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뉴스=노병철 기자] 최근 검찰이 A사의 ‘라벨 바꿔치기(택갈이) 수출’ 의혹을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업계 안팎에서는 “이런 일이 가능했다는 자체가 제도적 공백의 결과”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기업 일탈이 아니라, 수출용 의약품 관리체계의 구조적 허점을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보툴리눔 톡신은 생물의약품으로, 제조단계부터 국가별 허가사항이 엄격히 규정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벨이 임의로 교체돼 수출될 수 있었다는 점은, 수출용 제품의 검증 절차가 여전히 서류 위주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준다.

현행 제도상 수출용 의약품은 국내 판매용과 달리 제품 라벨 표기·포장 형태에 대해 식약처의 사전승인을 받지 않는다. 「의약품 등의 안전에 관한 규칙」 제79조에 따르면, 수출용 제품은 내수용과 구분돼 제조할 수 있으며, 제조소의 자체 품질검사와 출하 절차를 거치면 수출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동일 원액이라도 포장 단계에서 브랜드별 라벨만 달리 부착할 수 있는 구조가 형성돼 있다.

두 번째 문제는 OEM(위탁생산) 구조다. 국내 톡신 시장은 브랜드사와 생산라인이 분리된 경우가 많다. 하나의 제조시설에서 여러 브랜드 제품이 생산되다 보니, 라벨 부착 단계에서 혼용 가능성이 상존한다. 일부 OEM사는 이를 ‘해외 주문사 요청’으로 정당화하기도 한다.

세 번째는 통관검증의 한계다. 관세청은 수출품의 표기사항이 서류상 명세서와 일치하면 통관을 승인한다. 샘플 실물 검증은 일부에 한정돼 있어, 라벨이 바뀌었더라도 전량 확인은 어렵다. 실제로 A사 사건에서도 수출 이후 현지 유통 과정에서 의혹이 제기됐다.

이 같은 허점을 오래전부터 지적해온 전문가들은 “수출용 의약품의 표기 관리가 제조사 자율에만 맡겨져 있다”며 “수출용 포장·라벨 사전등록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톡신처럼 글로벌 신뢰가 중요한 품목은 ‘라벨 데이터베이스 등록제’ 도입이 검토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문제는 정부가 유사 정황을 이미 인지했음에도 제도적 보완이 미흡했다는 점이다. 과거 C사 사례에서도 행정조사만 진행됐을 뿐, 통관 시스템 개선이나 OEM 단계 검증 강화로 이어지지 않았다.

결국 이번 사건은 관리 사각지대가 낳은 예고된 사고로 평가된다. 식약처는 GMP 점검에 집중하고, 관세청은 통관서류만 확인하며, 양 기관 간 데이터 연계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누구도 라벨 교체를 확인하지 않는 구조’가 고착된 셈이다.

수출대행 무역업체의 책임 범위도 모호하다. 현행 약사법상 무역대행업체는 제조·판매업 허가 대상이 아니어서, 불법 라벨 부착에 관여하더라도 직접 제재가 어렵다. 제조사는 행정처분을 받지만, 실제 실행 주체는 대행업체인 경우가 많아 관리가 어렵다.

이런 구조적 틈새가 결국 ‘관행적 편법 수출’을 낳았다는 지적도 있다. 일부 기업은 해외 바이어의 브랜드 요구에 맞추기 위해, 원액은 같지만 포장만 바꾸는 사례가 있었다는 증언도 나온다. 제도적 단속이 느슨하다는 점이 반복의 원인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이제라도 수출용 라벨링 관리 고시를 신설해 제품 포장·표기 변경 시 의무신고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며 “통관 단계에서 라벨 정보와 제조사 데이터를 자동 대조하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번 사건이 불법 라벨 교체로 최종 입증될 경우, 정부의 관리체계는 대대적 손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는 단순히 A사 한 곳의 문제가 아니라, 제약바이오 수출 전반의 구조 개선 요구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업계 한 관계자는 “보툴리눔 톡신 시장은 단가 경쟁보다 브랜드 신뢰와 품질 일관성이 핵심”이라며 “이번 사안은 단순한 절차 위반을 넘어, 수출 관리 체계 전반의 신뢰 문제가 드러난 사례”라고 말했다. 그는 “생산과 수출 과정의 검증 체계를 일원화하지 않으면 유사 사례가 반복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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