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뉴스=김응민 기자] 국가핵심기술로 묶여 있는 '보툴리눔 톡신' 고시 지정에 대해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업계의 비판이 거세다. 국가 안보 및 공중보건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의 본래 취지를 벗어나, 이미 국제적으로 범용화된 기술을 과도한 규제로 가둬 오히려 K-바이오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을 저해시킨다는 지적이다.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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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핵심기술은 해외 유출 시, 국가 안보와 경제 그리고 공중보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술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법률이다. 희소성과 전략성이 높은 기술을 대상으로 하며 국가 경쟁력 유지와 국가안보 확보를 핵심 목적에 두고 있다. 

주목할 점은 바로 이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된 '보툴리눔 톡신' 제제와 관련해 지정 타당성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비판이 거세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허종식 의원과 국회의원 강승규 의원, 그리고 한국시민교육연합이 지난 2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한 'K-바이오헬스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가핵심기술 보호제도 개선방안' 토론회에서 건국대 의대 이승현 교수와 한국시민교육연합 이상수 상임대표는 각각 발제자로 발표를 진행했다. 

이승현 건국대 의대 미생물학교실 교수
이승현 건국대 의대 미생물학교실 교수

먼저 '국가핵심기술 제도의 타당성 검토: 보툴리눔 톡신 사례를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발표를 진행한 이승현 건국대 의대 미생물학교실 교수는 "국가핵심기술 제도 자체는 좋은 취지지만, 보툴리눔 톡신 제제에 대한 부분은 오히려 기업 부담을 가중시켜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국가핵심기술 제도의 핵심은 '외국에는 없고 우리나라에만 있는 기술이 유출될 우려가 있어 보호하는 것'이다. 하지만 보툴리눔 톡신 관련 기술은 해외에서 먼저 시작됐으며 특허권도 이미 만료된 상태다. 

다시 말해, 기술의 시발점이 외국인데, 어떤 측면에서 대외 유출을 막아야 하는지 납득이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균주 문제에 대해서는 더욱 구체적인 비판이 나왔다. 

이 교수는 "보툴리눔 균주는 이미 자연에 존재하는 미생물인데, 이러한 물질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다"라며 "보툴리눔 톡신은 포자 형태이기 때문에 토양에서 분리하기 쉬운 편이다. 균주 확보가 전혀 어려운 기술이 아니다"고 말했다.

지식재산권(IP) 보호 측면에 대해서는 '특허권 만료'를 핵심 논리로 꼽았다. 제약사들이 라이선스 아웃(기술수출)을 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보는 것이 '특허권 보호 유무'인데, 보툴리눔 톡신 제제는 이미 글로벌 특허 보호가 만료된 상태라 시장에서 매력이 없다는 설명이다.

그는 오히려 국내 제약사들의 성과를 언급하며, 규제가 아닌 수출 진흥과 장려가 올바른 정책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국내 제약사들은 짧은 시간 안에 보툴리눔 제제를 국산화하는데 성공했고, 국내 시장에서도 상당한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라며 "최근 K-뷰티, K-바이오라는 이름으로 의약품 수출이 부각되고 있는데,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땐 국가핵심기술로 묶을 게 아니라 오히려 해외 수출을 독려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얼마 전 국내 바이오벤처인 아이진이 유전자 재조합 기술을 통해 보툴리눔 균주를 개발했다"라며 "이미 우리나라 제약바이오 산업의 기술력은 충분하다. 발목을 잡는 건 규제"라고 덧붙였다.

이상수 한국시민교육연합 상임대표
이상수 한국시민교육연합 상임대표

다음으로 이상수 한국시민교육연합 상임대표는 '제외국의 보툴리눔 독소제제 규제 현황 및 관리방안 비교를 통한 산업・안보 균형 발전방안'이라는 주제를 통해 국가핵심기술 제도의 원칙은 중요하지만, 보툴리눔 톡신 현행 지정은 재검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상수 상임대표는 "우리나라는 전략기술 보호를 위해 국가핵심기술 지정제도를 시행하고 있으며, 목적과 취지에 깊이 공감한다. 하지만 시대 변화와 기술 환경, 글로벌 산업동향을 고려했을 때 보툴리눔 독소제제 생산기술과 균주에 대한 부분은 기존의 보안목적보다 산업 경쟁력 측면에서 손실이 큰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는 해외 규제와의 대비를 통해 한국 제도의 특수성과 한계를 부각했다. 

미국과 EU는 균주 출처 자체를 보안 대상으로 삼지 않으며 제조·품질·안전성을 관리하고, 의약품 목적의 활용은 장려하고 있다. 일본 역시 연구·보관은 엄격히 관리하지만 산업적 활용은 후생노동성이 담당하는 구조로, 산업 진흥과 안전 규제가 분리돼 있다는 설명이다.

반면 한국은 산업기술보호법을 통해 균주와 생산기술 전체를 포괄적으로 규제하고 있으며 대외무역법, 생화학무기법, 테러방지법, 약사법, 감염병예방법, 가축전염예방법 등 무려 6개 부처에서 7개 법령으로 과도하게 관리되고 있는 상황이다. 

즉, 과도하게 중첩적인 규제로 이른바 '옥상옥' 상황이 펼쳐지고 있으며, 이미 다층적인 구조로 촘촘히 관리되고 있기 때문에 굳이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하면서까지 별도로 보호할 실익이 없다는 것이다.

주목할 점은 보툴리눔 제제가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되는 과정에서 절차적 투명성과 거버넌스 문제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 상임대표는 "보툴리눔 제제는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되는 과정에서 행정예고와 업계 의견 수렴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고, 공청회·간담회·서면 의견 조회 등에 관한 증빙도 정보공개청구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산업기술보호전문위원회 위원 구성과 운영은 비공개로 장막 뒤에서 이뤄진다. 특히 해당 위원 중 한명은 지난 2013년부터 10년 넘게 장기 재임하고 있다. 산업계와 정치권이 얽혀 있는 규제 카르텔이 의심될 정도"라고 덧붙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현재 국내에서 보툴리눔 제제를 생산 중인 제약사 18곳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문제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이 상임대표는 "총 18개 제약사 중 응답을 한 제약사는 17곳이었으며, 보툴리눔 제제의 국가핵심기술 지정해제를 찬성하는 곳은 전체의 82.4%인 14곳으로 집계됐다"라며 "현행 제도 유지를 주장한 곳은 3곳 뿐이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반대 응답을 한 3개 제약사의 경우, 상업화 가능한 균주는 극소수에 불과해 기술보호가치가 높고 중국 등 해외 업체로부터 자국내 산업을 보호해야 하며, 톡신의 독성을 이용하여 테러 무기로 개발할 수 있는 가능성 등을 반대 이유로 꼽았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다만, 반대 입장을 표명한 제약사들은 보톡스 업계의 선발주자들로 이들 기업은 현행 규제의 최대 수혜자라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토론회 전경
토론회 전경

실제로 보툴리눔 제제 후발주자들은 식약처 품목허가, 수출입 신고·허가 등 각종 절차에서 높은 장벽에 직면해 있으며, 규제의 기대효과보다 글로벌 진출 기회상실의 비용이 훨씬 크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목소리다.

끝으로 그는 "결론적으로 보툴리눔 톡신 국가핵심기술은 지정 해제되는 것이 맞는 방향"이라며 "균형 잡힌 해제 방안으로는 ▲국가안보・생물안전 리스크 최소화 ▲산업 경쟁력・수출 효율성 회복 ▲기업・학계・정부의 신뢰 가능한 관리체계 구축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동시에 만족시켜야 한다"라고 전했다.

이어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의 경쟁력 제고와 수출 효율성 확보를 위해 지정 해제 방안이 시급히 필요하다"라며 "이를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K-바이오 역량과 국가 위상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글로벌 시장 경쟁력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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