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 뱅크
게티이미지 뱅크

[팜뉴스=우정민 기자] 서울행정법원 제14부는 지난달 29일, 유통기한이 지난 한약을 환자에게 처방했다는 이유로 3개월 면허정지 처분을 받은 한의사의 손을 들어줬다(2024구합61*17). 재판부는 보건복지부의 처분이 단순한 부주의에서 비롯된 경미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과도하다고 판단했으며, 해당 행위가 의료인의 품위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로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2020년 12월, 한의사 A씨가 환자 C씨에게 두통 치료를 위해 제약회사가 제조한 의약품 ‘D’ 3일분(총 9포)을 처방하면서 시작됐다. 귀가한 환자는 약의 유통기한이 두 달 전인 2020년 10월에 이미 만료된 사실을 확인하고 곧바로 노원구보건소에 신고했다. 해당 ‘D’는 A씨가 2020년 5월 6일 E㈜에서 구매한 것으로, 함께 구매한 다른 약들은 유통기한이 2~3년 남아 있었던 반면, ‘D’만은 5개월밖에 남지 않은 상태로 공급된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보건소 통보를 받고서야 유통기한 경과 사실을 인지했다. 노원구보건소장은 2021년 1월 A씨 한의원에 현장점검을 실시하고, 2021년 2월 의료법 제36조 제8호 위반을 이유로 시정명령을 내렸다. 이후 보건소는 A씨의 위반이 의료법 제66조 제1항 제1호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며 보건복지부에 행정처분을 의뢰했다. 보건복지부장관은 이를 의료인의 품위를 심하게 손상시키는 행위로 판단해 2023년 7월 A씨에게 한의사 면허 자격정지 3개월 처분을 내렸다.

보건복지부는 유통기한이 지난 의약품을 사용한 행위가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상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해당해 자격정지 3개월 처분이 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A씨는 고의가 아닌 간호조무사의 단순 부주의로 발생한 일이며, 유통기한이 지난 약도 3일분에 불과했고, 이를 즉시 시정했다며, 3개월 자격정지 처분은 비례 원칙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A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보건복지부장관의 처분을 취소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위반행위가 보건복지부의 주장처럼 ‘의료인의 품위를 심하게 손상시키는 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A씨가 비용 절감을 위해 고의로 유통기한 경과 약을 처방한 것이 아니라, 간호조무사의 단순 부주의로 발생한 것으로 봤다. 또한 환자에게 처방된 약이 3일분에 불과했고, A씨가 위반 사실을 인지한 직후 제품을 교환하고 반품 처리하는 등 즉시 시정 조치를 취한 점을 강조했다.

재판부는 이런 경미한 위반에 한의사 면허 자격정지 3개월은 비례의 원칙에 어긋나는 과도한 처분이라고 지적했다. 이 사건 행위에 대해 자격정지 1개월도 과중하며, 15일 정도라야 수긍할 여지가 있다고 언급했다. 재판부는 의료법 제66조 제1항 제1호의 ‘의료인의 품위를 심하게 손상시키는 행위’는 국가공무원법상 품위유지의무 보다 엄격하게 해석돼야 한다고 봤다. 특히 시행령에서 열거한 ‘비도덕적 진료행위’는 단순 과실이 아니라 고의적 윤리 위반, 즉 중대한 비도덕적 진료행위를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따라서 A씨의 행위는 단순 부주의에 따른 경미한 위반으로, 중대한 비도덕적 의료행위나 품위 손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위반 행위는 의료법 제36조 제8호 및 시행규칙 제39조의3 제1호(유효기한 경과 의약품 진열·사용 금지) 위반이며, 이에 대해서는 시정명령 불이행 시 업무정지 15일 처분 등 별도 규정이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일회용 주사기 재사용 사건을 계기로 해당 조항이 신설된 입법 취지를 고려할 때, 기존의 불명확한 ‘비도덕적 진료행위’ 규정보다 신설 규정을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봤다. 이미 노원구보건소장이 시정명령을 내린 상황에서 추가적 자격정지 처분은 불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결국 서울행정법원은 보건복지부장관의 처분이 위법하다고 판단해 A씨의 청구를 받아들였으며, 소송비용은 보건복지부장관이 부담하라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은 단순한 과실에 대한 과도한 제재가 정당한지를 따져본 사례로, 위반 경위와 사후 조치의 적절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판단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이 시각 추천뉴스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