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뉴스=우정민 기자] 우리가 사는 땅 아래에는 누군가의 삶이, 고통이, 그리고 건강의 흔적이 뼈로 남아 있다. 세종대학교 역사학과 우은진 교수는 수년간 발굴 현장에서 유골을 마주해 왔다. 그의 손을 거친 뼈들은 단순한 유물이 아닌, 삶의 기록으로 다시 읽힌다. “치아의 미세한 병변 하나에도 그 사람이 어떤 시대를 살았고, 어떤 고단함을 견뎌냈는지가 담겨 있습니다.” 지난 21일 팜뉴스 사무실에서 만난 우 교수는 유튜브 건강버스TV와의 인터뷰에서 “수백 년 전 뼈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지금 우리 몸에 남기는 일상의 흔적과 다르지 않다”며, 뼈를 통해 인간의 삶을 다시 바라보는 시선을 전했다.

사진. 우은진 교수
사진. 우은진 교수

조선의 아이들, 치아에 남긴 보릿고개

“조선시대 사람들의 치아에서 에나멜 형성 부전증이 광범위하게 나타났습니다. 이는 성장기 중 심각한 스트레스를 겪었다는 신체적 증거입니다.” 우 교수는 수백 년 전 삶의 흔적을 오늘날까지 간직한 유골들을 마주하며, 뼈가 말하는 건강의 기록을 읽어냈다. 특히 그는 보릿고개로 대표되는 조선시대 민중의 영양 결핍을 구체적으로 입증했다. “열 명 중 아홉 명에서 스트레스성 치아 병변이 관찰됐고, 이는 현대에선 거의 나타나지 않는 현상입니다.” 우 교수가 이 같은 분석을 이끌어낸 유골은 서울 은평구 진관동 일대의 옛 공동묘지에서 발굴된 약 700~800여 구에 달한다. 겹겹이 축적된 무덤 속에서 꺼낸 이 유골들은, 조선시대 사람들의 성장기 고통과 생존의 조건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양반과 서민, 뼈는 차이를 남겼다

우 교수는 발굴된 무덤의 구조와 유골의 생물학적 분석을 통해 계층 간 건강 격차도 살폈다. “사대부 계층 유골은 평균 신장이 약 1cm 정도 더 컸고, 일부 연구에서는 단백질 섭취 비중도 다소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면 질병 양상이나 관절질환에서는 뚜렷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으며, 성별 간 차이가 더 컸다고 설명했다.

수렵에서 농경으로…건강은 후퇴했다

우 교수는 인간의 건강이 농경 생활 이후 퇴보했다는 연구 결과도 소개했다. “수렵·채집 시기 사람들의 뼈가 농경 사회로 접어들며 오히려 퇴행성 질환이 증가했습니다. 단일 작물에 대한 식단과 반복 노동이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감염병과 기근, 뼈에 남은 흔적

“급성 감염병은 뼈에 흔적을 남기지 않지만, 만성 감염이나 영양결핍은 뼈에 병변으로 나타납니다.” 대표적으로 비타민 D 결핍은 구루병으로, 철분 결핍은 안와천공에 구멍이 생기는 병변으로 나타난다. 그는 뼈의 병리학적 변화를 통해 과거 시대의 식생활과 환경을 유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뼈는 건강을 기억한다

“뼈는 우리 몸을 단지 지탱하는 구조물이 아닙니다. 혈액 생성, 칼슘 저장, 근육 작용을 지원하는 복합적 생체 기관입니다.” 우 교수는 잘못된 식습관, 무리한 노동, 반복된 자세가 수십 년 뒤 뼈에 고스란히 남는다고 강조했다. “균형 잡힌 식사, 적절한 운동, 스트레스 관리가 결국 좋은 뼈를 남깁니다.”

조선의 뼈, 노동의 흔적을 품다

우 교수는 조선시대 사람들의 뼈에서도 반복적 노동의 패턴이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쪼그려 앉아 씨를 뿌리고, 밭을 갈고, 수확하는 일상적인 농경 활동이 반복되면서 특정 관절과 뼈에 지속적인 자극이 가해졌습니다. 이런 반복된 노동이 뼈에 남은 흔적으로 확인됩니다.”

뼈는 스마트폰 자세를 기억한다

우 교수는 뼈가 남긴 형태적 흔적은 단순한 질병의 기록을 넘어, 일상에서 반복된 행동의 결과까지 담아낸다고 밝혔다. 그는 “호주 연구진이 청소년과 청년을 대상으로 촬영한 두개골 X-ray 영상에서, 과도한 스마트폰 사용과 고개를 숙인 자세가 두개골 후두부 돌출 형태로 관찰됐다”는 사례를 언급했다. “특정 자세나 움직임이 장기간 반복되면, 그 압력과 긴장이 뼈에 구조적 변형을 남깁니다.”

장사법 적용받던 유골, 연구자산으로 인정되기까지

“과거에는 유골이 문화재로 인정받지 못했고,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대부분 화장 처리됐습니다.” 우 교수는 최근 국가유산청 주도로 유골이 ‘중요 출토 자료’로 지정되고, 연구기관에 체계적으로 이관되는 절차가 마련된 것을 “늦었지만 중요한 변화”라고 평가했다.

우 교수에게 뼈는 단지 과거를 담은 물질이 아니다. 뼈는 삶을 반영하는 기록이며,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조용히 되묻는 증언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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