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뉴스=김민건 기자] 45세의 한 여성이 한 달 간 두통과 우울증에 시달렸다. 스트레스가 많은 상태였고 소변이 잘 나오지 않았다. 이 여성은 어느날 앞이 보이지 않았다. 10일 후에는 하반신 마비가 왔고 증상이 심해져 나중에 호흡조차 힘들었다. 그로부터 1개월 뒤 사망했다. 여성을 진료한 의사는 '신경병리학적으로 시신경염과 척수염이 아주 심한 탈수초화와 괴사가 있었다'고 적었다. 1894년 프랑스 의사 유진 데빅(Eugene Devic)이 기술한 환자의 이야기다.

유진 데빅(Eugene Devic)과 첫 번째 시신경 척수염 범주질환 환자 사례
유진 데빅(Eugene Devic)과 첫 번째 시신경 척수염 범주질환 환자 사례

 

현재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한 30대 여성도 어느날 갑자기 심한 구토와 구역질, 딸꾹질을 겪었다. 일주일 후 저절로 증상이 사라졌지만 두 달 뒤 한쪽 눈이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1800년대 여성 환자와 동일한 증상을 겪었다.

이 질환은 과거 데빅병으로 불리던 시신경 척수염 범주질환(Neuromyelitis Optica Spectrum Disorder, NMOSD)이다. 국내에서 등록된 환자는 1000여명이다.

그간 시신경 척수염 범주질환은 치료 옵션이 많지 않았다. 면역억제제와 경구 스테로이드가 유일한 치료제였고 여기에 몇몇 표적치료제가 등장했지만 치명적인 재발을 막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단 한 번 재발로 영구적인 장애를 얻을 수 있는 질환인데 환자 10명 중 9명이 치명적 재발 위험이 매우 높다. 환자들은 언제 재발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살고 있다.

장기적으로 재발을 막을 치료적 옵션이 절실한 가운데 새로운 치료 기회가 열렸다. 지난 2021년 국내 허가된 아스트라제네카 솔리리스(에쿨리주맙)가 30개월 만에 급여 확대 적용을 받아 올해 4월 1일부터 건강보험 처방이 가능해지면서다. 솔리리스는 C5 보체억제제로 FDA와 국내에서 NMOSD 치료 목적으로 허가된 첫 번째 재발 방지 치료제다. 

임상을 통해 49주간 98% 환자에서 무재발을 확인하고, 이러한 효과는 3년 이상 지속됨으로써 재발 없는 일상을 살아갈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기존에 맙테라(리툭시맙) 또는 엔스프링(사트랄리주맙)에 효과가 없는 환자에서 혜택을 기대할 수 있다. 

김호진 국립암센터 신경과 교수는 7일 솔리리스 급여 확대 기념 간담회에서 "시신경 척수염 범주질환은 조기 진단과 재발 방지 중심의 적극적인 치료를 해야 한다"며 솔리리스와 엔스프링 치료제 급여 접근성 개선을 강조했다.  팜뉴스는 시신경 척수염 범주질환에서 왜 조기 진단과 재발 방지가 중요한지 전한다.

김호진 국립암센터 신경과 교수
김호진 국립암센터 신경과 교수

 

▷한 번 입은 손상 돌이킬 수 없어, 시신경 척수염 범주질환의 무서움

시신경 척수염 범주질환은 눈과 뇌의 시신경과 척수에 염증이 생기는 질환이다. 즉, 우리 몸의 중추신경계를 침범하는 대표적인 자가면역질환으로 심각하고 비가역적인 장애를 가져온다. 특징적으로 시신경을 손상시켜 실명을 일으키고, 사지 운동과 감각을 담당하는 척수를 침범해 발생하는 하반신 마비가 있다. 또 뇌를 침범해 다양한 신경 증상을 유발하면서 '시신경 척수염 범주질환'으로 진단하고 있다.  

이 질환의 무서운 점은 신경계 증상이 악화와 재발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첫 진단 1년 이내 60%, 3년 이내 90%가 재발한다. 첫 발병 시 심한 이상 증상이 있을 확률은 45%이며 이때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심각한 후유 장애를 겪는 환자는 10%, 신경학적인 이상이 발생하는 경우도 45%에 달한다"고 말했다. 특히 "치료하지 않으면 5년 이내 50%가 휠체어를 타거나 시력 소실을 겪기 때문에 얼마나 빨리 진단해서 제대로 치료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에서는 시신경 척수염 범주질환 재발 환자는 그렇지 않은 경우와 비교해 의료비 지출이 4배 높고, 입원 또는 응급실 방문도 50~60%로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나고 있다. 동반질환 부담도 크다.

치료 목표는 크게 두 가지로 잡는다. 신경계 회복을 돕는 급성기 치료와 근본적으로 재발을 막는 장기 면역억제 치료다. 급성기 치료는 급한 불을 소화기로 끄는 식의 치료다. 증상을 완화해 영구 장애를 막는 방법이다. 대표적으로 고용량 스테로이드를 3~5일간 사용한다. 심한 두드러기나 구안와사 같은 말초신경계 이상 증상에 16mg의 스테로이드를 쓴다. 시신경 척수염 범주질환에는 1000mg을 사용한다. 김 교수는 "폭탄처럼 스테로이드를 쏟아부어도 치료에 반응이 없는 환자가 많다"고 했다. 이 경우 항체를 교환하는 혈장교환술 또는 정맥 내 면역글로불린 치료를 하지만 현실적으로 쉬운 치료가 아니다. 

그 이후 장기 면역억제 치료에 들어가야 한다. 아자티오프린, 마이코페놀레이트 모페틸, B세포를 표적으로 하는 맙테라, 인터루킨-6(IL-6)를 표적하는 토실리주맙 등을 오프라벨(허가 외 사용 약제)로 인정 비급여 처방하는 방법이다. 

최근에 등장한 치료제들이 아쿠아포린4라는 수분 통로를 표적하는 항체 치료제다. 솔리리스, 엔스프링, 업리즈나(이네빌리주맙)가 FDA와 식약처에서 허가됐으며 국내 건보 급여를 적용받은 것은 솔리리스(2024년 4월 1일자)와 엔스프링(2023년 12월 1일자) 뿐이다. 

솔리리스의 급여 조건을 보면 아쿠아포린-4 항체 양성인 만 18세 이상 환자 중 투여 시점에 확장 장애 상태 척도(Extended Disability Status Scale, EDSS)  점수가 7점 이하면서 최근 1년 이내 최소 2회의 증상 재발 또는 최근 2년 이내 최소 3회(최근 1년 이내 1회 포함) 재발이 발생한 경우, 맙테라 또는 엔스프링 급여 기준에 적합해 3개월 이상 해당 약제 중 하나를 사용했음에도 재발이 발생하거나 부작용으로 투여를 지속할 수 없는 경우 급여 처방이 가능하다.

이와 같은 시신경 척수염 범주질환 급여가 현재 치료 상황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게 김 교수 주장이다. 그는 "현재 솔리리스와 엔스프링 급여 조건은 재발을 여러차례 겪어야만 하는데 이 질환은 한 번 증상을 겪으면 비가역적이기 때문에 재발 방지 효과가 높은 치료제 접근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재발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경제적 부담을 감수하면서 맙테라를 비급여로 치료하는 환자들은 급여 대상에 제외되는 등 한계도 있다"고 덧붙였다.

▷첫 재발 방지 치료제 솔리리스, 94% 감소 효과...급여 기준 바꿔야

시신경 척수염 범주질환은 한 번 증상이 나타나면 비가역적인 실명과 신체 마비를 가져오기 때문에 최대한 재발을 예방하는 게 중요하다는 게 김 교수가 간담회 내내 강조한 내용이다.

솔리리스는 FDA와 국내 허가 근거가 된 임상 'PREVENT'를 보면 치료 48주차 98%의 무재발률을 확인하고, PREVENT 확장 연구에서 임상 197주차(3.7년) 94.4%의 환자가 무재발률을 보여 높은 장기 효과와 안전성을 나타냈다.

PREVENT 연구
PREVENT 연구

 

PREVENT 연구는 아쿠아포린4 항체 활성도가 높은 환자만 모아서 1년에 최소 2회 이상 재발하거나 2년 이내 3회 재발한 환자만 모았다. 상태가 좋지 않은 장애 척도가 높은 환자도 포함해 2대 1 비율로 연구했는데 94%의 재발 감소 효과를 보인 것은 의미가 있다는 게 김 교수 이야기다.

그는 "자가면역질환은 장기 효과와 안전성이 중요한데 144주 시점에서 환자 96%가 전혀 재발을 경험하지 않았다. 환자들이 재발 없는 세상을 볼 수 있는 기회가 가장 높은 치료제다"고 말했다.

앞서 사례로 언급된 국내 30대 여성도 한쪽 눈이 보이지 않았고 고용량 스테로이드에도 회복할 수 없었다. 7개월 뒤 심각한 하지 마비가 찾아왔으며 척수에 광범위한 염증이 생겨 완전 마비로 진행했다. 당시 장애 척도는 8.5점으로 침대에 누워서 혼자서는 일상생활이 불가한 상태가 됐다. 이후 혈장교환술로 운동 장애는 회복했지만 여전히 시각 장애는 남았다. 

국내 30대 여성 사례
국내 30대 여성 사례

 

당시 사용한 약제가 아자티오프린과 경구 스테로이드였는데 효과가 떨어지는 약을 사용했기에 다시 척수염이 재발하면서 증상이 더욱 심해졌다. 감각 증상 회복이 느려졌고 배뇨나 배변을 보기도 어려웠다. 또 이불에 피부가 스치거나 에어컨 바람이 닿아도 아픔을 느꼈다. 결국 짧은 기간 4번의 재발을 겪고 김 교수 클리닉을 찾아왔고 솔리리스를 사용하면서 완전한 회복은 어렵지만 재발 걱정을 덜게 됐다는 것이다.

또 다른 60대 여성도 완전한 실명을 앞두고 있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앞으로 하지마비 등 증상을 겪을 수 있다. 

김 교수는 "앞으로 이러한 이들을 없애기 위해서는 솔리리스와 엔프리스 급여 인정 기준에서 '맙테라를 먼저 써야 한다는 문구'를 바꿔야 한다. 약제 급여 적용 순서대로 쓰지 않으면 솔리리스와 엔스프링을 급여 처방으로 사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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