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뉴스=우정민 기자] 현장을 둘러싼 적막 속에서, 검시조사관(이하 검시관)들은 고요한 가운데 이야기를 듣는다. 죽음을 통해 삶을 읽는 이들. 그들은 한 인간의 마지막 흔적을 통해 진실을 드러내는 일을 한다. 과학적 증거와 직관, 그리고 경험이 교차하는 순간,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9일 오전 팜뉴스 사무실에서 만난 김진영 검시관은 12년간 대한민국 곳곳의 사건 현장을 누비며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슴에 품고 일해왔다.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과 소속인 그는 간호사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바탕으로 검시관의 길을 걸었으며, 이 직업을 단순한 생업이 아닌 깊은 통찰과 사명감으로 채워왔다.
“우연한 계기에서 평생의 사명을 찾다”
김진영 검시관이 검시관의 길을 걷게 된 건 우연한 기회에서 비롯 됐다고 말한다. 간호사로 일하며 의료현장에서 경력을 쌓던 그는 경찰청 과학수사대의 특채 기회를 접하고 도전했다. “처음엔 저도 검시관이란 직업이 뭔지 잘 몰랐어요. 하지만 일을 시작하고 나니 사건을 통해 인간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는 이 직업에 매료됐습니다.”
검시관은 단순히 시신을 검증하는 직업이 아니다. 사망 원인을 밝히고 그 배경까지 살펴보며, 때로는 억울한 죽음을 해명하는 역할을 한다. 김 검시관은 “검시관은 단순히 죽음을 기록하는 사람이 아니라,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진실을 밝혀가는 직업”이라고 강조했다.
"잘 죽는다는 것, 웰다잉에 대한 고민"
검시관으로서 수많은 죽음을 접한 그는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독특한 관점을 가지고 있다.
“건강하게 사는 것 못지않게 건강하게 죽는 것도 중요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래 앓다가 생을 마감하는데, 이는 본인과 가족 모두에게 큰 고통이죠. 반면, 준비된 이별과 짧은 고통은 훨씬 나은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는 연명 치료와 관련된 사회적 논의가 더 활발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유교적 문화나 종교적 관념 때문에 연명 치료를 무조건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과연 모두를 위한 최선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건강한 대화, 죽음을 막을 수 있다”
그는 최근 사건 트렌드 변화에 주목했다. “예전에는 원한 관계가 원인이던 사건들이 많았다면, 요즘은 정신 건강의 문제나 충동적인 행동으로 인한 사망 사건이 증가하고 있어요.” 김 검시관은 특히 청소년들의 자살률이 높아지는 점을 우려하며, 대화와 관심 부족이 문제라고 진단했다.
“요즘은 가족 간 대화가 줄어들고, 아이들은 SNS에 의존해 감정을 해소하려는 경우가 많아요. 이런 환경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청소년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죠. 가족 간 대화와 정서적 지지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검시관으로서의 사명과 보람
검시관의 업무는 단순히 사망 원인을 규명하는 것을 넘어, 유족의 마음을 치유하는 데도 기여한다.
“사망 원인이 제대로 해석되지 않으면, 유족은 평생 의문과 억울함을 안고 살게 됩니다. 제가 제공하는 정보가 유족의 마음을 풀어줄 수 있다면, 그 순간만큼은 이 일이 정말 보람되다고 느낍니다.” 한가지 예로 “한 사건에서는 모든 증거가 자살을 가리키는 듯했지만, 현장을 조사하며 범죄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나중에 유족에게 이 사실을 전하니 ‘끝까지 들어줘서 고맙다’며 눈물을 흘리시더군요.” 검시관의 직업은 죽음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죽음 뒤에 숨겨진 삶의 흔적을 찾고, 가족과 사회에 진실을 전하는 것이 그의 주요 역할이다.
끊임없이 죽음을 접하면서 그는 삶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죽음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찾아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이 순간을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고 믿어요. 여행도 다니고, 운동도 하고, 배우고 싶은 것도 하면서 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가는 게 중요합니다.”
미래 검시관들에게..."현실을 직시하라"
김 검시관은 검시관을 꿈꾸는 이들에게 냉정하면서도 따뜻한 조언을 건넸다. “검시관은 화려한 직업이 아닙니다. 사건 현장은 지저분하고 고통스러운 일도 많아요. 하지만 이 일이 단순히 흥미로워 보인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생명과 죽음을 대하는 진지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합니다.”
그는 검시관이 되기 위해 필요한 자격으로 관련 의료 자격증과 강한 정신력을 꼽았다. “간호사, 임상병리사 등 의료 경력은 필수적이고, 현장에서 겪는 스트레스를 감당할 수 있는 마음가짐도 중요합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바람
그는 검시관 업무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열악한 복지와 사회적 인식의 부족에 아쉬움을 표했다.
“우리나라는 아직 검시관과 관련된 복지와 예산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조금 더 체계적인 지원이 이루어진다면, 사건 해결과 사회적 신뢰 구축에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김 검시관은 오늘도 현장을 누비며 진실을 기록한다. 그는 죽음의 흔적 속에서 생명의 의미를 찾고, 사건을 통해 사회의 문제를 비추는 역할을 한다.
“제가 맡은 사건 하나하나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과 죽음에 대한 해석이 되길 바랍니다. 그게 제 직업의 본질이고, 앞으로도 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입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죽음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결국 삶을 더 깊이 이해하는 길입니다. 검시관으로서 제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작게나마 도움이 된다면, 그 자체로 저는 만족합니다.”
검시관이라는 직업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낯설다. 하지만 그들의 묵묵한 노력이 없었다면 수많은 진실과 정의가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김 검시관의 이야기는 죽음을 마주하는 직업을 넘어, 삶을 더욱 빛나게 하는 교훈을 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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