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 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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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뉴스=우정민 기자] 저소득과 중간소득 국가의 환자들이 필수 의약품을 구매하는 데 선진국보다 훨씬 더 큰 부담을 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필수 의약품을 사람들의 기본적 건강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반드시 확보돼야 하는 약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전 세계 인구 네 명 중 한 명은 여전히 약값을 감당하지 못하거나 접근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국가 간 의약품 불평등이 확인됐다.

이 연구 결과는 의학 학술지 JAMA Health Forum에 15일 게재됐다. 연구진은 2022년 기준으로 72개 시장(87개국 포함)에서 549개 필수 의약품의 정가와 판매량을 살폈다. 독일을 기준(지수 100)으로 삼아, 같은 품목과 소비량을 고정해 가격 변화를 평가하는 라스페이레스 가격 지수를 적용한 결과, 명목 가격은 부유한 국가에서 상대적으로 더 높게 형성됐다. 미국은 독일보다 약 4.1배 비쌌고(지수 407.5), 이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과 명목 약가 사이에 서로 비례하는 상관관계(R=0.30; P=.01)가 있음을 보여줬다.

하지만 구매력 평가를 적용해 실질 가격을 계산하자 상황은 정반대로 드러났다. 소득 수준이 높은 국가일수록 실질 가격은 오히려 낮아졌고, 반대의 상관관계(R=-0.35; P=.003)가 확인됐다. 레바논은 독일 가격의 18.1%(지수 18.1)에 불과했지만, 미국은 여전히 독일보다 3.0배 높았다(지수 298.2). 인도는 명목상 네 번째로 저렴한 수준이었지만, 구매력 평가 기준으로는 29위로 치솟아 실제 부담은 더 컸다. 지역별로는 미주 지역이 가장 높았고, 서태평양 지역이 가장 낮았다. 질환별로는 정신·행동 장애 치료제와 심혈관 질환 치료제가 높은 가격대를 보였으며, B형·C형 간염 치료제는 상대적으로 저렴했다.

경제적 부담은 최소 임금으로 한 달 치료비를 마련하는 데 필요한 일수로 측정됐다. 유럽과 서태평양 지역에서는 비교적 부담이 낮았으나,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에서는 훨씬 더 큰 압박으로 나타났다. 아목시실린, 이부프로펜, 살부타몰은 대부분 국가에서 최소 임금 1.2일 미만으로 살 수 있었지만, 항암제 파클리탁셀은 하위 중간소득 국가에서 40.9일이나 필요했다. 인도에서는 HIV와 B형 간염 치료에 쓰이는 항바이러스제인 테노포비르 디소프록실 한 달 치를 마련하기 위해 최소 임금으로 약 10일을 일해야 했다.

고소득 국가는 정부 보조금과 제도적 장치로 환자 부담을 덜어주지만, 저소득 국가는 환자가 직접 짊어져야 하는 몫이 훨씬 크다. 선진국은 건강 기술 평가, 제네릭 참조 가격제, 대체 처방 정책 등으로 약가를 관리하고, 제약사와 협상에서도 유리한 입지를 차지한다. 반대로 빈곤국은 이러한 장치가 부족해 동일한 약을 더 힘겹게 감당해야 한다.

연구진은 이번 분석이 정가 데이터를 기반으로 했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적했다. 고소득 국가에서는 비공개 할인이나 리베이트가 흔해 실제 격차가 더 클 수 있다. 또한 일부 국가는 비공식 노동 시장이 커서 최저 임금 자료만으로는 경제적 부담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 이번 연구는 저소득과 중간소득 국가의 환자들이 같은 필수 의약품을 두고도 선진국보다 더 높은 실질 비용을 치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연구진은 이러한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국제 공동 약가 협상, 대량 구매, 건강보험사의 협상력 강화, 특허 공유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등과 같은 국제적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출처 : Olivier J. Wouters, PhD et al., “Prices and Affordability of Essential Medicines in 72 Low-, Middle-, and High-Income Markets”, JAMA Health Forum(2025). doi:10.1001/jamahealthforum.2025.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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