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뉴스=김민건 기자] 보건복지부가 2026년 건강보험 급여 적정성 재평가 대상에 은행엽 엑스 제제를 포함한 것을 철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재평가 대상이 제도 취지나 기준에 맞지 않을 뿐더러 선정 과정 절차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제약산업 발전에 역행한다는 지적까지 받고 있다.
1일 업계에선 정부가 은행엽 제제를 급여 적정성 재평가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우려와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복지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는 최근 '2026년 급여 적정성 재평가 기준'을 논의하면서 과거 1989년 급여 등재된 7개 성분(은행엽엑스, 도베실산칼슘수화물, 메글루민가도테레이트, 디아세레인, 아프로쿠알론, 옥틸로늄브론화물)을 포함시켰다.
발표 이후 제약업계가 크게 술렁였다. 급여 적정성 재평가는 의약품별로 임상적 유용성과 비용 효과성 등을 검토해 급여 유지나 축소, 삭제 여부를 결정하는 제도다. 은행엽 제제는 청구액만 1500억원에 달해 제약산업 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크게 미칠 수 있는 사안이다. 건강보험 재정 효율화만 신경쓰느라 현실은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에 논란이 일고 있다.
급여 적정성 재평가는 매년 해왔지만 기준은 동일했다. 3년 평균 청구액, A8 국가 등재 현황, 급여 등재 연도, 정책적 또는 사회적 이슈가 있는 기준에 따라 품목을 선정했다. 그간 일관된 기준을 적용한 것은 제도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제약산업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함이었다.
규제 중심의 제약산업은 '일관된 제도 적용'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매년 기준을 변경하면 제약산업에 큰 혼란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특정 기간과 평가 대상, 기준을 적용해 공정하게 진행해야 제약사들로서도 급여 재평가 결과를 수용할 수 있다.
이와 달리 2주기 사업부터는 갑자기 기준을 2배 이상 강화했다. ▶3년 평균 200억원 이상 ▶해외 등재 기준 A8 국가 중 1개국 미만 품목이었던 기준을 내년부터 ▶3년 평균 100억원 이상 ▶A8 국가 등재국 2개 이하로 범위를 넓히는 것이다.
급여 재평가는 크게 1주기(2020~2024년)와 2주기(2025년 이후)로 나누며 1주기 대상은 콜린알포세레이트(2020년), 스트렙토키나제·스트렙토도르나제(2022년), 레바미피드 제제(2023년) 등이었다. 올해로 1주기 사업은 종료한다.
2기 건보종합계획에 따르면 89~01년 급여 등재 약제는 1주기 기준을 적용하고, 02~06년 등재 약제는 2026년부터 재평가가 예정돼 있다. 은행엽 제제 급여 등재 시기는 1989년이다. 1주기 기준을 적용해야 하지만 갑자기 2주기 기준을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제약업계로서는 난감해진 상황이다. 은행엽 제제를 생산해 온 국내 제약사들은 직접적인 타격을 받게 돼 비상이 걸렸지만 업계 의견 수렴이나 공론화 과정은 없었다. 정부가 재평가 기준을 손보면서 은행엽 제제만 애먼 누명을 쓰게 됐다는 얘기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급여 재평가 제도는 제약산업에 종사하는 기업들의 예측 가능성과 급여 적정성 재평가 결과 수용률을 높이기 위해 일관된 기준을 적용해 왔다"며 "이와 달리 예고나 공론화 없이 기준을 2배나 강화해 기존 재평가 대상이 아니었던 품목을 선정한 것은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라고 힘주어 말했다.
은행엽 제제는 1989년부터 2009년, 2013년 이후까지 수차례 재평가를 통해 급여 기준을 조정했다. 최초 급여 등재 당시 468원이었지만 현재 대부분 품목이 128원까지 약가 인하가 됐다.
재평가 제도는 국내에서 오랜 기간 사용했지만 임상적 경험과 유용성 평가가 필요한 품목이 대상이다. 은행엽 제제의 경우 급여 기준 조정을 통해 임상적 유용성과 급여 적정성 검증이 과거에 끝났다.
새로 강화한 'A8 등재국 3개국 미만' 등재 기준은 해외 서구권 국가에서 급여 등재 여부를 근거로 한국 환자에서 임상적 유용성을 판단해 급여를 결정하겠다는 것과 같다. 급여 재평가 대상에 은행엽 제제를 재포함시킨 이유인 A8 국가 급여 등재 기준도 맞지 않다.
은행엽 제제는 독일·스위스 외에도 급여를 적용하는 해외 국가들이 있다. 미국(Redbook)과 프랑스(Codge) 약가 자료집에도 각각 등재 돼 사실상 A8 국가(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독일, 스위스, 캐나다) 중 4개국에 올라 있다.
6년 전인 2021년에도 재평가 대상으로 검토했다가 제외한 것은 1주기 기준에 맞지 않아서다. 업계에서는 "이미 재평가를 받은 은행엽 제제를 다시 포함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기준을 강화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치지 않다보니 발생한 문제다.
제약업계는 이번 조치가 재평가 취지와 국산 신약 개발 장려 정책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본다. 정부는 제약·바이오산업 육성 정책을 내놓으며 국내 제약사들의 혁신신약 개발을 장려하고 있다.
제 1차 건강보험 종합계획('19~23') 결과를 반영해 2차 건보 종합계획을 수립한 것도 그 이유에서다. 안정적이면서 실효성 있는 제도 운영으로 예측 가능성을 높여 국내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계획이다.
급여 적정성 재평가 제도의 본래 취지도 건강보험 재정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고, 꼭 필요한 치료제 보장성을 강화하는 데 있다. 이번 조치로 국내 개발 신약이나 천연물 신약 개발 구조를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재평가 제도 취지와도 맞지 않으며, 중복 규제로 제약산업 발전을 역행한다는 논란이 확산하고 있어 2기 사업 개선이 필요하다는 업계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일각에서는 "재평가 심사를 완료한 은행엽 제제는 1기 재평가 기준을 일관되게 적용하는 것이 맞다"며 "임상적 유용성 입증, 약가 조정을 통한 급여 적정성 확보, A8 국가 등재 등 재평가 대상 기준을 따져봐도 어느 하나 해당하는 것이 없다"고 강하게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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