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 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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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뉴스=우정민 기자] 기관지확장증 환자들에게 오랫동안 처방돼 온 ‘점액활성제’가 질병 악화를 막는 데 뚜렷한 효과가 없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퀸즈 대학교 벨파스트 연구팀은 최근 대규모 임상시험 ‘CLEAR’를 통해 고장성 식염수(염분 농도를 높여 점액 배출을 돕는 식염수)와 점액을 조절하는 카르보시스테인이 폐 악화 빈도를 줄이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며, 이 결과는 의학학술지 ‘NEJM’에 실렸다.

기관지확장증은 기관지가 비정상적으로 확장돼 만성적인 기침과 가래, 호흡 곤란을 유발하는 질환이다. 특히 세균 감염으로 급성 악화가 반복되면 환자의 삶의 질과 생존율이 급격히 떨어진다. 의료 현장에서는 이를 예방하기 위해 고장성 식염수와 카르보시스테인을 널리 사용해 왔지만, 과학적 근거보다는 임상 경험과 관행에 의존해 온 측면이 크다는 지적이 있었다. 현행 지침도 2014년 발표된 연구 종합 분석 결과에 근거해 마련됐으나, 당시 포함된 연구가 4건에 불과해 근거 수준이 낮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유럽 다국가 조사 EMBARC에서도 28개국 환자 1만 6,723명 가운데 약 28%가 뚜렷한 근거 없이 점액활성제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2018년 6월부터 2023년 9월까지 영국 내 20개 병원에서 288명을 모집해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환자들은 고장성 식염수와 카르보시스테인의 투여 여부를 각각 두 조건으로 나눈 ‘2x2 요인설계(two-by-two factorial design)’ 방식에 따라 네 그룹으로 배정됐다. 이 방식은 두 약물의 개별 효과와 상호작용을 동시에 평가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다. 연구팀은 이를 바탕으로 52주간 폐 악화 발생을 추적했다. 그 결과 고장성 식염수 투여군의 연평균 악화 횟수는 0.76회, 비투여군은 0.98회로 통계적으로 차이가 없었고(P=0.12), 카르보시스테인 투여군(0.86회)과 비투여군(0.90회)도 유의한 차이가 없었다(P=0.81). 삶의 질, 항생제 사용일수, 다음 악화까지 걸린 기간 등 다른 지표에서도 개선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부작용 면에서는 심각한 문제는 보고되지 않았으나, 카르보시스테인군에서 위장관 이상 반응이 상대적으로 더 많았다. 연구진은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치료는 환자의 부담만 늘린다”며 처방 재검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다만 이번 연구는 위약 대조가 어려워 공개 방식(open-label, 환자와 연구자가 어떤 약물이 투여되는지 알고 있는 방식)으로 진행됐다는 점, 연구 대상이 영국 환자에 한정돼 인종적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점, 환자 선정 과정에서 가래 배출의 어려움 정도를 반영하지 않았다는 점 등은 한계로 지적됐다.

이번 연구는 기관지확장증 치료 관행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며, 향후 가이드라인 개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또한 N-아세틸시스테인이나 북미에서 사용되는 구아이페네신 등 다른 점액활성제에 대한 과학적 검증 필요성을 부각시키며 후속 연구 과제를 제시했다.

출처: Judy M. Bradley et al., “Hypertonic Saline or Carbocisteine in Bronchiectasis”, Th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2025). doi:10.1056/NEJMoa2510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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