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진 강원대 약학대학 교수]

정부가 보험재정 절감 방안으로 내놓은 시장형 실거래가상환제(저가구매 인센티브제)로 인해 제약업계가 연초부터 휘청거리고 있다. 약제비 절감보다는 음성적인 리베이트가 더욱 성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이후 실제로 일부 제약사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이 포착되기 시작해 이러한 상황에서는 발전적인 경쟁이 불가능하다는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범진 교수(강원대학교 약학대학 교수, 한국제약협회 의약품기술연구사업단장)는 국내 제약사들이 내부경쟁에서 벗어나 글로벌 진출을 목표로 의약품 개발에 나서야 할 시점에서 이러한 약가 정책은 제약사들의 공멸을 자초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글로벌 시장 진출은 신약만이 가능한 것은 아니며 제너릭의약품도 가능성이 높다면서 기업들이 이제부터라도 선택과 집중 전략을 통해 차별화된 제품 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약가정책 개선 등으로 큰 위기에 직면해 있는 국내 제약산업이 앞으로 중점적으로 취해야 할 제품 전략을 비롯해 정부의 지원 방안 및 향후 제약산업 전망 등에 대해 이범진 교수에게 들어보았다.

저가구매 인센티브, 제약산업 규모 위축 초래

이범진 교수는 현재 국내 제약산업에 있어 무엇보다 정부가 마련한 시장형 실거래가상환제(저가구매 인센티브)를 골자로 한 새로운 약가인하 정책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적절한 약가를 통해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안이 시급한 현 상황에서 현실을 외면한 무조건적인 가격 인하 정책은 제약산업에 악영향을 미칠 뿐이라는 비판이다.

이 교수는 “약가 문제는 제약산업을 육성한다는 큰 틀 안에서 바라봐야 하는 것”이라며 “저가구매 인센티브 제도가 시행되면 약가의 예측이 불가능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해당 제도는 잦은 약가의 변경을 야기시키기 때문에 이는 미래 시장에 대한 불확실성을 초래하게 된다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또한 “저가구매 인센티브제는 현재 약 13조 규모인 국내 제약산업 규모를 더욱 축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제너릭도 글로벌 의약품 될 수 있다

이렇듯 약가제도로 인한 위기가 팽배해진 가운데 국내 제약사들은 어떠한 제품 전략을 세우고 발전을 모색해야 할까.

이범진 교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통해 타사와의 차별화를 이뤄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그 동안 국내 제약사들은 제너릭의약품에 주력하고 R&D 투자에 인색한 경향을 보여 온 것이 사실”이라며 “규모적인 측면에서 인프라 구축이 미흡한 영세 기업이 많고 유사한 제품이 제약사마다 과잉 공급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꼽았다.

또한 “신약만이 글로벌 의약품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며 “제너릭도 차별화된 제너릭 제품이라면 얼마든지 글로벌 의약품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이범진 교수는 제약사가 각사 규모에 맞는 제품 전략을 세워 차별화를 모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중소제약사의 경우 질환군별 개발전략을 수립해 약물전달체계 및 제너릭의약품을 개발함으로써 이를 대형제약사에 아웃-라이선싱 하는 전략을 펼쳐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한 상대적으로 규모 경쟁력을 확보한 상위 제약사들은 데이터모니터의 BBVI(Blockbuster Value Index)에 따른 질환에 속하는 타깃을 선택해 신약 후보물질을 개발하고 임상 1상 또는 2상까지 실시해 아웃-라이선싱하는 전략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이범진 교수는 “회사마다의 연구기술력이나 마케팅을 바탕으로 그 회사를 대표할 수 있는 컬러를 결정해야 한다”면서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품목 수를 적절히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제약사 스스로 가이드라인 강화 필요

이범진 교수가 단장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한국제약협회 산하 의약품기술연구사업단은 지난 1월 설립을 공식화한 이후 제약사들로부터 자문을 받는 역할도 병행하고 있다.

이 교수는 “제약사들은 인허가 업무나 약가 결정, 개발의 성공 여부 등에 대해 가장 관심이 많다”며 “사업단에는 교수들을 비롯해 식약청이나 심평원, 특허청 등 다양한 인력들이 포진해 있기 때문에 다방면에 걸쳐 제약사들에게 자문을 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사업단은 향후 식품의약품안전청 제품화지원센터와 MOU를 체결할 예정이며 이를 통해 제약기업들의 제품화 촉진에 도움이 될 만한 사항을 구축해 나갈 계획이다.

이범진 교수는 “식약청이 최근 들어 각종 규제 완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실제로 제약사들이 원하는 규제를 완화하거나 제품화에 필요한 실질적인 정보 및 지식 제공 측면에서는 다소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민원인들의 R&D 과제 내용을 분석, 진단해 허가단계 진입을 위해 필요한 연구내용의 가이드라인에 어느 정도 기여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식약청이 실질적으로 진행하는 행정에 있어 문제가 되는 부분이 많다는 것.

이 교수는 탤크 파동을 예로 들며 식약청의 시시각각 달라지는 잣대 때문에 제약사들만 엄청난 피해를 보았다며 일관성 있고 원칙 있는 행정을 펼쳐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또한 제약사들도 식약청이 정한 현행 가이드라인을 넘어 기업 스스로 이를 강화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하나의 의약품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여러 항목의 기준을 통과해야 하고 그 기준은 나라마다 다른데, 단지 기준선만 통과하는 수준에 머물지 말고 해당 기준을 제약사 스스로 엄격하게 세움으로써 더욱 완벽한 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모범적인 자세를 가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정부 출연 전문기관 의약품KDI 필요

그동안 의약품 연구개발의 산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약학대학에서의 응용연구가 현재 상당히 침체된 상태이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이범진 교수는 논문 제출을 위한 기초연구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는 점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이범진 교수는 “약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다방면의 연구가 하나로 결집돼 있는 의약품의 전문가이기 때문에 응용연구를 활발히 수행해야 한다”며 “하지만 최근에는 논문 제출을 위한 연구에 그치고 있는 등 기초분야의 연구 비중이 높아져 경쟁력이 낮아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응용연구가 보다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며 대학 교수들이 다방면에 걸친 응용연구에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범진 교수는 의약품 연구개발 및 제품화 등을 총괄 지원할 수 있고 각종 업무사항을 체계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정부 출연 전문기관이 조속히 설립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복지부 등 관련 부처가 의약품 개발과 관련된 모든 사항을 관장하기에는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의약품 전문연구원이 필요하다는 것.

따라서 “현재 전문적으로 의약품 관련 정책을 관장하는 전문 연구원이 없어 해당 분야 정책은 변동이 심하고 산만할 수밖에 없다”며 “KDI와 같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의약품의 총체적 전문기관 설립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미니버스터’ 개발 통한 역량 강화 필수

이범진 교수는 향후 세계적인 의약품 개발 트렌드와 관련, ‘블록버스터’ 개발에서 ‘미니버스터’ 개발로 전환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블록버스터 제품 하나만을 육성하는 것이 아닌 자사만의 특화된 알짜배기 품목을 개발하는 쪽으로 선회하는 추세라는 것.

아울러 순수 신약보다는 개량신약에 대한 비중이 높아지는 등 기술 트렌드가 변화하고 있으며 다국적 제약기업들을 중심으로 공동 개발이나 라이선싱 등 공동 마케팅 전략을 통해 리스크를 줄이는 방법을 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국내 제약사들의 글로벌 진출과 관련, 이범진 교수는 “영세한 국내 제약산업 환경을 고려했을 때 아직까지는 신약개발을 위한 임계 규모의 투자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글로벌 마케팅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일 뿐만 아니라 최종 단계까지 임상시험을 진행할 수 있는 자금과 역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제약사간의 M&A를 통해 규모를 키우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결국 국내 제약사는 신약 개발을 장기적인 목표로 설정하고 선도물질의 발굴이나 비임상, 임상 2상 전기 단계까지 자체적으로 하되 그 이후 과정은 라이선스 아웃 전략을 이용해 해외시장 진출 노하우를 단계적으로 축적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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