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뉴스=우정민 기자] 의료계는 필수의료 기피 현상의 주된 원인으로 ‘낮은 의료 수가’ (45.4%), ‘의료 사고에 대한 법적 보호 부재’ (36.0%), ‘과도한 업무 부담’ (7.9%)을 꼽았다. 이는 의사 수 확대보다 해당 분야의 수가 합리화, 근무 여건 개선, 의료 사고에 대한 법적 부담 완화 등이 우선돼야 한다는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 응급실 뺑뺑이 사태 해결 방안으로는 경증환자 응급실 이용 제한(36.2%), 응급환자 분류 및 후송체계 강화(27.5%), 의료전달체계 확립(22.6%) 등이 제시됐다. 소아과 오픈런 사태 해결 방안으로는 소아청소년과 의원 운영 지원(47.2%), 소비자 이용 행태 개선 캠페인(14.0%) 등이 꼽혔다.
의료계는 의대 정원 확대에 앞서 실효성 있는 제도적 대안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가장 우선적으로 제시되는 방안은 ‘임상연수의 제도 도입’이다. 이는 일본 등 일부 국가처럼 의과대학 졸업 후 일정 기간 임상연수를 마친 경우에만 개원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전문성과 임상경험을 갖춘 의료 인력을 양성하겠다는 취지다.
또한 교육과 수련 단계에서 필수의료 관련 교육을 강화하자는 의견도 뒤따랐다.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체계적 교육과 수련 기회를 확대함으로써 해당 분야에 대한 관심과 진입을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입시 단계에서의 개선도 언급됐다. 지역 의료 인력 확충을 위해 현행 지역인재 전형의 비율을 높이자는 방안으로, 지방 의대의 지역정착률을 제고할 수 있는 방안으로 평가된다.
이와 함께 의료계는 수가 체계 전반에 대한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취약지에 대한 인센티브 확대와 처우 개선, 수가의 정상화 및 현실화 없이는 필수의료 기피 현상이 해소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세계보건기구(WHO) 또한 의료 인력 분포의 불균형 해소를 위해 교육, 재정적 보상, 직업 전문성 및 개인 개발 지원 등 다양한 방법을 권고하며, 특히 ‘법적 제도를 통한 의무 근무’는 단기 해결책일 수 있으나 적절한 보상과 근무 여건이 전제돼야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조건부 권고사항’으로 분류한다. 국내 간호사 수 확대 정책이나 군위탁 장학생 제도도 인력난을 해결하지 못하고 실패한 경험이 있다. 이는 전문직의 수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근무하고 싶은 환경이 조성되지 않으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의사 수급 추계는 단순한 필요 기반의 계산을 넘어 보다 정교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장래 인구 구조, 고령 인구 비중, 의료 이용률, 의사의 평균 근무 일수, 1인당 진료 환자 수 등 다양한 수요·공급 요인뿐 아니라, 과학기술 발전과 환자 선호 변화, 의료 비용 같은 경제학적 요소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 전문가의 판단이 반영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현재 한국의 의료 환경에서는 의사 부족을 단정할 수 있는 뚜렷한 지표가 없다는 분석도 나왔다. 당일 예약 외래 환자의 평균 대기 시간이 20분 내외이며, 입원 진료를 예약 없이 바로 받은 환자의 비율이 45%에 달하는 점이 근거로 제시됐다. 또한 우리나라의 인구 1,000명당 병상 수는 12.4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약 2.5배에 이르러 병상 공급 자체는 과잉 상태에 가깝다는 평가도 함께 제시됐다(박윤형, ‘정부의 공공의료 정책에 대한 검토와 대안 모색’, 순천향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2020.).
나아가 인공지능(AI) 기술 발전, 원격 진료, 디지털화 등을 통해 미래 의료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으며, 이는 의료비 절감과 정밀 의료 확대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메티큘러스 리서치(Meticulous Research)의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의료 인공지능 시장 규모는 2031년 1,764억 달러(약 244조 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러한 기술 발전은 의료 인력 수급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단순한 의사 수 확대 외에 기술적 변화를 고려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의료 인력 정책은 지역 및 필수의료 문제 해결이라는 정부의 목표와 의료계의 현실 인식 및 우려 사항 사이의 복잡한 인식 차이를 보여준다. 공공의대 설립과 같은 정책은 막대한 재원(국립중앙의료원 현대화 사업에만 2조 1천억 원 예상)이 소요되며, 기존 의과대학의 교육 질을 담보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공공의료 강화를 명분으로 일반 의사와 별도로 ‘공공의사’를 양성하는 구조가 정착될 경우, 기존 의사들의 공공의료 참여 의지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공공의료는 공공의대 출신이 담당한다’는 인식이 고착되면, 민간 의료진이 공공의료 영역에 참여할 명분과 동기를 잃게 될 수 있다는 우려다(한희철, ‘우리나라 공공의료 강화를 위해 공공의대는 꼭 필요한가?: 누가, 왜 공공의대를 만들려 하는가?’,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생리학교실·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2022.).
공중보건의사 파견에서도 드러나듯이, 강제로 일정 기간 복무하게 하는 제도는 실제로 효과가 크지 않고, 복무하는 사람에게 지나친 부담을 줄 수 있어 기대한 만큼의 결과를 얻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이는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근무 환경 개선과 동기 부여가 선행돼야 함을 시사한다.
따라서 각 정책의 실효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의료계의 자발적 참여와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한 다각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는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리거나 특정 기관을 신설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나라 보건의료 시스템 전반의 지속 가능하고 균형 잡힌 발전을 위한 중요한 과정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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