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뉴스=김민건 기자] 태어난 지 5개월 만에 저시력증 진단을 받았고 실명에 이를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어린 눈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은 점점 희뿌옇게 변했고 시야는 좁아져만 갔다. 안경을 써도 간신히 물체를 구별할 수 있었다. 더욱 힘든 건 심해지는 야맹증이었다. 해가 진 저녁은 물론 낮에도 어두운 곳에서는 도움 없이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시각 기능이 악화했다. 의료진은 몇 년 뒤면 완전한 실명에 이를 수 있다고 진단했다.

희귀 유전성 망막 질환(inherited retinal dystrophy, IRDs) 중 하나인 '레베르 선청성 흑암시(leber congenital amaurosis, LCA)'를 앓는 장미지 씨 이야기다. 그를 어릴 적부터 진료한 오세열 안과 교수(삼성서울병원)가 유전성망막변성 가능성을 의심하고 같은 병원 김상진 교수(안과)에게 부탁함으로써 이뤄진 유전자 검사 결과로 알게 된 병명이었다. 장 씨는 RPE65 유전자 변이라는 증상을 겪고 있었다.

김상진 교수가 장미지 씨를 진료하고 있는 모습(사진: 서울삼성병원)
김상진 교수가 장미지 씨를 진료하고 있는 모습(사진: 서울삼성병원)

장 씨에게 희망이 보인 건 지난 7월 13일이다. 개발사인 노바티스 도움을 받아 국내 최초로  유전성 망막 질환 치료제 '럭스터나(luxturna, 성분명 보레티진네파보벡)'를 투여받으면서다. 이제 장 씨는 "영화관을 가고 싶었지만 용기를 못 냈다. 혼자 꼭 가보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자신감을 갖게 됐다. 

장 씨는 유리체절제술을 통해 망막색소상피세포층 사이에 럭스터나를 투여하는 고도로 정교한 수술을 받았다. 실명을 기다리는 것 외에 방법이 없었던 절망적인 희귀 유전 질환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된 것이다.

27일 노바티스는 럭스터나의 보험 급여 등재를 신청한 상태다. 국내 IRDs 질환자는 약 9672명(2020년 기준)으로 추정된다. 희귀 유전질환으로 정확한 유병률은 파악되지 않는다. 보험 급여 등재가 이뤄진다면 IRDs 질환 진단과 치료가 수월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노바티스 럭스터나
노바티스 럭스터나

 

그러나 현재 럭스터나 같은 유전자 치료제는 쉽게 다가설 수 없는 존재다. 럭스터나를 안구 한 쪽당 투여하는데 약 4억원이 필요하다. 고가 약 문제는 럭스터나 뿐 아니다. 앞으로 더욱 많은 유전자치료제가 등장할 것이 확실시된다.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뜨거운 이슈가 될 것이다.

이와 함께 희귀질환을 앓는 환자들의 마지막 희망인 유전자 치료제 투여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사회적 합의가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진다. 장 씨처럼 럭스터나를 투여받기 위해선 적절한 시기에 유전자 진단과 망막세포 상태가 중요하다.

▶IRDs 환자에게 시간은 '유한'...럭스터나 투여 가능 시기 정해져 있어 

IRDs는 다양한 유전자 변이와 시각 손실이 발생하는 여러 희귀질환을 말한다. 발생 원인 유전자는 약 300개로 각각 발생 시기와 증상이 다르다. 아직까지도 완치법 없이 보존적 치료가 주를 이뤄야 했던 이유다.

원인 유전자 중에서도 RPE65 유전자 변이는 시각 정보를 신경 신호로 변환하는 망막 내 세포(막대세포, 원뿔세포, 망막색소상피세포, 이하 광수용체 세포)에 문제를 일으킨다. 장 씨가 겪고 있는 LCA와 망막색소변성증(retinitis pigmentosa, RP)이 대표적이다. 

우리 눈에 들어온 빛은 시각 회로(visual cycle)를 통해 뇌에 시각 정보로 전달된다. 이 과정에서 RPE65 유전자는 시각 회로에 필수적인 단백질을 만들어 빛에 민감한 광수용체 세포와 광자가 화학적 변화를 일으킴으로써 빛이 전기 신호로 변환되도록 돕는다. 

그러나 RPE65 유전자 변이는 시각 회로에 필수적인 망막세포 내 RPE65 단백질을 감소시켜 광수용체 세포를 퇴화시킨다. 이로 인해 빛을 감지하는 능력, 즉 시각 기능이 떨어지면서 야맹증이나 시야가 좁아지고 결국 실명하게 된다.

PRE65 유전변이로 인한 실명 과정
PRE65 유전변이로 인한 실명 과정

 

LCA는 10만 명당 2~3명에서 생기며 출생 또는 그 직후 선천적 실명을 일으킨다. LCA 환자는 정상 기능인 망막 막대세포와 원뿔세포가 없어 시력 소실, 실명, 눈떨림 등을 겪는다. 시각장애 특수학교 어린이 10~18%가 LCA다. RP는 망막의 시각세포와 망막색소상피세포가 변성되는 가장 흔한 IRDs다. RP환자는 야맹증 또는 시야 가운데만 보이는 '터널시야(tunnel vision)' 상태에 이르러 완전히 실명하게 된다. 국내 RP환자는 전체 인구 0.011%(9000명 중 1명)일 정도로 극희귀질환이다. 전세계적으로 4000~5000명당 1명 꼴이다.

문제는 IRDs 진단과 치료 그 자체다. 많은 환자가 시력을 잃어가면서도 병명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제약업계와 의료계에 따르면 정확한 IRDs 진단에 5~7년이 소요되며 이 기간 최대 8명의 의료진을 만나 2~3번 오진을 경험하는 '진단 방랑(diagnotic odyssey)'을 겪고 있다. 무엇보다 IRDs 질환 환자 절반 이상이 청소년기에 법적 실명에 이르러 완전 실명을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IRDs 망막 질환 정보가 매우 적다 보니 의료진 또한 진단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어서다.

럭스터나는 올해 9월 9일에야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아 국내 사용이 가능해졌다. 이중대립유전자성(biallelic) RPE65 돌연변이로 인한 IRDs 시력 손실을 입었고 충분한 생존 망막 세포를 가진 성인·소아 치료에 사용할 수 있다. 지난 2014년 9월 미국FDA의 혁신적 치료제(breakthrough therapy designation) 지정, 2017년 7월 FDA우선심사(priority review)로 선정된 지 2년 만이었다. 

럭스터나가 개발됐지만 질환 인지도가 떨어진 상황에서 IRDs 환자는 사회 활동에 높은 우울증과 불안감, 고립감을 호소할 수밖에 없다. 

럭스터나 사용에는 '골든타임(golden tiem)'이 존재한다. 치료 시기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첫 째로 정확한 유전자 진단 결과가 필요하며 그 다음으로 망막 세포가 충분해야 한다. 유전자 치료제인 럭스터나는 비정상적 유전자로 인해 문제가 생긴 필수 단백질이 제 기능을 할 수 없을 때 이를 대체하는 유전자를 복제 생산하게 함으로써 질환의 근본적 원인을 해결하는 방법이다. 이를 유전자 대체 요법(gene replacement therapy, GRT)이라고 부른다. 

유전자 대체 요법 원칙은 문제가 되는 유전자를 정확히 찾아내는 것이다. 최근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법(next generation sequencing)을 이용해 보다 빠르게 원인 유전자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현재로선 IRDs 질환 인지도 자체가 낮아 원활한 진단이 어렵다.

아울러 럭스터나는 좌우 안구에 각 1회씩 망막 아래 주사하는 '망막 하 주사(subrentinal injection)' 방법으로 망막색소상피세포(rpe)에 대체 유전자를 투여한다. 럭스터나가 망막세포 핵 안에서 복제된 RPE65 단백질을 생산해 시각회로를 회복시키고 시기능을 개선하는 기전이다.

망막색소상피세포(rpe)에 럭스터나를 투여하는 과정
망막색소상피세포(rpe)에 럭스터나를 투여하는 과정

 

이 얘기는 럭스터나를 투여할 수 있는 환자가 제한적이라는 뜻이다. 유전자 진단으로 RPE65 유전자 변이를 진단받고도 망막세포가 충분한 경우에만 사용할 수 있다. 이 외에 환자는 최종적으로 완전한 실명에 이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럭스터나 같은 초고가 유전자 치료제 보험급여에 사회적 합의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앞서 김상진 교수는 의미있는 말을 남겼다. 그는 "안과 의사도 유전성망막변성은 불치병이라고만 단정하고 유전 진단에 소극적인 경우가 많다. 현재 한 가지 유전자치료제만 나왔지만 수 년 내 여러 유전자치료제가 상용화될 것을 기대한다. 사회적 관심과 정책적 배려가 더해지면 환자들에게 한줄기 빛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전자 치료제는 단순히 증상 진행을 늦추거나 관리하는 것을 넘어 근본적으로 병의 원인을 대체하는 새로운 개념이다. 1회 초기 비용은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에 이르지만 평생 복용하더라도 결과적으로 근본적 치료가 불가능한 기존 의약품 비용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이 시각 추천뉴스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