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뉴스=김민건 기자] 청구액 533억원. 건강보험공단이 폐암(소세포암, 편평세포암)과 후두암(편평세포암) 진단자 3465명(흡연 기간 30년 이상이고, 20갑년 이상)에게 지급한 건강보험 비용이다.
23일 건보공단은 이 같은 내용을 토대로 KT&G, 한국필립모리스, BAT코리아 및 제조사 등 담배 회사와 손해배상 청구 소송 2심을 진행 중이다.
지난 5월 22일 진행한 항소심은 12차 변론을 끝으로 종결됐다. 피고측 참고서면 2개월 이내(7월 말), 이후 1개월 이내 원고측 참고서면 제출(8월말)로 오는 8~9월 2심 판결이 나올 예정이다
팜뉴스 취재 결과, 지난 5월 세계보건기구(WHO)와 세계보건기구 담배규제기본협약(WHO FCTC) 사무국은 이번 소송 관련한 과학적 의견서와 정책적 서한문을 각각 공단에 전달한 사실이 확인된다.
WHO는 의견서에서 '흡연은 폐암의 주요 원인이며, 니코틴 의존은 중독 질환'이라고 분명히 했다.
WHO FCTC 사무국 또한 캐나다 담배회사 대상 집단소송 사례를 상세히 소개하며 "담배규제기본협약 제5조3항에 따라 한국은 담배 규제와 관련한 공중보건 정책을 수립‧시행에 있어 담배 산업의 상업적 이익으로부터 해당 정책을 보호하는 조치를 취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국제 공중보건 기구들이 한국 내 담배 소송 정당성과 공익성을 사실상 뒷받침한 셈이다. 건보공단은 흡연이 암 발병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그 책임을 끝까지 묻겠다는 의지다.
이미 공단은 지난 담배소송 제12차 변론에서"담배회사들이 수십 년에 걸쳐 흡연의 유해성과 중독성을 의도적으로 은폐하고, 소비자를 기만하며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며 공단의 직접 손해배상 청구권을 포함해 현재까지 주요 쟁점에 대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특히, 공단은 "담배회사가 제조하는 담배라는 제품은 본질적으로 중독성과 심각한 건강 위해성을 내포하고 있다"며 "과거 이러한 내용을 정확히 알리지 얺은 것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저버린 중대한 문제다"고 지적했다.
공단은 담배회사가 흡연 중독 피해를 '개인의 선택'으로 돌리려는 주장을 한다면서 "국민을 두 번 기만하는 것이다"고도 비판했다.
공단은 담배 회사에 책임을 묻기 위해 흡연과 인과관계를 명확히 하기 위한 과학적 근거를 제시했다. 흡연에 의한 발생 암종을 소세포암과 편평세포암으로 정하는 한편 흡연 기간이 '30년 이상이고, 20갑년 이상'인 경우로 대상자를 엄격히 선별했다.
그 다음으로 흡연 기간이 '30년 이상이고, 20갑년 이상'인 흡연자는 소세포폐암 발생 위험이 흡연자보다 54.49배나 높다는 데이터를 제시했다. 아울러 흡연이 폐암에 미치는 영향으로 소세포폐암 98.2%, 편평세포후두암 88%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도 함께 제출했다.
이에 공단은 "이번 소송에서 흡연과 암 발생의 인과관계만큼은 의학적 진실과 국민 상식에 부합하는 측면에서도 인정해야 한다"며 강력한 주장을 펼쳤다.
◇유전 요인, 폐암·후두암 발생 개연성 없거나 극히 낮아
공단이 제출한 연구와 관련, 이선미 건강보험연구원 건강보험정책연구실장은 "유전 요인이 폐암과 후두암 발생과 개연성이 없거나 극히 낮다"며 "반면, 흡연은 강력한 암 발생의 위험 요인임을 재확인한 연구이다"고 의미를 설명했다.
이어 "국내 최초로 흡연과 폐암, 후두암 발생 간 인과성 분석에서 유전 요인 영향을 통제했다"며 "유전 요인이 폐암과 후두암 발생에 기여하는 정도까지를 규명했다"고 덧붙였다.
지난 6월 12일 2025년 국민건강보험 글로벌 포럼이 열렸다. 담배소송 특별세션 발표자로 이두갑 서울대학교 과학학과 교수가 나서 '한국 담배소송에서의 과학적 증거 역할'을 자세히 밝혔다.
이 교수는 "공단이 제기한 소송에서 활용한 역학 자료와 제품 설계 증거, 그리고 미국 법원의 Kessler 판결(RICO소송)등은 모두 담배회사 책임을 입증하는 강력한 증거이지만 한국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이번 소송은 과학과 법이 국민의 생명과 권리를 위해 어떻게 협력할 수 있는지를 보여줄 기회이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과학은 법의 정당성을 떠받치는 기둥이며, 법은 과학의 손을 잡을 때 정의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해외 소송 사례, 33조원 규모 배상 합의
지난 1998년 캐나다 퀘백주 흡연 피해자 약 10만 명은 주요 담배 3사(필립모리스 자회사, BAT 자회사, JTI 자회사)를 상대로 담배회사가 흡연 위험성을 충분히 고지하지 않았다며 집단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2015년 6월 1심 법원은 담배회사들이 흡연 위험성을 충분히 알리지 않은 점, 흡연 중독성을 축소하거나 소비자를 기만하는 마케팅을 한 점 등을 인정하며 약 13조8000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후 담배회사들이 항소했으나 2019년 3월 기각됐고 2025년 3월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정부 소송과 퀘백주 집단 소송을 포괄하는 약 33조원 규모의 배상 합의로 마무리됐다.
공단은 캐나다에서 진행한 담배소송 승소 사례가 "담배회사가 제품의 위험성을 은폐하거나 축소하면 막대한 배상 책임을 부과할 수 있다느 ㄴ것을 국제적으로 확인시켜 주는 계기가 됐다"며 "의료비 등 사회적 비용 부담에 대해 담배 제조사에 더 넓은 책임을 묻는 근거가 될 것이다"는 입장이다.
공단은 흡연으로 발생한 국민 건강 피해를 증명하고 막대한 건강보험 재정 부담을 주는 것에 담배회사가 사회적 책임을 실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도 흡연이 폐암 등 질병에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법적 인식 확산에 기여한 것으로 보고 국내 법원 해석과 판단에 주요한 참고 기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정기석 공단 이사장은 "공단은 수많은 과학적‧의학적 근거와 국제사회의 지지를 바탕으로 담배회사 책임을 끝까지 묻겠다"며 "선고 이후에도 흡연 예방과 국민의 건강 증진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개의 댓글
댓글 정렬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