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뉴스=최선재 기자] 국내 제약사들이 신약 개발을 향한 질주를 이어가는 가운데 업계에서 '룬샷'이란 제목의 책이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룬샷'이 스타틴 계열 약물 발견의 선구자 '엔도 아키라'를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엔도 아키라는 어떤 사람일까. 업계가 엔도 아키라를 주목하는 이유가 뭘까. '룬샷'의 저자 사피 파갈(바이오테크 창업자)은 엔도 아키라가 '세 번의 죽음'을 이겨냈기 때문에 세계 최초로 스타틴 약물이 탄생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팜뉴스가 책 원문을 토대로, 업계에 시사하는 메시지를 조명해봤다. 

게티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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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룬샷이란? 미친 사람 취급 받는 아이디어 

가장 중요한 획기적인 아이디어는 룬샷으로부터 나온다. 룬샷은 종종 그 주창자가 '미친 자' 취급을 받는, 많은 이들이 무시하는 아이디어다. 하지만 언뜻 미친 것처럼 보이는 아이디어는 전쟁의 판도를 바꾸고 의학의 패러다임을 혁신하고 업계를 뒤흔드는 전략으로 탈바꿈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초기에는 룬샷을 환영하는 이들이 없다는 점이다. 중앙 권력이 거기에 각종 수단과 돈을 쏟아부으며 레드 카펫을 깔고 팡파르를 울리는 경우도 거의 없다. 아이디어는 놀랄 만큼 위태로운 처지에 있다. 심지어 회의주의와 불확실성이라는 기나긴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 부서지고 방치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사피 파갈은 제대로 키운 룬샷이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고 인터넷, 반도체, GPS, 3D 그래픽은 물론 역사를 바꾼 의약품 개발의 토대가 됐다고 강조했다. 

특히 20세기 최고의 의학적 돌파구의 하나인 스타틴 계열 약물을 개발한 엔도 아키라 사례를 소개하면서 신약의 룬샷은 '세 번의 죽음'을 이겨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1941년 진주만 습격 후 제2차 세계 대전 선전포고 명령에 서명하는 루스벨트.. 위키 백과 캡처
1941년 진주만 습격 후 제2차 세계 대전 선전포고 명령에 서명하는 루스벨트.. 위키 백과 캡처

# 전쟁의 시대, 미국의 대통령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미국인이 심장질환으로 사망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미국의 프랭클린 루즈벨트 전 대통령이다. 그가 사망한 사건은 심장 질환에 대한 미국 정부의 연구 지원을 강화하는 신호탄으로 작용했다. 1948년 트루먼 대통령은 국립심장연구소 설립 법안에 서명했고 해당 법안에 '프레이밍엄 심장조사'에 대한 재정 지원 내용도 포함됐다. 

그 결과 혈중 콜레스테롤 농도가 높으면 심장마비나 뇌졸중 위험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미국에서 심장질환에 따른 사망률은 20세기 초부터 서서히 증가해 1960년대 말에 최고점을 찍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심장질환 사망률은 대략 75% 감소했고 지난 50년간 1000만명이 넘는 목숨을 구했다. 여기에는 식이요법이나 운동, 흡연 감소와 같은 생활 양식의 변화도 한몫했다. 

나머지 많은 부분은 버섯 광이자 미생물학자였던 일본인이 도쿄에 있는 어느 곡물 창고에서 발견한 청록색 곰팡이로부터 분리한 약물 덕분이다. 그 일본인의 이름은 엔도 아키라다. 1966년 일본 북부 어느 산골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서른 세 살 일본인 과학자가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는 새로운 분야에 관해 더 많은 것을 배우겠다는 결의에 차있었다. 일본의 대기업 산쿄(2005년 다이이찌제약과 산쿄 합병)의 식품가공 사업부 연구원 출신 엔도 아키라는 콜레스테롤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뉴욕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의과대학의 실험실에 들어갔다. 

엔도 아키라. 위키백과 캡처
엔도 아키라. 위키백과 캡처

# 사상 최초로 '페니킬리움 시트리눔' 발견

엔도가 미국에 도착했을 무렵 식단이 심장질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각광을 받고 있었다. <타임>은 식단과 건강의 문제를 '가장 꽉 쥐고 있는' 미네소타 대학교의 과학자 앤설 키스가 내놓은 새로운 연구 결과를 표제로 다루었다. 7개국 1만명을 조사한 그의 유명한 연구는 혈중 콜레스테롤이 상승한 것과 심장질환이 상관관계가 있음을 확인해주었다.

하지만 키스는 더 나아가 식단에 관해 암시했다. 그는 지방섭취, 특히 포화지방 섭취가 문제라고 했다. 키스는 또 일본에 사는 일본인과 하와이로 이주한 일본인의 심장질환 발생률을 비교했다. 서구식 식생활을 하는 하와이 거주 일본인들은 일본에 계속 살아온 일본인 보다 콜레스테롤 농도와 심장질환 발생률이 훨씬 더 높았다. 

엔도 아키라는 뉴욕에서 이를 직접 눈으로 보며 그 연관성을 직감했다. 엔도는 미국인들의 심장질환 발생률이 높은 것에 한번 놀라고 미국의 식단이 기름진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키스와 마찬가지로 엔도는 일본인들의 식습관이 더 서구화된다면 심장질환도 흔해질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콜레스테롤을 낮출 수 있는 약을 찾아내겠다고 결심하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엔도는 특별한 무기를 사용하는 킬러가 필요했다. 정교하게 콜레스테롤 생산을 차단해줄 칼 말이다. 살인범이 사용한 흉기를 알아내기 위해 법의학자들이 특별한 도구를 사용하듯이, 엔도는 특별한 도구가 필요했다. 법의학자들의 것과 유사하지만 100만배 더 작은 도구가 필요했다. 엔도는 예술의 경지에 이른 미세한 탐지 시스템을 구축하고 가다듬느라 2년을 보냈다.

1971년 4월 엔도는 마침내 균류를 걸러내기 시작했다. 그는 6000가지가 넘는 균류를 시험했다. 1972년 여름 어느 샘플이 엔도가 만든 시스템에 불을 밝혔다. 신약개발자들이 말하는 당첨(hit)이었다. 교토의 어느 곡물 창고에 있는 쌀에서 발견된 청록색 곰팡이는 콜레스테롤을 만드는 핵심 효소를 차단했다. 

그것이 바로 '페니킬리움 시트리눔'이었다. 페니실린을 생산하는 곰팡이와 같은 속이지만 종이 달랐다. 1년 뒤 엔도는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분자를 추출해 'ml-236b'라고 이름 붙였다. 바로 메바스타틴이다.

# 텅 빈 회의실, 메바스타틴(ml-236b) '첫번째 죽음'을 맞다 

하지만 엔도가 일본에서 균류를 걸러내기 시작했을 때 미국에서는 대단한 열기로 시작된 콜레스테롤 저하 효과 연구의 임상 시험 결과가 나오고 있었다. 식단 조절은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듯했다. 심지어 콜레스테롤 저하 약물의 효과를 평가하려는 임상시험들은 식단 연구보다 결과가 나빴다. 

가장 널리 조사된 세 가지의 약은 임상에서 전반적 사망률을 오히려 높이는 것으로 드러났다. 백내장을 유발하는 게 분명한 약도 있었다. 세포가 정상적으로 기능하기 위해 콜레스테롤이 필요하기 때문에 저명한 과학 평론들은 상식적 생물학을 동원해 실패를 설명했다. 학계는 흥미를 잃었고 기업들은 대부분 포기했다. 

그즈음 엔도 아키라는 메바스타틴 효과가 유망해 보인다는 결과를 어느 학회에서 발표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콜레스테롤을 낮춘다는 아이디어 자체를 일축해버리는 분위기였다. 그의 발표를 들으러 온 사람은 거의 없었다. 엔도는 실의에 차서 회의장을 떠났다.

# 비임상 실험 실패 '두번째 죽음'에 직면하다 

산쿄에 있는 엔도의 팀은 경영진과 동료들의 엄청난 회의적 태도에 직면했다. 최악의 경우를 예상한 엔도는 자신이 해고되면 아내 수입만으로 가족을 부양할 수 있을지를 아내와 상의까지 했다. 엔도는 요청이 있으면 언제든 내놓으려고 사직서를 한 장 써서 품 안에 넣고 다녔다. 

하지만 놀랍게도 아무도 엔도에게 사직을 요구하지 않았다. 엔도는 앞서 여러 성공(흰빛썩음병 병원균 발견)으로 호의를 사두었고 상사도 엔도의 방패막이가 됐다.

메바스타틴은 중요 단계에 접어들었다. 살아있는 동물에 대한 시험이었다. 

최초의 실험 대상이 되는 영광은 보통 설치류에게 돌아간다. 팀원들은 쥐에게 약을 주고 떨리는 마음으로 지켜보았는데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신약개발이란 세상에서, 표준적 동물 연구가 실패하면 어김없이 프로젝트가 중단된다. 한참 지나 엔도는 "그런 결과를 가지고는 산코에있는 생물학자에게 약물 평가를 계속하자고 설득할 희망이 없었다"고 했다. 

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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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닭이 구원한 신약, 두 번째 죽음 돌파 

다행히 엔도는 회사에 간청해서 왜 자신의 약이 효과가 없는지 알아낼 시간을 벌었다. 연구소에서 가까운 어느 술집에서 엔도는 기타노 노리토시와 마주쳤다. 기타노는 회사에서 닭을 연구하는 부서에 있었다. 기타노는 다음 달에 자신의 연구 프로젝트가 끝나면 닭들이 아주 맛있는 닭꼬치로 변신할 것이라고 했다.

그때 문득 엔도는 어쩌면 닭들은 혈중 콜레스테롤 농도가 높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걀에 콜레스테롤이 그토록 많으니 말이다. 콜레스테롤 수준이 높은 데서 시작하면 자신의 약이 효과가 있는지 알아내기도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닭들에게 메바스타틴을 시험했고 결과는 눈부셨다. 메바스타틴은 콜레스테롤 거의 절반 수준으로, 트리글리세리드(중성지방의 일종)는 그보다 더 많이 감소시켰다. 부작용도 없었다. 

한참 후에 과학자들은 쥐의 혈액에는 HDL(좋은 콜레스테롤)이 대부분이고 심장질환을 일으키는 LDL(나쁜 콜레스테롤)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LDL 만을 감소시키는 스타틴 계열의 약을 평가하기에 쥐는 좋은 선택지가 아니었던 셈이다. 

골드 스타인 위키백과 캡처
골드 스타인 위키백과 캡처

# 수십 년 전이지만...오픈 이노베이션 꽃을 피우다

엔도가 자신의 약이 닭은 물론 개와 원숭이에게도 효과가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즈음, 댈러스의 텍사스 대학교에서는 의사이자 연구자인 두 과학자가 머지않아 놀라운 과학적 합주가 될 작업을 시작했다.1966년 보스턴에 있는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골드스타인은 반복적으로 심장마비를 겪어온 가족성 고콜레스테롤 혈증 진단을 받은 남매를 만났다. 

남매는 혈중 콜 농도가 정상 수준보다 열배나 높았고 아동기 초반부터 자주 심장마비를 겪었다. 브라운과 골드스타인은 함께 치료법을 찾아보기로 했다.1973년 두사람은 공동으로 첫 논문을 발표했다. 

텍세스에 온 브라운과 스타인은 자신들의 논문을 인용한 글이 발표되면 알림이 오는 컴퓨터 기반 서비스에 등록했다. 1976년 도쿄에 있는 엔도 아키라가 일본의 어느 과학 저널에 두 사람의 논문 결과를 논평하는 글을 발표했다고 일러주었다. 논문에는 엔도가 메바스타틴을 발견했다고 돼있었다. 골드스타인은 엔도에게 메바스타틴 샘플을 요청하는 편지를 썼고 엔도는 즉시 샘플을 보냈다. 

1977년 일본에 있던 의사 야마모토 아키라 역시 엔도 연구에 관한 글을 읽었다. 야마모토는 엔도에게 전화를 걸어 중증 가족성 고콜레스테롤 혈증 18살 소녀에 관해 얘기했다. 

소녀 상태는 심각했다. 브라운과 스타인의 지지에 힘을 얻은 엔도는 자신의 약을 시험해보기로 했다. 1978년 2월 2일 훗날 문헌을 통해 S.S.라는 약어로만 알려질 이 소녀는 스타틴 계열 약으로 치료받는 첫 번째 환자가 된다. 임상 2주차에 엔도에게 야마모토에게도 전화가 걸려왔다. 콜레스테롤 30% 감소했다고 했다. 

약이 효과가 있었다. 임상은 성공했고 메타스타틴은 위험하리만치 높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가진 환자들에게 큰 희망이 됐다. 산쿄는 공식 임상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1979년이 되자 임상은 12곳 병원에서 진행하는 연구로 확대했다.

# 발암 부작용? 세 번째 죽음을 맞다

메바스타틴의 성과는 전 세계의 관심을 모았다. 1980년 5월 이탈리아에서 메바스타틴에 관한 특별 워크샵이 열렸다. 메바스타틴으로 환자를 치료중이던 일본이 의사 8명이 참석해 발표했다.

엔도는 본인의 신약 프로젝트가 임상을 진행하고 당국의 승인 가능한 의사들의 손에 들어간 점에 만족했다. 하지만 메바스타틴에 대한 열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워크샵 이후 3달 뒤 산쿄에서 진행된 안전성 연구는 충격적인 결과를 알렸다. 고용량 메바스타틴이 개에게 암을 유발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이었다. 

산쿄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고 임상과 메바스타틴 연구를 중단했다. 약의 부작용으로 암이 유발된다는 소문은 빠르게 확산됐다. 다른 기업이나 연구소도 스타틴 연구를 접었다. 엔도는 개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 문제가 없었을지 의심스러웠지만 멀리서 자신의 프로그램이 주저앉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았다. 

# 머크와 엔도의 협업 

스타틴은 그렇게 끝날 수 있었다. 하지만 비슷한 연구프로그램에서 놀라운 발견이 일어났다. 앞서 2년 전 대형 제약사 머크 역시 균류를 검토했고 역시나 엔도가 발견한 것과 똑같은 효소 억제제를 발견했고 역시나 이 물질이 콜레스테롤을 낮추는데 효과가 좋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놀랍게도 머크에서 발견한 물질은 엔도의 것과 원자가 네 개밖에 다르지 않았다. 머크의 과학자들은 프로그램을 시작한지 며칠만인 1978년 11월에 약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수년을 투자했던 엔도와 대조적이었다. 당시 머크 연구소장 바젤로스는 갑작스러운 발견이 믿기지 않았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발견이 있기 2년 전 머크는 엔도 팀에 접근해 경쟁이 아닌 협업을 제안했다. 

머크는 엔도팀에 최고 기밀데이터를 보여달라고 요청했고 1966년 봄부터 1968년 가을까지 이어진 머크의 문서로 된 확약에 엔도의 팀은 산쿄의 승인을 받아 시험할 수 있는 엔도의 신약 샘플만이 아니라 중요한 실험의 공통결과까지 모두 제공했다. 

거기에는 약의 생리학적 약리적 효능과 독성이 포함돼어 있었으니 돈으로 값을 매길 수 없는 정보였다. 이들 문서를 보면 엔도와 팀원들이 뉴저지주에 있는 머크 실험실을, 머크 과학자들은 일본을 방문했고 이 약에 관해 머크 과학자들이 질문한 상세내용에 엔도의 팀이 답변해준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2년 뒤에 머크가 거의 동일한 약을 갑작스럽게 발견한 것이 아니었다. 

#  거짓 양성 반응으로 판명, 스타틴 '날개'를 달다 

산쿄가 프로그램을 종료했을 당시 바젤로스도 산쿄 약이 개들에게 암을 유발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 두 물질의 유사함을 알고 있던 바젤로스 역시 머크 프로그램을 종료했다. 

하지만 소문의 결과는 당시에도 그 이후의 많은 연구에서도 단 한번도 발표되거나 확인되지 않았다. 도쿄 농공대학교에 자리를 잡고 있던 엔도는 의심이 들어 산코에 데이터를 공유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산쿄는 거절했다. 텍사스 대학교의 브라운과 골드스타인도 결과를 의심했다. 

이들은 결국 약을 초고농도로 개에게 사용하면 암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암이 아닌 무해한 증상을 유발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거짓 양성 반응이었다. 브라운과 스타인은 몇몇 의사와 함께 FDA 지원을 받아 프로그램을 다시 시작하도록 머크를 압박했다. 

머크가 FDA가 요구한 대규모 임상을 시작한 결과는 놀라울 만큼 긍정적이었다. 엔도나 야마모토가 임상연구에서 관찰한 초기 데이터와도 일치했다. 1987년 2월 FDA 자문위는 만장일치로 첫 번째 스타틴 계열 약 승인을 권고 했다. 머크가 만든 메바코였다. 

머크와 여러 의사집단의 초기 연구는 오직 스타틴 계열 약만이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출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는 중요하고 고무적인 표지였지만 건강을 개선한다는 확정적 증거는 아니었다. 

이후 수백명의 연구자가 수십개의 임상시험을 개시했고 1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했다. 스타틴 계열 약을 20세기 최고의 의학적 돌파구 중 하나로 만들어줬다. 스타틴 계열 약은 이미 심장마비를 겪은 환자 뿐 아니라 아직 심장마비를 겪지 않았으나 그럴 위험이 있는 환자에게서 심장마비와 뇌졸중 발병률을 줄이고 생존률을 높였다. 

이것의 토대를 엔도의 메바스타틴이 제공한 것이다. 이것을 종자로 삼아 리피토 조코 크레스토 등 수많은 스타틴 계열의 약들이 나왔다. 스타틴 계열 약은 역사상 가장 널리 처방된 약물 프렌차이즈로 성장해 수백만 명의 목숨을 구해냈다. 

# 팜뉴스 에필로그 '속도'가 중요할까 오히려 '실패'도 필수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제약 바이오 업계에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글로벌 빅파마 화이자는 코로나19 백신을 11개월 만에 개발했고 수억명의 세계인들이 지금 이순간에도 백신을 맞고 있는 중이다. 화이자의 코로나19 치료제 팍스로비드 역시 단기간에 개발된 이후 전 세계 의사들이 처방중이다. 

국내 제약 업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엄청났다. 신약 개발 기간은 보통 10년~15년이 걸리는 법이지만 화이자 등 글로벌 빅파마들은 수개월 또는 1~2년 안에 거대한 프로젝트를 끝냈기 때문이다. 대다수 언론은 그런 광경을 목도한 이후 국내 제약 업계를 향해 "더 빨리 엄청난 신약을 개발하라"고 외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암울한 소식만 들리고 있다. 이곳 저곳에서 국내 제약사들의 코로나19 치료제 개발 중단 소식이 쏟아진다. 지난해 제약 바이오 기업의 기술 수출은 반토막으로 전락한 상황이다. 더욱 많은 돈을 쏟아붙고 기업들의 투자를 독려하는데도 결과는 오히려 '실패'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시선을 바꿔 수많은 실패를 '룬샷'을 키워내고 있는 과정으로 보면 어떨까. 

객관적으로 보면 실패일 수 있지만 우리나라 곳곳의 신약 개발 연구소에서 수많은 엔도 아키라들이 치열한 노력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발상을 해보자는 뜻이다.

그렇다면 제약 바이오 기업들의 실패를 마냥 실패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오하려 개별 연구자들의 실패의 족적들이 모이면서 훗날 세계 최초로 혁신 신약 개발의 주인공이 대한민국에서도 나올 수 있다. 마치 엔도 아키라의 룬샷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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