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9돌 특집Ⅱ]선택 아닌 필수 ‘오픈 이노베이션’
제약과 바이오기업의 상생모델

남기연 (주)큐리언트 CEO 

1990년대 말까지의 글로벌 제약산업은 사상 최대 호황을 맞았다. 1996년에서 1998년 사이 135개의 신약이 미국 FDA 승인을 받았으며, 1996년 승인 받은 화이자(Pfizer)사의 콜레스테롤 합성 저해제 리피토(Lipitor)는 최고 연간매출 15조 원에 이르는 초대형 블록버스터 신약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글로벌 제약산업의 호황은 1990년대 출시된 신약의 특허만료 기한이 오는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위기에 직면했으며 그 원인으로 후속제품 출시를 주도하는 신약 연구개발 생산성 저하가 가장 크게 대두되기 시작했다. 

글로벌 제약사의 연구개발 생산성 저하의 가장 큰 요인은 '전주기 연구개발 역량 확보에 주력해 비대해진 연구개발 조직'으로 파악됐다. 

신약 개발의 비효율성 본격화

2000년대 초반까지 글로벌 제약사들은 신약 타깃의 발굴부터 후기 임상진행까지 연구개발의 모든 역할을 자체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몸집을 불려 왔다. 이러한 시도는 엄청난 자본 투자로 이뤄졌으나, 결국 고부가가치 혁신신약개발에 필수적인 이노베이션을 만들어내는 효율성 측면에서는 실패했다.

즉, 조직의 비대화로 내부 의사결정 구조의 비효율성, 연구 조직과 회사 간의 목표 부조화, 부서간의 과도한 경쟁, 일선 연구원들의 동기부여 실패 등이 발생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조직을 세분화하거나 추가적 혁신 기능을 확보하는 등 더 많은 자본을 투여해야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와 같은 비효율성의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해 글로벌 제약사들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전에 보지 못한 대규모 연구개발 구조조정을 단행하기 시작했다. 구조조정의 핵심은 이노베이션의 주축을 담당하던 초기 연구개발 조직을 대폭 축소하고, 대기업 조직이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후기 임상개발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발생하는 이노베이션의 공백, 즉 혁신적인 초기 연구개발과제는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바이오벤처에서 도입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새로운 연구 개발 생태계 절실

2000년대 중반 머크사의 연구개발 사장이었던 피터 킴(Peter Kim) 박사는 연구원들과의 간담회에서 “머크는 1년에 50억불(5조5천억 원) 정도의 연구비를 투자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 연구역량을 자랑스러워 하지만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이노베이션 연구 규모의 5%에도 미치지 못한다"면서 “따라서 외부 우수 바이오벤처가 이루어 놓은 이노베이션을 도입하는 것은 머크의 필연적 선택이다"라고 앞으로의 변화에 대해 언급했다.

글로벌 제약사 중 가장 내부 연구개발 비중이 높았던 머크 연구소 사장의 발언은 제약업계의 전략적 구조 변화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며, 이노베이션 중심의 바이오벤처가 글로벌 제약사에 혁신신약 파이프라인을 제공하는 새로운 제약 연구개발 생태계의 시작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픈 이노베이션 효과 가시화

200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글로벌 제약업계의 구조조정 성과는 신약개발에 소요되는 약 10년간의 시간이 흐른 후인 근래에 나타나고 있다. 



최근 미국 FDA에 의해 승인되는 신약은 증가 추세에 있으며, 90년대 후반에 나타났던 제약시장의 최 전성기 시대의 신약 승인 건수에 근접해 가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이노베이션은 바이오벤처가 맡고 개발 및 마케팅은 글로벌 제약사가 맡는 역할 분담의 구조가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의 신약개발 프로그램의 출처에 따른 신약개발의 성공률을 볼 때도 바이오벤처로부터의 기술도입 및 공동연구를 통한 신약 프로그램, 즉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 OI)을 통한 프로그램의 임상개발 성공률이 월등히 높은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결과는 앞으로 글로벌 제약업계가 지속적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것으로, 이노베이션을 통해 혁신신약을 개발하는 바이오벤처와 후기 개발 오퍼레이션 및 마케팅에 역량을 집중하는 글로벌 제약사간의 상생적 공생관계가 더욱더 확대 될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오픈 이노베이션에서 바이오벤처 역할

오픈 이노베이션은 비단 글로벌제약사에서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중소형 제약사 및 바이오벤처의 경우에도 지속적인 혁신 신약 개발을 위해서는 기초연구기관과의 끊임없는 공조가 필수적이다.

그 이유는 중소형 제약사나 바이오벤처가 가지고 있는 소규모 연구 역량으로는 지속적인 혁신 신약 개발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고, 바이오벤처가 지속적 혁신을 하지 못한다면 새로 형성된 글로벌 제약산업 생태계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바이오벤처의 오픈 이노베이션은 기초연구기관으로부터의 단순한 기술이전이 아닌, 리스크/가치 공유(Risk/Value Sharing)로 디자인됐을 때 가장 효과적이다. 바이오벤처가 기술을 들여오는 개발단계가 후속 기초연구가 지속적으로 필요한 시기이며, 그것은 기초연구기관과의 상생적인 가치 공유가 이루어 질 때에만 적극적으로 추진될 수 있다.

기술이전을 통한 수익창출을 목표로 하는 바이오벤처에서의 오픈 이노베이션은 새로운 기술을 들여오는 데에만 집중돼서는 절반의 성공이다. 바이오벤처에서의 신약 개발 후 수익을 창출할 때, 어떤 기관으로의 이전을 통해 수익 창출을 도모할 것인가도 매우 중요하다.

흔히 자금력과 시장확보 능력을 보유한 ‘빅파마’라고 불리우는 글로벌제약사로의 기술이전이 주목 받기도 하지만, 이러한 경로가 항상 최선이라고 할 수 없다. 바이오벤처의 개발 및 상용화에 대한 입장이 지속적으로 반영되는 진정한 의미의 오픈 이노베이션이라기 보다는, 이전 후 원개발사의 의견은 참고되지 않는 일방적 기술이전이 일반적인 형태이기 때문이다. 신약개발을 통한 실질적 수익은 개발이 완료되고 신약이 출시됨으로써 완성된다.

빅파마의 경우 다수의 개발프로그램을 보유하고 있어, 신약자체의 성공 가능성 및 원개발사의 의지 여부와 관계없이 운영적, 전략적 이유로 기술이전 된 신약의 개발이 지연되거나, 개발 자체가 취소될 가능성이 늘 존재한다.

반면 해당 질환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춘 중소형 제약사 및 바이오텍의 경우 기술이전 된 신약이 전체 포트폴리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져, 신약개발의 실패요인 이외의 이유로 개발이 늦어질 가능성이 낮다.

또한 바이오벤처가 가지고 있던 상업화에 대한 비젼을 공유하며, 리스크/가치 공유 모델을 통한 기술이전도 용이해 신약 상용화 성공 시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게 되기도 한다.

제한된 리소스를 이용해 혁신신약을 개발해야 하는 국내 바이오벤처 및 제약사에게 있어 오픈 이노베이션은 선택이라기보다는 필수적으로 보인다. 단순히 외부에서 기술을 들여와서 개발하고, 개발된 기술을 이전하는 제한적 오픈 이노베이션으로는 가치가 높은 혁신신약의 재료를 찾기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상용화에 있어서도 제 가치를 충분히 실현하지 못 할 수 있다.

따라서 전단계/후단계 파트너 기관들과 리스크/가치를 광범위 하게 공유함으로써 리소스를 모으고, 합쳐진 리소스를 통해 더 큰 파이를 만들어내며, 커진 파이를 공정하게 나누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오픈 이노베이션이며, 지금 시작단계에 있는 국내 바이오 제약업계가 경쟁력을 가질 전략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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