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뉴스=우정민 기자] 의료인이 자신의 질환 치료를 위해 전문의약품을 복용한 행위가 면허범위 외 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를 두고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서울행정법원 제14부는 지난달 10일, 보건복지부가 치과의사 A씨에게 내린 자격정지 1개월 15일 처분을 취소한다고 판결했다(2024구합8697*).
A씨는 서울에서 치과의원을 운영하면서, 2020년 5월부터 12월까지 의약품 도매상이 운영하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발기부전 치료제 ‘이렉시멈’과 탈모 치료제 ‘아보다트’를 구입해 복용했다. 구매한 의약품은 모두 전문의약품으로, 원칙적으로는 의료인의 처방에 따라 약국을 통해 공급돼야 한다.
감사원은 같은 해 의약품 안전관리 실태를 감사하며, 치과의사가 치과진료와 무관한 의약품을 자가복용한 정황을 포착했고, 이를 관할 보건소에 통보했다. 보건소는 이를 면허범위 외 의료행위로 판단해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구성요건에는 해당하지만 영리 목적이 아니고 자가복용이라는 점 등을 참작해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보건복지부는 의료법 위반을 근거로 자격정지 3개월에 해당하는 처분 기준을 적용하되, 기소유예를 참작해 절반으로 감경한 1개월 15일의 행정처분을 내렸다. 이에 대해 A씨는 본인의 행위가 의료법상 제재 대상이 아니며, 오히려 약사법의 해석이나 제도의 불비 탓에 비롯된 사안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자가복용을 의료법 위반으로 포섭하는 것은 과도하며, 일반인에게 허용되는 자가치료를 의료인에게만 금지하는 것은 형평에 어긋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에 재판부는 의료법 제27조가 금지하는 면허범위 외 의료행위는 주로 인체에 위해를 줄 수 있는 침습적 행위에 해당한다고 짚었다. 재판부는 “의료인이 스스로 복용한 행위가 환자에게 위해를 초래하는 것이 아니고, 보건위생상 위험도 인정되지 않는 이상 제재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역시 의료인의 자가복용 행위를 무조건적인 제재 대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판단을 내린 바 있다. 재판부는 “비의료인의 자가치료는 법적으로 금지되지 않으며, 의료인이 동일한 행위를 했다고 해서 형사처벌이나 행정처분으로 연결하는 것은 법체계 전반의 일관성을 해치는 해석”이라고 밝혔다. 약사법 위반 여부에 대해서도 “오남용이 우려되는 특정 성분의 약물이 아닌 이상, 현행법은 별다른 제재조항을 두고 있지 않다”며 처벌의 근거로 삼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또 “의료인의 약물 남용이나 정신질환에 대해 별도 규정을 두고 있듯이, 자가복용 전반을 의료법 위반으로 포섭하려면 입법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결국 재판부는 A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자격정지 처분을 취소하고, 소송비용은 보건복지부가 부담하라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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