컬, 약가 부서가 하나의 리더십 밑에 있어야 공동의 목표(KPI)와 협업을 통해 항암제를 빨리 선보일 수 있기 때문이죠.

다른 제약사는 주로 의학부와 마켓엑세스 부서가 분리돼 있어요. 리더십이 다른 거예요. 예로 들면, 마켓엑세스는 항암제 외에도 다른 질환에서 급여 업무를 같이 하고, 의학부도 마찬가지로 항암제 외에 순환기나 호흡기 영역을 함께 할 수 있잖아요. 그러다보면 부서 간 경계가 커지게 되고 공동의 목표나 우선순위가 다르게 되는 거죠.

저희는 항암제 사업부 안에 항암제만 전문으로 하는 약가급여부서와 의학부가 같이 있기 때문에 항암제 사업부장 리더십 밑에서 전문성을 가진 부서 간에 빠른 의사 결정을 할 수 있고,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글로벌 항암사업의 거인이라고 하면 어떤 기준이 있나요

"항암제 매출을 기준으로 본다면 로슈, 노바티스, 아스트라제네카, MSD를 키 플레이어로 볼 수 있어요. 저희 목표는 2030년까지 10위 안에 들어가는 건데 개인적으로 5위까지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항암제 사업부를 신설한 결정은 글로벌 전략인가요

"다이이찌산쿄라고 하면 주로 만성질환, 특히 순환기 쪽에 강점이 있는 회사지 항암제 영역에서는 존재감이 거의 없었어요. 저도 처음에는 "다이이찌산쿄가 항암제도 하냐, 무슨 포트폴리오가 있어"라고 하면서 놀랄 정도였으니깐요. 그러다가 엔허투 데이터를 보고 너무 놀라서 회사에 합류했어요."

▶데이터를 보고 놀랐다고요?

"엔허투가 2017년 미국 임상종양학회(ASCO)에서 유방암, 위암, 폐암 1상 데이터를 발표했고 논문으로 나왔어요. 저는 2018년에 그 데이터를 처음 접했거든요. 그때 "이런 기적의 항암제가 다 있어? 이게 진짜 맞는 거야? 데이터 조작 아니냐"고 할 정도로 너무 놀랐었죠. 

제가 다른 회사에서 항암제를 하면서 위암이나 폐암을 많이 다뤘어요. 노바티스에서 글리벡을 하면서 정말 혁신적인 치료제가 뭔지 한 번 경험해봤고, 현재 기준에서 항암제가 보일 수 있는 치료 효과가 어느 정도가 최선인지 알고 있는 거죠.

그런데 그걸 뛰어넘는 정말 놀랄 만한 데이터가 나와가지고 처음에는 조작한 줄로만 알았어요. 이건 글리벡이나 키트루다 뒤를 이을 만한 약이다. 정말 시대를 바꿀 항암제가 드디어 나왔구나 싶었는데, 내 남은 인생을 여기에 맡겨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대단했어요. 당시 회사의 결단이 지금 큰 꽃을 피우고 있고, 저도 정말 좋은 결단을 했다고 생각해요.

사실 당시에는 아무도 엔허투에 관심을 안 가졌어요. 있는 줄도 몰랐겠죠. 사실 첫 번째 항암제는 엔허투가 아니라 퀴자티닙이라는 급성 골수성 백혈병 치료제였고, 글로벌 3상 데이터가 나와서 전 세계 출시를 앞두고 있었어요. 2018년 11월 항암사업부가 발족한 건 퀴자티닙의 글로벌 출시를 위해서지 엔허투 출시가 임박해서 항암사업부를 꾸린 건 아니었던 거죠. 

그 다음 후속 항암제는 펙시다티닙이라고 건활막거대세포종(tenosynovial giant cell tumor, TSGCT)이라는 종양을 치료하는 약인데 전 세계 출시를 준비 중이었어요. 순서대로 하면 가장 빨리 허가될 신약이 혈액암이었고 그 다음이 양성 종양, 그리고 유방암·위암이었던 거죠.

제가 회사에 들어왔을 때 엔허투는 1상 데이터 밖에 없었고 한참 2상 중이었어요. 그해 12월 샌안토니오 심포지엄이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유방암 학회에서 2상 최종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었죠."

▶사람들 생각과 달리 오래 전부터 항암 사업을 준비했네요

"그렇죠. 다이이찌산쿄가 항암제와 전혀 무관한 회사이고 스타틴 같은 만성 순환기 질환 전문회사로 생각하지만, 내부적으로 20년 넘게 항암제를 개발해오고 있었어요. 저도 회사가 ADC 같은 항암제 개발을 한 게 10년 미만의 짧은 역사라고 생각했는데 2008년부터 씨젠(Seagen)과 ADC 개발 협업을 할 정도로 역사가 굉장히 길다는 것을 들어와서야 알았죠. 상당히 놀랄 수밖에요.

엔허투가 전부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는데 로슈나 노바티스처럼 정말 파이프라인이 많아요. ADC뿐만 아니라 TKI, mRNA까지 다양한 기반 기술을 갖고 있거든요. 실제 야쿠르트와는 엑사테칸이라고 하는 항암제를 공동 개발해서 치료제로 쓰고 있고, 2003년부터 ADC에 들어가는 링크 기반 기술 GGFG 펩타이드 개발을 완료한 상황이었어요. 이미 세포독성 항암제나 링커 등 기반 기술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ADC 기술을 로또처럼 우연히 얻은 게 아니라 장기 투자의 결실이죠."

▶저도 놀랍네요. 다이이찌산쿄 항암제 R&D가 이렇게 오래됐을 줄 몰랐어요

"일본계 제약사는 좀 다른 게 있어요. 다국적제약사는 R&D 성과가 안 나오면 프로젝트를 바꾸거나 부서를 통폐합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일본계 제약사는 장인정신 같은 게 있어요. 실패하더라도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투자하는 문화가 있어서 R&D에 대한 투자, 회사 철학이 다른 것 같아요.

특히 R&D 출신을 우대하는 독특한 문화가 있어요. 보통 다국적제약사 리더들은 주로 커머셜 출신이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 현재 다이이찌산쿄 마나베 스나오 글로벌 회장이 R&D 출신이고, 아시아 지역 나가오 키미노리 사장도 30년 이상 R&D에 있었어요.

회사의 장기적인 성장에 있어 지속적인 R&D 투자와 이를 통한 혁신을 추구하는 것이 성공적인 R&D에 있어 굉장히 큰 밑바탕이 됐고, 다이이찌산쿄가 스타틴을 최초로 만들었다는 점을 보면 인력 구조 외에도 창의적이고 연구개발 중심의 혁신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거죠."

CAHT GPT로 표현한 그림.
CAHT GPT로 표현한 그림.

 

▶다이이찌산쿄만의 R&D 문화가 확실하네요

"어떤 프로젝트를 하면 단기간에 성과를 내는 것보다, 오랫동안 해서 성과를 내도록 장려하고 있어요. 개인이 가진 아이디어도 무시하지 않고 성과로 낼 수 있게 회사 차원에서 장려하는 R&D 문화죠. 엔허투에 들어가는 세포독성 항암제도 임상 중 독성 문제로 실패해서 더 이상 출시가 불가능한 상태의 항암제였는데, 이걸 변형해서 ADC로 개발할 정도의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투자 문화가 내부에 있었어요. 외부에는 그렇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잠재력을 키워가고 있었던 거에요.

그러다보니 작은 성과에 집중하기보다는 장기간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고, 실패하더라도 무언가 배울 수 있다는 기업 문화, 장인 정신이 엔허투를 개발할 수 있었던 가장 근본적인 다이이찌산쿄의 문화라는 생각이 들어요.

MSD, 화이자, 로슈, 노바티스 심지어는 아스트라제네카도 자체 개발보다는 라이센스 인이나 기업 합병 전략으로 파이프라인을 확충하는 경향이 있어요. 대부분 제약사가 내부 인력과 기술을 구축하는데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는데 훨씬 생산적인 거죠. 

그런데 다이이찌산쿄는 이 모든 것을 내부 인력과 기술(이하 인하우스 테크놀로지)을 바탕으로 개발하고 있어요. 인하우스 테크놀로지는 기술적 노하우와 인프라, 그것을 운용하는 인력을 모두 포함하고요.

엔허투로 얘기하면 항체-약물접합체(ADC)라서 항체하고 링커가 필요하고, 항암 효과를 발휘하는 세포 독성 페이로드도 있어야 하고, 페이로드를 항체에 붙이는 기술도 필요하거든요. 이 기술을 다이이찌산쿄 자체적으로 다 가지고 있는 거죠. 

ADC는 이렇게 플랫폼 하나를 만들면 항체만 바꿔 끼워서 여러 ADC를 만들 수가 있는데, 지금 데룩스테칸이라고 링커와 페이로드 플랫폼을 만들어서 항체만 바꿔서 연구하는 ADC 임상만 5개에요. 회사 내부에 오랜 기간 축적한 자체 인력과 기반 기술을 가지고 있어서 엔허투를 이을 차세대 ADC 개발이 가능한 거죠.

결국 연구 인력을 우대하고, 프로젝트에 장기간 투자하며, R&D 플랫폼을 내부에 구축해서 관련된 기반 기술을 직접 개발하는 점. 다른 글로벌 제약사와 다이이찌산쿄 R&D의 차별점이고, 이런 부분들이 짧은 시간에 다이이찌산쿄를 항암제 분야에서 존재감 있는 제약사로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외부에서 어떤 노하우나 특허를 사온 게 아니라 끊임없이 연구개발에 투자했고,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려도 모든 기반 기술을 갖춰서 TKI나 ADC, mRNA 같은 것을 모두 개발할 수 있게 구축해놨기 때문에 후속 파이프라인도 계속 낼 수 있는 거죠."

▶R&D에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잖아요. 과거부터 계속 항암제를 개발한 이유가 있나요

"엔허투가 나오기 전까지 다이이찌산쿄의 연간 글로벌 매출이 10조 정도인데 대부분 만성질환 영역에서 발생하고 있었어요. 일본에서 절반, 나머지 절반 매출이 해외에서 나왔는데 제가 들어올 때만 해도 글로벌 오피스는 25개 정도로 다른 다국적제약사에 비해 판매망이 충분하지 못한 상황이었죠.

심혈관 관련 치료제에 많은 투자를 했는데 왜 갑자기 항암제에 투자하느냐. 글로벌 수준에서 심혈관계 시장이 축소되면서 성장률이 둔화하고 경쟁이 너무 심해지는데, 우리가 계속 살아남을 수 있겠냐는 고민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면에서 내부적으로 후속 파이프라인 다변화 필요성을 느꼈고 사업 모델의 다양화를 많이 생각한 것 같아요.

내부적으로 여러 프로젝트가 있었던 걸로 알고요. 비즈니스 교과서에도 나오는 내용이 다이이찌산쿄의 란박시 인수합병이에요. 인수합병을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 영역을 개척하려고 했는데, 비즈니스 전략면에서 실패하자 회사가 변화를 주기 위해 어떤 분야가 유망한지 보니 역시 항암제가 성장률, 시장 점유율 모두 가장 관심을 둘 만한 치료 영역이었죠. 

마침 회사가 과감히 투자로 변화를 주자고 했던 건데, 굉장히 오래 전부터 항암제 R&D 역량을 키워왔고 기반 기술이 있었기 때문에 엔허투라는 놀랄 만한 연구 성과를 낸 거죠. 결국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어도 내부적으로 오랫동안 항암제에 투자해왔고, 외부 회사나 기술을 사온 게 아니었으니 항암제 개발 제약사로 본격적으로 전환하기 위해 과감히 투자했고, 결과가 따라온 것이다.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엔허투는 계속 적응증 확대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천문학적인 임상 개발 비용이 들어가요. 한 회사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죠. 항암제 개발 전문성을 가진 아스트라제네카, 미국MSD 같은 글로벌 파트너사와 협업해서 공동 개발, 판매 전략을 취하고 있고요. ADC 포트폴리오 개발 위험을 분산시키면서 광범위한 치료제 조기 개발에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고형문 한국다이이찌산쿄 항암사업부 의학부 부장(메디컬 디렉터) / 사진. 김민건 기자
고형문 한국다이이찌산쿄 항암사업부 의학부 부장(메디컬 디렉터) / 사진. 김민건 기자

 

▶예전부터 ADC나 mRNA, TKI 같은 여러 항암 플랫폼 개발을 해온 게 엔허투라는 대박으로 터진 거네요

"그렇죠. 프로젝트를 중단하지 않고 꾸준히 투자한 것이 결국 엔허투라는 결실로 맺게 된 거죠. 만약에 회사가 "그거 돈 안 돼, 인력 재배치 해. 항암제 인원 순환기 쪽으로 다 보내라"고 했다면 아마 엔허투는 절대 나올 수 없었을 거예요.

ADC는 항체, 페이로드, 링커 조합이 완전히 화학(케미스트리)이에요. 단시간에 개발할 수 없는 것들이고 정말 모든 조합을 다 해봐야지만 나올 수 있는 건데. 저희는 오랜 연구를 통해 과정을 다 거쳤으니 결과를 기다리고, 지켜주고, 끊임없이 투자한 거죠. 경영진 철학이 빛을 발한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어요. 그동안 항암제 사업부는 매출은 없고 지출만 하는 부서였는데 만성질환에서 벌어들인 매출을 계속 항암제에 투자하고 성과를 맺었다는 게 특징인 것 같아요.

요즘에 ADC 개발 안하면 제약회사가 아닌 시대가 됐어요. 포트폴리오에 꼭 ADC 하나씩은 있어야 "제약사 맞네"라는 인식이 있는 거죠. 많은 바이오벤처, 바이오텍들이 나는 링커 아니면 페이로드에 특허 기술이 있다고 하는데, 제가 볼 때는 이게 하루아침에 나올 수 없어요.

다른 외국계 제약사나 한국 회사도 투자 뒤 결과를 조급하게 기다리는데, 한국에서도 엔허투 같은 항암제 만들려면 10~20년 굉장히 장기간 투자해야 해요. 정말 장기간 투자한다는 개념으로 해야지만 혁신신약을 내놓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다이이찌산쿄가 연구하던 수많은 파이프라인 중에 ADC 개발은 왜 포기하지 않았던 건가요

"저 또한 회사가 소분자 단백질이나 세포독성을 이용한 항암제 개발을 할 수도 있는데 왜 ADC를 했는지가 궁금했어요. ADC는 화이자가 2001년 마일로탁으로 FDA 허가를 받았는데 1998년에 치료용 항체인 허셉틴, 2000년에는 TKI 표적치료제 글리벡도 허가를 받아서 시기상으로 비슷했거든요.

그런데 ADC는 지금까지 허가된 게 13개 밖에 없어요. TKI는 FDA 기준으로 한 80개 정도 허가된 것 같아요. 많은 제약사가 치료용 항체, TKI 치료제에 투자해서 시장이 굉장히 성장했는데 왜 그동안 ADC를 등한시 했을까, 다이이찌산쿄는 왜 ADC에 투자했을까 생각한 거죠.

일단, 첫 번째로 다이이찌산쿄가 토포아이소머라제-1 효소를 표적하는 세포독성 항암제를 가지고 있었고 이걸 상당히 오래 연구했어요. 직접 글로벌 임상까지 해서 판매하려고 했는데 독성이 너무 심한 탓에 완전히 프로젝트가 망해서 돈만 날렸어요. 여기서 끝냈으면 발전이 없었겠죠. 회사가 이걸 더 고도화하려고 노력했어요.

아까 회사가 한 개인의 아이디어를 굉장히 격려하고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고 말했잖아요. 실제 일본 연구소에 있는 한 연구원이 ADC 형태로 개발해보자고 제안했고, 회사가 프로젝트를 지원해서 나온 걸로 알아요. 항암제 유사체를 많이 만들어서 효과적인 세포독성 항암제를 연구했고, 그 다음에 사람 몸 안에서 안정적으로 항암제를 전달할 수 있는 폴리머 펩타이드 링커를 연구했어요.

일반적으로 세포독성 항암제는 굉장히 하이드로포빅해요. 소수성이 강하고 친수성이 약해서 우리 몸 안의 여러 조직, 세포에 굉장히 쉽게 비 특이적으로 결합하거나 항암제끼리 응집을 일으킨다는 거죠. 몸 안에서 세포독성 항암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면 친수성적인 특성이 필요한데, 이를 높이기 위해 GGFG(글라이신 글라이신 페닐알라 글라이신)라는 테트라펩타이드를 붙여서 친수성 단백질 폴리머 캐리어를 만든 거에요.

4개의 테트라펩타이드를 기반으로 한 친수성 캐리어를 세포독성 항암제에 붙이면 우리 몸에서 항암제가 안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거든요. (GGFG 펩타이드는 암세포 내 특정 효소에 의해 절단되기 때문에 약물 전달 시스템 효율성을 높여 치료 효과를 개선하고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처음부터 ADC를 개발하려고 한 것도 아니고, 세포독성 항암제(페이로드)나 링커를 개발한 것도 아니죠. 항암제를 좀더 안정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어떤 펩타이드 캐리어를 만들려고 했고, ADC 링커로 써보니 효과를 굉장히 높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여기에 검증된 항체를 붙여보자고 해서 이미 시판 중이던 허셉틴(트라스트주맙)에 GGFG 펩타이드 링커를 붙였고, 기존에 실패했던 세포독성 항암제를 고도화된 유사체로 만들어 연구했더니 효과가 너무 잘 나온 거죠. 생각을 바꿔서 우리가 가진 걸 다 합쳐보니 ADC에 가장 최적화된 구성 요소가 된 거죠.

엔허투를 보면 항암제가 이렇게도 탄생할 수 있구나라는 것을 느껴요. 과거부터 세포독성 항암제와 친수성 펩타이드에 대한 연구가 없었다면 지금 엔허투라는 약은 절대 나올 수 없었던 거죠. 개별적으로 실패했어도 잘 조합을 하면 새로운 항암제가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실패한 사례도 나중에 성공의 주요한 요소가 될 수 있는 거예요. 모든 제약사들이 케비닛에다가 '실패한 프로젝트'를 넣어 놓는데 이걸 잘 긁어모으면 유망한 항암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기존에 사용하던 세포독성 항암제 효과와 부작용이 너무 심해서 실패했는데 다시 되살렸네요

"처음에 ADC에 사용하는 세포독성 페이로드를 일반적인 세포독성 항암제처럼 정맥주사(Intravenous Injection, IV) 방식(Systemic Therapy)으로 개발했어요. 그런데 항암 효과가 너무 강해서 독성도 너무 심했고, 부작용 때문에 항암제로 쓰기 위한 임상시험을 하다가 실패한 거죠. 아마 이때 다이이찌산쿄가 항암제 개발이 쉽지는 않다는 걸 느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 엔허투에 들어간 건 당시 임상에 실패한 세포독성 페이로드 구조를 약간 변형한 상태로 사용하고 있어요."

▶세포독성 페이로드 외에도 항체하고 링커도 ADC에서 중요하다고 들었어요

"세포독성 항암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효과는 너무 좋은데 '오프 타겟 이펙트(off-target effect)'라고 해서 정상세포랑 암세포를 구분 못 해요. 정상세포 조직에 너무 큰 손상을 주는 거죠. 항체의 가장 큰 특징이 특정 항원만 인식해요. 항암제가 암세포만 특이적으로 표적할 수 없을까 했을 때, 암세포에만 특이적으로 발현하는 항원이 있다면 세포독성 페이로드를 특정 세포와 조직으로 전달할 수 있는 항체에다가 붙여서 정상 조직은 공격하지 않고 암세포에만 효과적으로 전달시킬 수 있는 거죠.

최초 개발한 세포독성 항암제 효과가 너무 좋아서 부작용이 컸다고 했잖아요. 다이이찌산쿄는 이걸 암세포에만 전달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은 항암제가 될 수 있다고 봤어요. 결국 항체의 선택성과 세포독성 항암제의 효력을 딱 결합한 ADC를 만들어내면서 기존 세포독성 항암제가 정상세포와 암세포를 구분하지 못해서 생기는 부작용을 상당히 개선할 수 있게 된 거죠."

▶엔허투 링커는 다른 ADC와 어떻게 다른가요

"저는 엔허투가 다른 ADC와 가장 차별화된 점이 링커 개발이라고 봐요. 암은 돌연변이가 계속 생기기 때문에 콩알만한 암세포에도 다양한 특성을 가진 암 덩어리들이 있어요. 현대 암 치료의 가장 문제는 다양한 돌연변이가 있고, 바이오마커가 균일하지 않은 암세포를 어떻게 사멸시킬 것인가인데 이걸 극복할 수 있는 게 '바이스탠드 이펙트(Bystander effect)'라는 거죠.

아까 GGFG 펩타이드 링커를 말했잖아요. 캐싸일라(트라스투주맙 엠탄신)가 2013년 최초로 고형암에 승인받은 ADC에요. 그런데 캐싸일라는 세포독성 항암제랑 항체를 연결하는 링커가 분리되질 않아요. ADC는 암세포 안으로 들어가서 라이소좀에 의해 분해되는데 캐싸일라는 링커가 아미노산하고만 끝까지 붙어 있어서 표적하는 암세포만 죽일 수 있는 거죠.

엔허투의 GGFG 펩타이드 링커는 굉장히 특이해요. 라이소좀 안에 있는 특정 효소에 의해서 암세포 특이적으로 정확히 잘려요. 암세포 안에 항체가 링커에서 완전히 분리되기 때문에 세포독성 페이로드는 주변에 다른 표적 암세포가 있건 없건 침투할 수가 있고, 암이 돌연변이를 갖고 있거나 항체 표적이 되는 바이오마커가 없어도 치료 가능한 바이스탠드 이펙트가 있는 거죠. 이렇게 특이한 링커가 있기 때문에 캐싸일라 보다 4배 이상의 무진행생존기간(PFS)이 가능해요.

항암제 개발은 바이올로지(Biology)도 중요하지만 ADC는 대부분 케미스트리(Chemistry)라고 보면 돼요. 여러 가지 화학 조성을 어떻게 구성하냐에 따라 굉장히 많은 것을 만들 수 있는 거죠. 제가 엔허투 연구개발 일지를 봤는데 GGFG 펩타이드 링커를 만들 때 정말 장인 정신처럼 수많은 조합을 다 해봤어요. GGFG가 가장 친수성이면서 높은 효율로 절단된다는 것을 찾을 수 있었고 최적의 조합으로 맞춘 게 엔허투에요."

▶첫 항암제로 유방암 치료제를 개발하게 된 건 장기적인 R&D 성과네요

"처음에 허셉틴(트라스투주맙)에다가 저희가 가진 세포독성 페이로드와 링커를 달았다고 했잖아요.  허셉틴은 25년간 유방암, 위암에서 표준치료제로 사용한 검증된 항체에요. 저한테 많이들 ADC는 어떤 게 제일 중요하냐고 물어보는데 항체, 링커, 페이로드 세 가지 모두 다 중요해요. 그러면 다시 어떤 항체를 써야하냐고 물어요. 항체는 검증된 게 중요하죠. 링커랑 페이로드가 아무리 좋아도 문제가 있는 항체를 쓰면요 링커와 페이로드 중에 어떤 것 때문에 문제인지를 몰라요.

만약 소분자 화합물 항암제는 문제가 생기면 어떤 것 때문에 잘못됐는지 알 수가 있어요. 그런데 ADC는 하나의 약에 세 가지 구성 성분이 들어가 있잖아요. 항암 효과가 안 나오면 항체, 링커, 페이로드 중에 뭐가 문제인지, 접합이 잘못된 건지 확인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유방암과 위암에서 표준치료제로 사용하는 허셉틴 기반 ADC를 굉장히 많이 연구해요.

저희도 허셉틴 효과를 훨씬 더 개선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1차적으로 유방암과 위암, 그 다음에 HER2를 발현하는 다른 고형암에서 임상을 했던 것이고, 역시나 허셉틴 보다 훨씬 나은 치료 효과를 보인 거죠."

엔허투
엔허투

 

▶ADC도 1,2,3세대가 있잖아요

"세대 구분은 산업계에서 명확히 구분하는 게 없어서 부르는 게 제각각이에요. 기존 ADC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점을 극복하면 차세대라고 보는 게 적절한 것 같아요. 1세대인 케싸일라를 썼는데 내성이 생겨서 암이 진행했고, 엔허투를 써서 극복했다면 당연히 1세대보다 더 나은 치료 효과를 가졌으니까 2세대라고 하는 거죠. 

일반적으로 1세대 ADC는 특이적으로 잘리지 않는 안정적인 링커를 사용하고요, 항체 약물 접합 비율(DAC)이 상대적으로 적은 4 이하이고, 접합에서는 비특이적 라이신 접합과 적응증 확대에 한계가 있는 것을 초기 ADC라고 해요.

항체에 아미노산이 1300개가 있어요. 아미노산 하나당 세포독성 페이로드를 붙이면 1300개를 붙여서 더 좋은 항암 효과를 내겠다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원칙적으로 항체 하나에 붙일 수 있는 페이로드는 현재 8개에서 10개가 최대치에요. 

페이로드가 굉장히 소수성이에요. 많이 붙이면 소수성 상호작용 때문에 서로 붙어버리거나 세포막 표면 비특이적으로 결합할 수 있어요. 결국 1세대, 2세대 ADC는 링커가 잘리느냐 안 잘리느냐에 따라 안정성 링커(Non-cleavable linker)와 클리비즈 링커(cleavable linker)로 구분하는 거죠.

그다음이 페이로드를 얼마나 많이 붙이냐인데. 결국 접합(컨쥬게이션)이 굉장히 중요해요. 1세대 ADC는 대부분 라이신 접합을 하는데 항체에 있는 아미노산 1300개 중에 100개 정도가 라이신에 있어요. 라이신은 조건만 맞추면 링커가 굉장히 쉽게 붙을 수 있는데, 문제가 무작위에요. 만약 페이로드 4개를 붙인다고 했을 때 어디로 갈지 모르는 거죠. 항체가 항원을 결합하는 부위나, 항체 안전성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에 가서 붙을 수 있으니까요.

반면에 엔허투 같은 2세대는 시스테인의 이황화 결합(disulfide bond)을 끊고 접합하는 방법을 써서 이론상 24개의 특정 위치에 붙일 수 있게 콘트롤 할 수 있고, 상대적으로 더 안정적인 약동학(PK) 프로파일을 가질 수 있어요.

결국 2세대는 1세대와 다르게 절단형 링커를 쓰고, 시스테인 접합을 한다는 게 특징이고요.  또한 적응증을 늘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국내 바이오텍들이 3세대는 아미노산 1300개 중에 원하는 특정 위치에 개수를 조절해서 붙일 수 있다고 많이 얘기하고 있죠. 제가 ADC를 오래 하다 보니 항체, 링커, 페이로드 그리고 이것들을 붙이는 접합 기술 4가지 중에 어느 하나만 독특한 기술이 있다고 해서 항암 효과를 잘 나타낼지는 물음표를 가지고 있어요. 만약 4개 중 어느 하나만 조금씩 부족해도 앞으로 갈 수가 없어요. 

결국 4개의 바퀴가 한 방향으로 정렬된 게 더 중요하다는 거죠. 개인적으로 엔허투를 뛰어넘는 ADC를 만들기 위해서는 항체, 링커, 페이로드, 접합 기술을 모두 잘해야 한다고 봅니다. 엔허투를 쓰고 나서 생긴 내성을 극복하거나 기존 승인된 세포독성 페이로드 외에 다른 기전을 갖는 페이로드를 사용한다면 3세대라고 보고, 진보된 기술로 인정받을 수 있겠죠."

▶엔허투 만한 성적을 내는 ADC는 없나요

"지금까지 승인된 ADC 치료제 13개가 있는데 고형암에서 엔허투 만한 성적을 내는 건 없어요. 엔허투가 유방암, 위암에서 표준치료가 돼버렸어요. 올해는 폐암이나 대장암, 소화기암, 비뇨기암 부인암까지 팬튜머(pan-tumor, 특정 암종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치료 전략이 가능한 치료제)로도 FDA 승인을 받을 걸로 예상하기 때문에 ADC를 개발한다고 하면 엔허투를 기준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저희도 엔허투 후속으로 기존 페이로드와 링커를 뛰어넘는 혁신적인 차세대 ADC 연구를 하고 있어요. 유방암 2차치료에서 엔허투를 사용해도 약 30개월이 지나면 결국 암이 진행하니깐 당연히 새로운 치료제 개발이 필요하죠. 일본계 제약사들이 케미스트리에 축적해 놓은 기초 기반 기술이 많은데, 저희 케비넷에도 공개하지 않은 프로젝트들이 굉장히 많아요. 차세대 플랫폼을 개발해놓고 한창 임상이 진행 중이고요. 어느 정도 시간은 걸리겠지만 엔허투를 넘어서는 ADC는 다른 제약사가 아니라 다이이찌산쿄에서 나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다이이찌산쿄가 엔허투를 통해 항암제 전문 회사로 변신했다고 봐도 될까요

"네 맞습니다. 2030년에 세계 10위 항암제 전문 제약사로 탈바꿈하겠다는 기업 목표를 가지고 있어요. 현재 항암 영역의 글로벌 플레이어인 제약사들 못지 않게 많은 적응증에서 임상을 하고 있어요. 회사의 파이프라인이 만성질환에서 점점 스페셜티 치료인 희귀질환, 유전자질환과 mRNA를 이용한 항바이러스 제제, 항암제 영역으로 확장해 가고 있는 거죠.

물론 만성질환 등 프라이머리 케어(Primary Care) 영역이 여전히 캐쉬카우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부서예요. 현재 항암사업부는 막 시작한 초기 단계의 작은 규모고요. 한국에서는 만성질환 치료 영역이 워낙 규모가 크고 저희가 잘해왔기 때문에 프라이머리 케어와 항암 사업이 쌍두마차처럼 다이이찌산쿄 비즈니스를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할 걸로 생각해요. 항암사업부는 올해 상반기 엔허투 급여를 필두로 해서 적응증 확대, 추가 포트폴리오 도입 등 성장세가 계속 이어질 걸로 예상하기 때문에 인력 등 조직 규모가 차츰 커질 걸로 예상합니다."

▶엔허투 급여는 상반기에 될 수 있을까요

"알다시피 지난 2월 약평위 통과해서 공단 협상이 완료됐어요. 저희 목표는 반드시 상반기에 하는 것이고, 4월이라도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생각해요. 올해 가장 중점을 두는 분야는 엔허투 급여 이후 신속히 처방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인데, 단 한 명의 유방암·위암 환자도 엔허투를 맞지 않는 경우가 없도록 하는 게 목표예요."

▶방금 말한 HER2 저발현이 엔허투로 인해 새로 만들어진 치료 영역이라고 하던데요

"지금은 표적치료와 맞춤형 치료라고 해서 가장 먼저 암의 발생과 진행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바이오마커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하고요, 바이오마커를 찾으면 표적 항암제를 만드는 게 일반적인 순서예요. HER2 저발현은 기존에 바이오 마커가 아니었어요. 왜냐면 기존에 치료 효과를 가진 표적치료제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엔허투가 기존 치료 옵션과 항암요법이 없는 영역에 들어왔어요. 1상 임상에서 HER2 저발현 환자를 포함시켰더니 기존 치료제와 비교해서 월등한 효과가 났어요. 새로운 치료제가 먼저 나오고 이것과 연결되는 바이오마커가 나중에 나온 건데. 효과가 너무 좋으니까, 기존 항암제 개발의 일반적인 루틴을 벗어난 거죠. 

특히 HER2 저발현은 한 번도 HER2 표적 치료가 성공한 적이 없어요. 2022년 ASCO에서 엔허투가 기립박수 받은 게 HER2 양성, HER2 음성으로 나눠서 치료하던 기존 방침을 넘어섰기 때문이거든요. 엔허투가 새로운 바이오마커 기준을 만들어서 HER2를 받지 못하던 환자들이 치료받을 수 있게 개념을 완전히 바꾼 거죠.

HER2 치료제가 유방암과 위암 밖에 없어서 바이오마커 검사를 두 암종 위주로 했어요. 이제는 HER2 양성인지 아닌지 검사부터 해야 한다고 하죠. 엔허투가 HER2 변이 비소세포 폐암, 난소암, 췌장암, 담도암 모두 새로운 치료 옵션을 주게 되고, 암종불문 항암제로 허가받으면 모든 암종에서 HER2 검사가 정말 활발히 이뤄질 것으로 기대해요."

▶다이이찌산쿄가 처음 개발한 항암제가 엔허투인데, 너무 혁신적인 치료제를 만들었어요. 기존 치료제 대비 무진행생존기간 4배 개선, 질병진행·사망위험 70% 감소가 수치적으로 대단한 건 알겠는데, 실제 체감될 수 있는 혁신성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기존 HER2를 표적하는 항암제 중에 2개 이상의 적응증을 받은 항암제는 허셉틴(트라스투주맙)이 유일했어요. 다른 암도 HER2를 발현하긴 하지만 효과가 거의 없었고요, HER2 치료제는 유방암, 위암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게 정설이었죠. 임상시험을 했지만 효과가 없는 걸로 드러났고 10년 동안 모든 회사들이 다 실패했으니까요.

그런데 HER2를 표적하는 엔허투가 갑자기 나타나서 유방암과 위암에서 효과를 엄청나게 개선했어요. 기존 치료에 실패한 폐암, 유방암, 소화기암, 비뇨기암, 부인암 환자들한테까지 효과가 있었다는 것은 엔허투가 단순한 HER2 표적 치료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특히 비소세포 폐암에서 HER2 변이가 있는 환자들은 진단되면 1년 안에 죽어요. 항암화학요법, 면역치료제, 방사선 치료 모두 효과가 없어요. 지금 나온 엔허투 데이터만 해도 2년은 생존할 수 있는데 그것도 1차치료가 아니라 2차치료니까 정말 월등한 거죠. 

엔허투가 기존 항암제가 개척하지 못한 길을 가고 있어요. 지금 엔허투가 가진 4개의 적응증은 ADC 중에 가장 많이 획득한 거고요. 이제 펜튜머가 적응증이 되면 키트루다처럼 조직불문항암제(Tissue Agnostic Therapy)로 쓸 수 있는 기반을 가질 수 있어요. 치료 패러다임을 바꾸고, 환자 생존의 개선을 획기적으로 증가시켰다는 점에서 엔허투와 비교할 수 있는 치료제는 글리벡하고 키트루다 밖에 없다고 봐요. 

키트루다가 각광 받는 이유가요 반응률이 낮아도 10~20% 환자는 장기 생존을 한다는 거예요. 엔허투도 마찬가지예요. 장기생존 환자가 10~20% 정도 있는데 조기 단계로 가면 더 많이 나올 것으로 봐요.  지금 한국에서 임상에서 참여한 후 5년 생존해 계신 환자들이 있어요. 생존률을 정말 획기적으로 개선했다는 점에서 엔허투는 기존 항암제와 차원이 다른 걸 알 수 있죠."

▶엔허투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데 국내외 의료진 반응은 어떤가요

"2019년만 해도 종양외과에서 큰 환영을 못 받았어요. 로슈, 노바티스 하면 항암제 전문성이 있고 기술이 뛰어나다는 얘기를 하는데 다이이찌산쿄는 그런 게 전혀 없었거든요. 5년 만에 확 달라졌다는 걸 체감하고 있어요. 일단 첫 번째로 종양내과 의료진이 다른 제약회사와 유방암 관련 미팅을 하면서 "엔허투 데이터 봤냐, 그런 약을 개발해야 한다"고 얘기를 해요.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거든요. 저희랑 만나서 엔허투 얘기하는 건 맞는데. 이런 것들을 보면서 엔허투가 어떤 약인지 느낄 수 있죠.

또 2019년에는 학회를 가도 저희 약을 다루는 빈도가 굉장히 적고 소규모였어요. 지금은 엔허투가 워낙 다양한 적응증에서 결과를 내니까 후속 ADC에 대해서 많이 다루고 있어요. 우리 회사 심포지엄도 아니고 학술대회인데, 이렇게 많이 다뤄도 되나 싶을 정도로 높은 관심을 갖는 거죠.

정말 다이이찌산쿄가 5년밖에 안 됐지만 로슈, 노바티스, MSD, 아스트라제네카 같은 글로벌 항암 거인들과 같은 반열에 든 게 아닌가 자부심을 많이 느껴요. 암 환자들에게는 생존이 걸린 문제이고 하루하루가 굉장히 절박해요. 엔허투처럼 좋은 치료 옵션을 통해 삶의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것. 한국 연구자들이 과학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기회에 저희도 역할을 한다는 데서 보람을 많이 느끼고 있어요."

▶엔허투가 국내 의료진과 환자에게 줄 수 있는 진정한 가치는 무엇으로 보시나요

"사실 전이성 암은 치료 목적이 완치는 아니거든요. 조기 암인 경우 수술을 통한 완치가 목적이지만, 전이성 암은 생존 기간을 늘리면서 삶의 질을 높이고 증상을 완화시키는 게 목적이에요. 결국 일정 기간 후에 돌아가시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치료를 오래 끌고 가자는 건데요. 엔허투가 전이성 유방암으로 진단받아도 죽지 않는다. 치료가 잘 되면 전이가 심해도 살 수 있다는 완치 가능성, 삶의 가능성을 보여준 게 가장 큰 희망이자 가치라고 봐요.

부작용 면에서 보면 항암 환자들은 증상이 심해서 밤에 잠도 못 자요. 엔허투는 투약 후 1사이클만 지나도 암이 소멸하면서 정말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어요. 증상을 완화시키고 치료 효과가 드라마틱하다는 점. 결국 이런 부분에서 원 오브 뎀(One of Them)인 항암제와는 차이가 있다고 얘기하고 싶어요."

▶앞으로 항암사업부의 현재와 미래는 어디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지금은 엔허투가 HER2 양성 위암, 유방암에서만 허가·급여를 받았지만 앞으로 HER2 저발현 유방암과 HER2 돌연변이 비소세포 폐암, HER2 과발현 고형암에서도 쓸 수 있게 적응증 확대를 준비하고 있어요. 엔허투 이후에는 Dato-DX, HER3-DXd, R-DXd, I-DXd 같은 다른 ADC 후속 자산과 퀴자티닙 같은 TKI들도 있고요.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통한 항암 전문제약사로서 기반을 갖추고,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사업 모델을 만드는 게 중장기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기대하는 엔허투 후속 약물이나 추가 적응증이 있다면요

"지금은 ADC하면 엔허투가 표준처럼 여겨지고 있다고 했잖아요. 제약산업 전체에 ADC 유행을 다시 일으키고 새로운 표준치료 기준이 된 것도 사실인데, 저희가 다른 회사와 다른 게 엔허투를 자체 개발하다 보니 앞에 말한 ADC의 모든 기술이 있어요.

Dato-DXd, HER3-DXd, R-DXd, I-DXd 등 표적하는 항체가 다른 ADC 후속 약물 모두 임상 개발 중에 있어요. HER3-DXd는 HER3를, I-DXD는 B7-H3를, R-DXD는 cadherin 6 라는 걸 타겟으로 해서 임상을 진행하고 있어요. 유방암, 위암을 넘어서 두경부암, 소화기암(대장암, 담도암), 비뇨기암(전립선암, 방광암)이 있고요. 부인암(난소암, 자궁내막암, 자궁경부암)까지 적응증을 굉장히 많이 늘리고 있는 거죠.

현재 다이이찌산쿄 연구개발 자원의 50%는 유방암에 쓰고 있고, 전이성 유방암 뿐만 아니라 조기 유방암, HER2양성, 호르몬 양성, 삼중음성유방암까지 모두 표적하고요. Dato-DXd는 폐암에서 처음 허가받는 TROP-2 표적 ADC가 될 것으로 예상해요. 4개의 ADC 포트폴리오가 다양한 암종에서 엔허투 같은 역할을 해주길 기대하고 있고, 그런 데이터가 나오고 있어서 암 치료 전망이 밝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고형문 한국다이이찌산쿄 항암사업부 의학부 부장(메디컬 디렉터) / 사진. 김민건 기자

▶의학부 디렉터로서 앞으로 신약을 개발하는 제약사의 사명이라면 어떤 것을 말할 수 있을까요 

"엔허투 임상 프로그램 이름이 '운명(Destiny)' 시리즈예요. 제가 이 회사에 있는 것도 사실 운명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런 운명적인 것을 어떻게 잘 이어갈 수 있을까, 여기서 일하는 의미와 가치가 정말 무엇일까 생각을 해요.

저는 정말 많은 항암제를 경험했어요. 그중에는 고만고만한 항암제도 있었고, 글리벡이나 엔허투처럼 환자의 삶을 완전히 뒤바꿔서 기적을 가져오는 항암제가 있거든요. 결국 환자에게는 희망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죽을 수 있다는 절망이 아니라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그 뒤에는 가족이 있기에 혼자가 아니다는 것을 주고 싶어요.

제가 왜 의학부에 매력을 느끼는지 아세요. 제가 정말 열심히 하면 환자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엔허투처럼 기적적인 항암제를 환자들에게 계속 공급할 수 있고, 한국 환자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역할을 한다면 환자 한명 한명을 살릴 수 있어요.

항암 임상 연구를 한국에 더 많이 가져오고, 신약이 잘 공급될 수 있게 만들면 환자 뿐만 아니라 한 가족을 살릴 수 있거든요. 그런 면에서 생존이 달린 암 환자들에게 엔허투처럼 혁신적인 치료 옵션을 지속적으로, 더 잘 공급할 수 있는 역할을 하는 것이 저와 회사의 숙명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 질문을 못 했어요. 처음으로 개발, 출시한 항암제가 엔허투인 만큼 국내 허가와 급여 과정에서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아요

"세 가지 정도 정말 어려운 점을 얘기하고 싶어요. 저희가 엔허투를 2021년 7월에 식약처 허가신청을 했어요, 그런데 당시에 신속허가라는 제도가 갑자기 생겼어요. 우리나라에도 패스트트랙이 생겨서 특정 요건을 만족하면 식약처 심사 기간을 대폭 단축시켜주는 건데, 이건 엔허투를 위한 제도라고 생각했죠.

허가팀이 신속심사 트랙으로 신청했을 때 갑자기 코로나19가 터졌어요. 그러면서 신속심사부에서 코로나 팬데믹과 관련된 약이 들어오면 먼저 검토하기로 된 거죠. 신속심사는 12개월 안에 허가 받을 걸 예상하고 신청해요. 엔허투처럼 혁신적인 항암제가 신속심사 지정을 받고 신청을 했는데도 후순위로 뒤처졌어요. 

2021년 7월에 신청했는데 코로나 상황 때문에 2021년 9월까지 1년 넘게 허가 일정이 늦어졌으니 신속심사 취지에 무색한 것이 아쉬웠어요. 사실 ADC 같은 항체 치료제는 소분자 단백질 약제에 비해서 요구되는 게 굉장히 많아요. 특히 GMP 실사도 항체, 완제품, 원료를 다 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많은 리뷰가 필요한데 이런 어려움들이 있어서 생각보다 늦게 허가 됐다는 게 첫 번째로 큰 장애물이었고요.

두 번째로는 허가 3개월 뒤인 2022년 12월에 급여 신청을 했어요. 암질심을 2023년 5월에 통과하고 올해 2월에 약평위까지 통과하긴 했지만 엔허투 같은 혁신적인 치료제가 갖고 있는 가장 큰 문제가 치료 효과가 너무 좋다는 거예요. 기존 항암제 대비 무진행생존기간(PFS)이 길다 보니까 비용 효과적인 면에서 환자한테 투여되는 재정이 상대적으로 커요.

우리나라 항암제 ICER 값이 5000만 원이 최대치인데, 혁신적이고 치료 기간이 긴 항암제는 오히려 혁신 가치를 평가받을 수 없는 거죠. 허가 때처럼 급여 과정 중에서도 혁신성을 인정받기가 굉장히 어려웠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다이이찌산쿄가 그동안 만성질환에 집중하다 보니까 항암제 급여를 위한 사회 전반적인 생태계 조성을 해본 적이 없었어요. 약에 대한 사회적 요구, 정책적인 논의에서 항암제가 반드시 필요한 약제라는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할 만한 생태계 조성들이 있어야 했는데, 기존 만성질환 영역에서는 이런 것에서 전문성을 갖출 만한 분들이 많이 필요가 없었던 거죠. 

전사적으로 항암제 사업뿐만 아니라 보험 급여 생태계 조성 사업에 뒤늦게 뛰어들어서 많은 사회적 공감대를 얻게 됐고, 엔허투가 예상보다는 좀 빠른 급여를 받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해요. 또 엔허투가 가진 임상 데이터의 힘과 관련 부서의 협업, 사회적 공감대를 통해  보험 적용을 앞두고 있다는 점에 정말 감개가 무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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