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와 미생물의 사이는 적과의 동침이라고 할 수 있다. 옛날 먹거리가 풍성하지 않은 시절에 재료를 오랫동안 보관하기 위해 젓갈을 만들고 김치를 담글 때나, 서양에서 남은 우유의 보관을 위해 치즈를 만들 때도 세균 등 미생물의 도움이 필요했다.

하지만 유럽의 흑사병, 아메리카 신대륙의 천연두, 스페인 독감 등 인간은 요소요소에서 목숨을 노리는 감염병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아왔다. 1798년 에드워드 제너의 최초 우두(牛痘) 접종 이후 인류는 이를 대응하기 위해 미생물을 이용 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됐는데 이것이 바로 백신이다. 백신을 만들어 사용할 줄 알게 되면서 인류의 승리가 거듭되었고 감염병의 정복이 눈앞에 다가온 줄 알았다.

지금도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WHO 건물 앞에서는 1979년 인류가 천연두를 정복한 그날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동상을 볼 수 있고, 내년에는 소아마비 바이러스의 근절 선언을 눈앞에 두고 있기도 하다.

저가백신, 신흥 생산국들 입지 강화

하지만 최근 십여 년 동안 미생물의 반격 또한 심상치가 않다. 항생제 내성의 위험 및 온난화, 글로벌로 인한 신종 감염병의 발생이 증가하고 있다. 2009년 신종 플루, 2014년 에볼라, 올해의 메르스가 그 예이다.

더욱 빠르고 강력해진 미생물들의 공격은 국민의 건강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역할 중요성을 더 크게 부각시키고 있다.

백신 산업은 초기 투자비용이 크고 장기간의 경험과 기술이 있어야 가능한 분야여서 글로벌 주요 제약사가 전 세계 백신시장의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건강에 대한 관심 증가와 노령화에 따라 백신 시장이 이분화 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고가의 프리미엄 백신 시장을 글로벌 주요 제약사들이 여전히 리드하고 있다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저가의 백신을 공급받아야 하는 시장에서는 인도, 중국 등의 신흥 생산국들이 그 입지를 굳혀가고 있는 추세이다.

백신원액 생산, 2015년 11종 2020년 20종 목표

우리나라도 2009년 신종 플루 대유행 시 백신자급화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경험한 후, 국내 제약사들이 백신의 개발에 관심을 갖고 투자를 할 수 있도록 정부가 각종 지원정책을 펴기 시작했고 그 성과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특히, ‘글로벌 백신 제품화 지원단’을 운영해 백신의 개발부터 제품화 전반에 대해 제품별로 맞춤형 컨설팅을 실시하고 있다. 사업을 시작하던 지난 2012년 당시, 우리나라에서 원액부터 직접 생산할 수 있는 백신의 종류는 8종에 불과했었으나 2015년 말, 11종을 거쳐 2020년까지는 20종까지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지원하고 있다.

또한 백신 개발의 초기 투자 비용을 줄여주기 위해 세포주를 확립해 분양하는 사업을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있으며, 국내 생산 백신의 글로벌 시장 진출을 돕기 위해 유니세프 등 국제 단체를 통해 수출하려는 회사들이 세계보건기구(WHO) 사전적격성평가(PQ) 인증을 받을 수 있도록 맞춤형 기술지원을 실시하고 있다.

더 나아가 세계 석학 등 전문가를 활용한 신속 정보 공유체계 확립, 외국 규제기관과의 정보교류 및 상호 이해증진을 통해 국내 백신 자급률 향상 및 수출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바이오 IT 플랫폼’ 구축 등 산·학·관 협력

앞으로도 제품개발 경험이 부족한 국내업계를 지원하기 위해 ‘글로벌 백신 제품화 지원단’의 확대·운영하고 ‘바이오 IT 플랫폼’ 구축 등 산·학·관의 다양한 소통채널 구축 및 기술개발, 임상 등 필요한 지식과 기술공유를 통해 바이오의약품 개발을 활성화 및 이를 통한 백신 제품화 환경을 조성하려 노력하고 있다.

거안사위(居安思危)란 말이 있다. ‘춘추좌씨전’에 나오는 사자성어로 평안할 때에도 위험과 곤란이 닥칠 것을 생각해 잊지 말고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미래에 발생할지도 모르는 위기상황에 대비해 국민보건 주권 확보를 위한 노력과 관심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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