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뉴스=우정민 기자] 현대 사회에서 고독사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은 채 홀로 생을 마감하는 이들의 마지막 흔적을 정리하는 유품정리사는 단순한 청소업이 아닌, 사회적 의미를 되새기는 역할을 한다. 지난달 26일 청주에서 만난 유품정리사 김새별 대표는 유튜브 건강버스TV를 통해 유품 정리가 단순한 정리를 넘어, 떠난 이들의 삶을 되짚고 유가족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과정이라고 전했다. 그는 고독사의 증가 원인과 사회적 대응 방안을 강조하며, 마지막을 맞이하는 삶의 방식에 대해 깊은 고민을 던졌다.
고독사 현장에서 깨달은 것들
김새별 대표는는 원래 12년 동안 장례지도사로 일했다. 그러나 어느 날 한 유가족이 장례를 마친 후 다시 찾아와 유품 정리를 부탁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온 딸이 아버지를 발견했는데, 돌아가시는 과정에서 많은 출혈이 있었어요. 그 광경을 보고 충격을 받아 정리할 엄두를 못 내셨죠.” 당시 김 대표는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대부분이 꺼려했다. 결국 그는 직접 나서 유품을 정리했고, 그날의 경험이 계기가 되어 유품정리사의 길을 걷게 됐다.
그 후 또 다른 사건이 김 대표를 더욱 이 일에 몰입하게 했다. 간병에 지친 아버지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남은 어머니는 결국 아사했다. 한 달 동안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 방치된 현장을 발견한 아들이 김 대표에게 연락을 해왔다. “그때 알았어요. 이런 직업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유품 정리는 단순한 청소가 아니다
김 대표에게 의뢰가 들어오는 경로는 다양하다. 블로그나 광고를 통해 연락을 받기도 하고, 장례식장에서 소개받아 오는 경우도 많다. 유품 정리는 단순한 청소가 아니다.
“고인이 돌아가신 자리부터 소독을 합니다. 이후 유품을 분류하고, 가족들이 간직할 물품과 폐기할 물품을 나누죠. 현금이나 사진 같은 유품을 가족에게 전달한 뒤, 나머지는 소각 폐기합니다.” 현장을 방문할 때마다 김 대표는 돌아가신 분이 생전에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물건들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가족들이 냄새나 기억 때문에 가져가길 꺼리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현장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의 냉랭한 시선
김 대표가 처음 유품 정리 일을 시작했을 때 가장 놀랐던 것은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고독사 현장에서 나온 유품을 정리하고 폐기물 처리장을 향해 가는데, 동네 분들이 저희를 보고 뭐라고 하시더라고요. ‘여기다 두면 어떡하냐’, ‘귀신 나올까 봐 무섭다’고요.”
그는 이런 반응을 보며 죽음에 대한 사회적 거리감이 여전히 크다는 것을 실감했다. “죽음을 터부시하고, 죽은 이들을 쉽게 잊으려는 경향이 강한 것 같아요. 하지만 죽음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이고,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에 대해서도 더 열린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장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그는 모든 현장이 기억에 남지만, 특히 어린 자녀를 먼저 보내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부모들의 사례가 가장 힘들다고 한다. “내가 세상을 살기 힘들다고 해서 자식을 먼저 보내는 건 정말 가슴 아픈 일입니다.” 또한, 유품 속에 남겨진 유서나 메모에서 가족에 대한 원망과 외로움이 묻어나올 때 더욱 안타깝다고 했다.
특히 유가족의 반응이 김 대표를 힘들게 할 때도 있다. “어떤 가족들은 돌아가신 분보다 남겨진 돈에만 관심을 두더라고요. 현금을 찾지 못하면 우리가 가져갔다고 의심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 모습을 볼 때 현타가 오죠.”
극단적 선택의 현장은 고독과 절망의 흔적이 남아있다
김 대표는 수많은 극단적 선택의 현장을 정리해왔다. “현장에 가면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한 흔적들이 남아있어요. 술을 많이 마신 흔적, 주변에 쌓인 메모, 빚 독촉장 같은 것들이죠. 특히 유서는 가슴 아픈 내용이 많습니다. 가족을 원망하는 글, 사회에 대한 절망, 마지막으로 남기는 미안함 등이 담겨 있어요.”
그는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들의 집을 정리하며 느끼는 감정이 남다르다고 했다. “특히 젊은 분들이 선택을 한 현장에서는 더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경제적 어려움, 취업난, 인간관계 문제 등 다양한 이유로 스스로 생을 마감하지만,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고독사 현장에서 발견되는 흔적들
김 대표는 여러 고독사 현장을 정리하며 공통된 특징을 발견했다. “대부분 집 안에는 술병이 많아요. 흡연도 많이 하셨던 흔적이 있고요. 벽지에는 얼룩이 가득하고, 냉장고에는 오래된 음식들이 방치되어 있어요. 고독사는 단순히 혼자 죽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외로움 속에서 살아온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특히 유품 중 가족사진이 거의 없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관계에서 멀어지면서, 점점 고립된 삶을 살게 되는 거죠.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떠나고 난 후 홀로 남아 결국 아무도 모르게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가족들은 슬퍼할 겨를도 없이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한다
김 대표는 유가족들이 마주하는 현실적인 문제도 크다고 지적했다. “유가족들은 처음엔 충격에 빠지지만, 이내 장례 절차와 집 정리 같은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합니다. 경제적 부담 때문에 장례를 간소화하거나 유품 정리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요.”
그는 실제로 가족들과 오랜 기간 연락이 끊긴 고인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유가족들이 보이는 태도도 다양하다고 말했다. “어떤 분들은 죄책감을 느끼고 눈물을 흘리며 유품을 챙기시지만, 어떤 분들은 아예 정리를 저희에게 맡긴 뒤 떠나버리시기도 해요. 가족이라 해도 그 관계가 꼭 돈독했던 것은 아니니까요.”
고독사의 트렌드가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독거노인이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계층에서 주로 발생했던 고독사가 이제는 중산층과 젊은 층에서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김 대표는 이를 두고 “고독사가 더 이상 특정 계층의 문제가 아니다. 이제는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도 사회적 단절로 인해 고독사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증가하는 ‘동거 가족 고독사’ 사례를 언급했다. “가족과 함께 살면서도 소통이 단절된 채 혼자 방에서 지내다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어요. 예전에는 혼자 사는 어르신들의 문제로 여겨졌다면, 이제는 젊은 층, 심지어 가족이 있는 사람들도 고독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겁니다.”
고독사를 막기 위한 사회적 변화 필요
최근 극단적 선택을 하는 젊은 층이 증가하는 현상에 대해서도 김 대표는 깊이 우려했다. “고학력자일수록 자신이 원하는 길을 걷지 못할 때 절망감을 크게 느끼는 것 같아요. 미래에 행복이 있을 거라고만 생각하며 살아가다가, 현실의 괴리를 견디지 못하는 거죠.”
그는 고독사를 예방하려면 개인의 노력뿐만 아니라 사회적 시스템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교에서 행복을 현재에서 찾는 법을 가르쳐야 해요. 상담 시스템이 더 활성화돼야 하고, 주변 이웃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야 합니다.” 또한, “사람들이 힘든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해요.”
그는 극단적 선택의 증가 원인을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유품 정리를 하면서 가족과의 관계에 대해 많은 것을 깨달았다. “고독사하신 분들의 집을 보면 술과 담배가 많아요. 관계 단절이 외로움을 만들고, 외로움이 결국 고독사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이 일을 하면서 술과 담배를 끊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늘렸어요.”
웰다잉과 베드다잉, 우리는 어떻게 죽음을 준비해야 할까
최근 사회적으로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웰다잉이란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존엄하게 마지막을 맞이하는 것을 의미하며, 고독사와 대비되는 개념인 것 같다. “고독사는 웰다잉과 거리가 멀어요. 우리는 가족과의 관계를 미리 정리하고, 건강하게 죽음을 준비할 필요가 있어요. 저는 유서를 쓰기보다, 가족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좋은 기억을 남기는 것이 가장 큰 유서 아닐까요?”
반면, “고독사는 대부분 베드다잉의 형태를 띠고 있어요.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생을 마감하게 되고, 주변에서 이를 발견하기까지 시간이 걸리죠. 반면, 웰다잉을 준비한 분들은 자신의 유언을 남기고, 재산 정리까지 마친 경우가 많아요.”
삶을 이야기해야 한다
김 대표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고독사는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예요. 가족과 자주 연락하고, 주변 이웃을 살피는 작은 관심이 큰 변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는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삶’을 이야기하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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