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뉴스=우정민 기자] 한약사가 약국이 아닌 장소에서 다이어트 목적의 한약을 택배로 판매한 행위를 두고, 대법원 제1부는 지난 12일 약사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주문자와의 대면 없이 이뤄진 재주문 택배 판매가 의약품 판매 장소 제한 조항을 어겼다고 보고, 사건을 다시 원심법원으로 돌려보냈다(2023도9*80). 비대면 의약품 판매에 대한 법원의 판단 기준이 한층 엄격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건은 2019년 5월, 서울 성북구보건소에 한약사 A씨가 운영하는 E약국이 의약품을 택배로 판매하고 있다는 민원이 접수되면서 시작됐다. 현장 점검에서 식용 한약재가 없고 조제기록부도 작성되지 않았으며, A씨는 관련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보건소는 실질적 조사가 어렵다고 보고 서울시 민생사법경찰단에 수사를 의뢰했다.
수사에 나선 수사관 F는 8월 E약국에 전화해 한약 구매를 문의했고, 약국 측은 초진은 방문 상담이 필요하나 재주문은 전화로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F는 9월 A씨와 대면 상담 후 결제를 마쳤고, 10월에 한약을 택배로 수령했다. 이어 11월, A씨는 F에게 전화로 다이어트 경과를 묻고 동일한 한약을 다시 조제해 택배로 발송했다.
이후 A씨는 약국 외 장소에서 의약품을 판매해서는 안 된다는 약사법 제50조 제1항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판매된 한약이 당귀, 작약 등 식품 원료로 만들어졌더라도 체지방 분해 등 약효를 표방하고 복용법이 안내된 점 등을 고려할 때, 사회 일반인이 의약품으로 인식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A씨에게 벌금 100만 원을 선고하며 유죄를 인정했다. A씨 측이 주장한 함정수사에 대해서는, 수사기관의 절차가 민원에 따른 정당한 사실 확인이었을 뿐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1심과 달리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전에 고객과 대면 상담을 통해 동일한 한약을 조제·판매한 이력이 있었고, 재주문 시에도 증상 변화 없이 같은 제품이 요청됐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재판부는 비록 재판매가 약국 밖에서 이뤄졌더라도, 전체적인 과정이 약국 내에서 진행된 것과 차이가 없다고 판단했다. 의약품 판매는 원칙적으로 약국에서 이뤄져야 하지만, 이처럼 사실상 동일한 방식으로 이뤄졌다면 예외로 볼 여지가 있다는 해석이었다.
하지만 검사의 상고로 사건을 심리한 대법원은 항소심 판결이 법리를 오해했다고 보고, 다시 판단하라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약사법 제50조 제1항이 약사의 적정 관리 하에 의약품을 유통시키고, 복약지도와 부작용 대응을 통해 국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공익적 규정이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이는 한약사 역시 예외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특히 주문과 조제, 인도, 복약지도 등 의약품 판매의 일련 과정이 전부 또는 주요 부분에서 약국 내에서 이뤄져야 하며, 이를 대체하는 ‘동일한 방식’의 판단 기준도 엄격히 해석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A씨가 전화 상담을 통해 한약을 판매하고, 택배로 전달한 행위는 이러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봤다.
A씨는 함정수사였다는 주장을 반복했으나, 재판부는 민원 제기 후 이뤄진 수사기관의 대응은 적법한 사실 확인 절차였을 뿐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A씨는 약사법 제50조 제1항이 한약사에만 택배 판매를 금지하는 것은 평등의 원칙과 죄형법정주의에 반하고, 과잉금지원칙 위반으로 직업수행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하며 위헌법률심판을 신청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해당 조항이 국민 건강 보호라는 정당한 입법 목적을 갖고 있다며 이를 기각했다.
이번 판결은 비대면 진료·판매가 확산되는 흐름 속에서 약사법상 판매 장소 제한 조항의 해석과 적용 범위에 대해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대법원은 “전화 판매와 택배 배송은 약국 내 판매 행위와 동일하게 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며, 향후 비대면 방식으로 진행되는 의약품 판매 행위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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