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뉴스=최선재 기자] 묘(妙)한 일이다. 예산이 쓰이지 않아 남아도는데 사업에 대한 재검토나 전면 개편은 하지 않는다. 국민 혈세가 투입된 예산이 불용되거나, 용도 외의 목적으로 매년 쓰이는데도 꼬박꼬박 예산이 편성된다. 해당 사업은 식약처 소관이며 그 이름은 ‘팜나비’다. 

“좋은 정책, 나쁜 정책, 이상한 정책이 있다면 팜나비 사업은 정말 이상한 정책이다”

최근 기자와 만난 중견 제약사 임원(RA, 제품 인허가 담당)의 말이다. 그는 “의약품 인허가와 관련해서 좋은 정책은 없어질 이유가 없다. 나쁜 정책은 시간이 지나면 문제점이 드러나기 마련이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고쳐진다. 하지만 이상한 제도는 명맥만 유지하면서 업계에 혼란을 준다. 팜나비는 그런 정책이다”고 평가했다.

‘팜나비’는 식약처가 신약, 개량신약, 희귀의약품 등 개발의 지름길을 안내하겠다는 의미를 담은 사업명이다. 

팜뉴스 취재진은 앞서 임원을 포함한 제약업계 상당수 관계자들이 팜나비 사업을 “이상한 정책” 또는 “묘한 정책”으로 표현한다는 사실을 접했다. 2014년 김승희 식약처장 재직 당시 의욕적으로 출범한 사업이지만 신약 개발을 위한 의약품 허가 및 제품화 지원 관련 상담을 해보면 “전임처장 치적 사업으로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

그렇다면 팜나비 사업이 이상한 이유는 뭘까. 취재진은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식약처 사전상담과에 “팜나비 상담 인력 예산 현황”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그 결과 팜나비 전문 상담 인력의 운영 예산이 매년 남아돌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팜뉴스 취재결과 매년 상당한 규모의 예산 불용액이 발생했다. 2017년 9000만원, 2018년 8000만원, 2019년 6000만원, 2020년 1억이 넘는 예산이 남았다. 예산이 본연의 목적대로 쓰이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애초에 예산 배정의 목적은 상담 전문 인력 운영을 위한 것이었지만 다른 목적으로 쓰인 예산도 상당했다. 

이·전용 감액 예산은 2017년 1000만원, 2018년 1800만원, 2019년 4000만원 2020년 3000만원을 기록한 것. 

당초 편성된 예산은 목적 외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국가재정법상 소관부처는 예산 집행의 신축성을 확보하기 위해 불용될 우려가 있는 예산에 대해서는 다른 사업으로 이용 또는 전용을 위해 예산액을 감액 조정할 수 있다.

식약처가 팜나비 상담 전문 인력을 위해 배정된 예산의 일부를 매년 다른 용도로 사용했다는 뜻이다. 

더욱 황당한 사실은 팜나비 사업의 총 예산이 전혀 줄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최근 5년간 팜나비 사업은 매년 약 5억 정도의 예산을 배정받았다. 2017년 팜나비 사업 총 예산은 5억 3000만원, 2018년 5억 7000만원, 2019년 5억 4000만원, 2020년과 지난해는 5억 5000만원이었다. 

이중 절반에 가까운 상담 전문 인력 예산은 오히려 늘었다. 2017년 2억 2000만원, 2018년 2억 4000만원, 2019년 2억 5000만원, 2020년 2억 5000, 2021년 2억 6000만원으로 증가해왔다. 

매년 ‘눈먼돈’이 발생하는데도 오히려 팜나비 전체 예산은 그대로 편성됐고 상담 전문 인력 총 예산도 나날이 증가한 것. 

예산 집행액 역시 지난해 반짝 늘었던 점을 제외하면 4년간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2017년 1억 6000만원, 2018년 1억 3000만원, 2019년 1억 4000만원, 2020년엔 1억 1000만원만 사용됐다. 지난해 11월 30일까지 2억 2000만원이 쓰였지만 불용액과 이·전용 예산이 또 다시 누적될 전망이다. 

예산이 제대로 쓰이지 않는 원인은 팜나비 상담 전문 인력에 대한 부실한 처우와 무관치 않다. 

팜뉴스는 지난 5일 “[단독] 신약 개발 촉진 목적 ‘팜나비’ 상담 인력...‘부실’ 처우로 ‘무더기 퇴사’ 논란”를 통해 식약처의 처우 개선 노력이 없어 인력의 수준이 떨어지고 평균 재직기간이 1~3년 안팎에 불과한 점을 지적했다. 

식약처의 부실한 처우로 상담인력이 입퇴사를 반복하면서 인력 채용에 쓰일 예산이 매년 쌓이거나 다른 목적으로 쓰이는데도 아무런 쇄신 조치를 취하지 않고 방치한 결과다.

업계에서는 ‘혈세 낭비’라는 지적까지 들린다.  

앞서의 중견 제약사 임원은 “팜나비 사업에 대한 인지도는 지극히 낮은 수준”이라며 “벤처 회사를 제외하고 규모가 있는 회사가 신약 개발을 할 때 팜나비를 통해 상담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일도 없다. 상담 인력의 전문성이 떨어져서 상담을 받아도 신뢰할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예산 현황을 보면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다"며 "처음에 시작했을 때는 온갖 생색을 냈는데 이제는 잘해봐야 본전이기 때문에 식약처 공무원들도 신경을 쓰지 않은 탓이다. 예산이 초기에 편성한 목적으로 쓰지 않을뿐더러 불용액이 많은 것은 국민 세금을 낭비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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