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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뉴스=우정민 기자] 비만 치료제로 알려진 GLP-1 수용체 작용제(GLP-1 RA)가 특발성 두개내 고혈압(IIH) 환자들에게서 증상을 완화하고, 시술과 사망 위험까지 낮춘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다기관 데이터를 분석한 대규모 후향적 연구 결과로, 체중 감량제 이상의 역할 가능성을 보여주며 새로운 치료 전략으로 주목받고 있다.

IIH는 두개내압이 이유 없이 상승하면서 두통, 시야 흐림, 박동성 이명, 유두부종 같은 증상이 반복되는 질환이다. 시력까지 위협할 수 있어 조기 대응이 중요하지만, 적용 가능한 치료법은 제한적이다. 대다수가 과체중이거나 비만인 젊은 여성으로, 체중 감량이 가장 확실한 완화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식이조절이나 운동만으로는 증상 개선이 쉽지 않고, 기존 약물은 부작용이 많아 장기 복용에 제약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GLP-1 RA가 예상을 넘어서는 효과를 보였다. 이번 연구는 의학학술지 JAMA Neurology에 14일 게재됐다. 애초에 제2형 당뇨와 비만 치료를 목적으로 개발된 GLP-1 RA는, IIH 진단 후 6개월 이내에 복용을 시작한 환자군에서 기존 치료만 받은 환자군보다 전반적인 예후가 더 좋았다. 연구는 미국 전역의 67개 의료기관에서 수집된 전자 건강 기록 데이터를 활용해 진행됐다. 이 가운데 IIH 진단을 받은 환자 중 GLP-1 RA 치료를 받은 이들과 기존 치료만 받은 환자 각각 555명을 추려 두 집단의 조건이 가능한 한 비슷하도록 설정한뒤, 치료 효과 차이를 비교했다. 두통, 시야 이상, 유두부종 모두 감소했고, 시술 빈도와 사망률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주목할 만한 점은 두 집단 간 평균 체질량지수(BMI) 차이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GLP-1 RA를 투여받은 환자군은 체중이 크게 줄지 않았음에도 증상이 뚜렷하게 개선됐다. 이는 단순히 체중 감량 때문이 아니라, 이 약물이 독립적인 생리학적 경로를 통해 작용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실제 전임상 연구에서는 GLP-1 수용체가 중추신경계에 존재하며, 해당 수용체의 활성화가 뇌척수액 흐름과 두개내압 조절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관찰됐다. 동물 실험에서는 실험용 쥐에 GLP-1 RA 계열 약물인 엑세나타이드(Exenatide)를 투여한 결과, 두개내압이 유의미하게 감소하는 반응이 확인됐다.

안전성 측면에서도 장점이 부각된다. 기존에 널리 쓰이던 아세타졸아마이드(Acetazolamide)는 전신 부작용으로 복용을 지속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다. 반면 GLP-1 RA는 메스꺼움이나 복통 등 위장관계에 국한된 경증 부작용이 대부분이었고, 실제 임상시험에서도 약물 중단 없이 치료가 이어졌다. 이처럼 내약성이 좋다는 점은 장기적인 치료 전략에서도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비용 측면에서도 실질적인 장점이 확인됐다. GLP-1 RA의 연간 치료비는 9,360~16,200달러로, 비만 수술(17,400~22,850달러)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침습적인 시술 없이도 증상을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은, 치료 효율성과 경제성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세마글루타이드(Semaglutide) 같은 약제는 이러한 경제성과 효과성 면에서 가장 앞선 것으로 분석됐다.

이번 연구는 기존의 의료 기록을 바탕으로 진행된 후향적 분석이라는 점에서 일정한 한계가 따른다. 전자 건강 기록을 기반으로 한 만큼 진단의 정확성이나 보고 기준에 차이가 있을 수 있으며, 약물의 종류나 투여 방식에 따른 효과 차이에 대한 세부 분석도 이뤄지지 않았다. 다만, 다양한 기관에서 수집된 대규모 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석이 이뤄졌다는 점은 이번 연구 결과의 신뢰도를 일정 부분 뒷받침하는 근거로 해석된다.

이러한 결과는 GLP-1 RA가 기존 치료에 비해 두통, 시야 장애, 유두부종, 약물 사용률은 물론 시술 빈도와 사망률까지 여러 지표에서 유의미한 개선 효과를 보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평균 체질량지수(BMI)에 큰 차이가 없었음에도 증상 완화가 나타난 것은, 체중 감량 외에도 이 약물이 신경계 또는 뇌압 조절과 관련된 생리학적 기전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다만 이러한 작용 기전에 대한 보다 명확한 규명을 위해 추가적인 후속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출처: Georgios S. Sioutas, MD et al., “GLP-1 Receptor Agonists in Idiopathic Intracranial Hypertension”, JAMA Neurology (2025). doi:10.1001/jamaneurol.2025.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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