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뉴스=우정민 기자] 출산 과정에서 발생한 태아 뇌손상에 대해 법원이 의료진의 과실을 인정하고 병원과 의사에게 공동 책임을 물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15부는 지난달 14일, 산모 C씨의 출산 과정에서 발생한 신생아 A군의 뇌성마비에 대해 L병원과 소속 산부인과 전문의 F씨, 전공의 G씨의 과실을 인정하고, 총 6억 4239만여 원의 손해배상을 명령했다(2021가합5784*7).
산모 C씨는 2018년 4월 L병원에서 임신을 진단받고 같은 해 12월까지 정기적으로 산전 관리를 받았다. 고혈압, 당뇨, 간염 등의 질환 과거력은 없었고, 태아의 기형아 선별검사 및 정밀 초음파 검사에서도 이상 소견이 발견되지 않았다. 12월 22일 오전, 임신 39주 4일째였던 C씨는 진통을 느껴 병원에 입원했고, 그날 오후 3시 41분 A군을 질식분만으로 출산했다. 출산 당시 A군은 탯줄이 목에 감긴 채 태변 착색과 청색증, 울음 없음, 근긴장도 결여 등의 증상을 보였으며, 아프가 점수는 1분 2점, 5분 3점, 10분 4점으로 매우 낮았다. 제대혈 가스 분석에서도 심한 산증 소견이 나왔고, 이후 저산소성 허혈성 뇌병증 진단을 받았다.
A군은 출생 직후부터 전신 저체온요법 치료를 받았으며, 뇌초음파, EEG, MRI 검사 등에서 광범위한 뇌손상과 뇌기능 저하 소견이 확인됐다. 이후 경직성 사지마비형 뇌성마비로 진단돼 지속적인 재활 치료를 받고 있다. C씨는 의료진이 옥시토신 투여와 무통주사 사용, 태아안녕 감시, 응급조치 등에서 과실이 있었고, 설명 의무도 위반했다고 주장하며 24억 원 이상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병원 측은 모든 조치가 당시 임상 기준에 따라 적절히 이뤄졌고, 태아 심박동수도 대부분 정상 또는 중간 수준이었으며, 위험한 조치는 피한 것이라고 항변했다. 또한 A군의 뇌손상은 유전적 요인이나 선천적 결함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옥시토신 및 무통주사 투여와 설명의무 위반에 대해서는 과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옥시토신은 허가사항에 맞춰 투여됐고, 무통주사는 산모의 통증 완화를 위한 조치였으며, 이들 약물과 뇌손상 사이의 인과관계는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태아 심박동 이상에 대한 감시 소홀과 적절한 조치 지연에 대해서는 명백한 과실이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오후 2시 30분부터 분만 직전까지 약 1시간 동안 A군의 심박동에서 위굴형 감소, 반복적 감소, 변이도 소실 등 저산소 상태를 시사하는 이상 소견이 나타났으며, 특히 오후 3시 9분 이후에는 산소공급이 차단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이 시점에서 자궁 내 소생술을 시도하고, 상태가 호전되지 않을 경우 즉시 분만을 준비했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의료진은 자연 분만을 그대로 진행해 분만 시기를 놓쳤다고 봤다.
의료진 간 의사소통 부재도 지적됐다. 간호기록에는 2시 이후 태아 심박동 변화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었고, 전공의 G씨는 전문의 F씨에게 이상 소견을 보고하지 않았으며, F씨는 환자 상태를 직접 확인하지 않았다. 병원 측이 주장한 중앙 모니터링 시스템을 통한 확인 가능성도 2018년 당시 기술 수준으로는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A군이 출생 직후부터 보인 상태와 이후 진단된 뇌성마비 증상, 검사 결과 등을 종합할 때, 분만 중 발생한 저산소증이 원인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특히 미국산부인과학회와 소아과학회가 제시한 인과관계 판단 기준 네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한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다른 원인이 증명되지 않는 이상, 의료진의 과실과 A군의 뇌성마비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다만, 태아 심박동 해석의 불확실성과 의료행위의 특수성을 고려해 병원 측의 책임을 30%로 제한했다.
재판부는 병원이 사용자로서, F씨와 G씨가 공동불법행위자로서 공동 책임이 있다고 판단하고, A군에게 총 6억 4239만여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중 6억 239만여 원은 재산상 손해, 4천만 원은 위자료이며, A군의 부모에게는 각 500만 원의 위자료를 인정했다.
이번 판결은 분만 중 발생한 저산소성 손상에 대해 의료진의 감시 의무와 신속한 조치 의무가 법적으로 인정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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