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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의 사진
한 장의 사진
  • 이헌구 기자
  • hglee@pharmnews.co.kr
  • 승인 2019.02.11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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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명 작가(전 한독약품 대표이사)

고양명 작가
고양명 작가

44년 전 까마득한 이야기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당시는 누가 이민을 가거나, 유학을 떠날 때, 가족이나 친지들이 김포공항 환송대로 나가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었다.

며칠 전 아들이 카톡으로 나에게 김포 공항에서 환송하고 있는 빛 바랜 사진 한 장을 보냈다.

요즘 대학생들은 기숙사 생활을 하든지 아니면 원룸에서 자취하면서 공부를 하겠지만, 우리 때는 시골에서 올라온 학생들은 주로 방을 얻어 자취하거나 아니면 학교 근처에서 하숙을 했다.

나도 형님 학교 근처인 동대문구 안암동에서 하숙을 했다. 우리 하숙집에는 고대 법대생, 상대생, 연대 의대생 그리고 나 이렇게 4명이 하숙을 하고 있었다. 내가 막내였다.

하숙집 아주머니는 작은 체구였고, 인자하신 분이셨지만 강단이 있으셨다. 우리들을 마치 자기 자식 같이 대해 주시고 특히, 내가 막내라 나를 더 챙겨주신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한참 지나서 시집간 딸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큰딸은 간호사였고 강릉에 살았다. 그리고 작은딸은 O 대를 나왔고 영어를 잘하여 우리나라에 있는 미국 은행에 다닌다고 하였다.

미국 은행에 다니는 딸에게는 어린 딸이 하나 있었다. 딸의 안부를 물어보니 “지금은 결혼하여 이태리에서 잘 살고 있다”고 한 번 놀러 가보라고 하신다.

여러 번 다년 온 곳이지만 반도의 나라 이태리는 언제 가보아도 다시 가고 싶은 나라다. 다시 여행 본능이 굼틀거린다.

지금도 자랑스러운 추억이다. 20년 전 일이다. 내가 지휘하는 전 영업〮마케팅부 직원 약 300명을 대리고 이태리 일주 여행을 했던 기억이 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했다. 우리는 5개 그룹으로 나누어 로마로 향했다.

1진은 서울 로마 직항, 2진은 서울 도교 로마행, 3진은 서울 파리 로마행, 4진은 서울 쥬리히 로마행 그리고 5진은 서울 런던 로마행 비행기를 타고 한 날에 로마의 한 호텔에 집결했다.

옛 로마군인 복장을 입은 경비들의 호위 속에 파티를 했던 옛 추억이 떠 오른다.

그 중에서도 무엇보다도 기억이 남는 것은 봄 맞이 축제중인 베네치아의 가면무도회에서 함께 어울렸던 행운은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이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붙임성이 있었나 보다. 군에 있을 때도, 사회 생활을 할 때도 가끔 하숙집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하러 갔었다. 아주머니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따님 가족이 미국으로 전근되고 나서 김포에 살 때 찾아본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 작은 따님이 얼마 전 짐 정리를 하다 환송하러 공항에 나갔을 때 찍힌 “한 장의 사진”이 다시 44년 후 우리를 맺어주는 끈이 되었다.

 

44년 전 찍었던 그 날의 사진
44년 전 찍었던 그 날의 사진

아주머니의 작은 딸을 내가 마지막 만났을 때는 코트라(KOTRA)에 근무를 하고 있었다. 코트라는 지금도 좋은 직장이지만 그 당시 선망의 기업이었다.

세상이 좁아 졌다. 지구촌이라고 한다. 페이스북이 더 좁은 세상을 만들어 주고 있다.

나는 즉시 미국으로 전화를 했다. 그리고 보이스 톡(Voice Talk)으로 자주 연락을 한다. 카카오톡의 위력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보이스 톡이 무료라 국제전화에 대한 두려움도 없다. 문명의 이기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그들 부부는 이민을 간 것이 아니었다. 귀국 명령을 받았지만, 그 당시 대한민국은 너무나도 못 살던 시절이다. 잘 사는 미국과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살기 좋은 미국 땅에 눌러 앉아 살았다고 한다.

잘사는 나라라고 하지만 이민 생활이 얼마나 어려웠을까? 나는 여러 번 미국을 여행했다. 이민생활의 어려움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다. 이민 간 부모들은 자식들을 위해 고생한다고 한다. 요즈음 세태를 보면 자식들은 그런 부모들의 마음이나 알기나 하는지?

나는 지난해 여행 중 미국에서 만난 교포 택시 기사 분의 말이 생각이 난다. 일년에 몇 십만 달러의 수업료를 내면서 고생 고생하여 공부를 시킨 딸이 연락도 자주 안 한다고 푸념을 한다. 나는 뒷 좌석에 앉아 들으면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랑은 내리 사랑이라고 하던데 라고 혼자서 독백을 했었다.

나이가 들어서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지난 해 봄학기에 서울대학교 ‘장수사회선도 최고전략과정’을 다녔다. 첫 날 첫 시간 한장의 슬라이드 때문에 “우리 손주 큰일 났네”를 책으로 썼다.

책을 쓰다 보니 우리나라의 위기는 저출산, 미래먹거리, 비만, 치매 그리고 경제 순으로 어려움이 닥칠 것이 예견되었다. 이미 저출산에 대한 대안은 제시하였다. 불철주야 저출산을 해결해보려고 뛰어 다니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할 것이다. 기사도 쓰고, 인터뷰도 하고, 강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시장님도 만나고, 국회의원도 만나고, 대통령님, 장관들에게 책도 보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내 책을 지하철에 광고도 하고 며칠 전에는 내가 유투버(You Tuber)가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할 것이다. 그러나 성공 실패는 하늘만이 알 것이다. 나는 대한민국이 아이를 낳아 키우기 좋은 나라가 될 때까지 제대로 뛰려고 한다.

성공과 실패는 나의 영역이 아니다. 하늘의 뜻을 기다릴 뿐이다. 진이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다.

미래 먹거리에 대한 책을 쓰려고 준비를 하고 있다. 책을 쓰려면 많은 경험과 관찰을 해야 한다. 세계적인 놀이동산들을 둘러볼 계획이다. 여행은 영감을 준다. 영감을 얻고 싶다. 빨리 미국으로 날아가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사이 무용담도 듣고 싶다.

“한 장의 사진”은 나의 지난 50년을 뒤 돌아 보게 하는 단초가 되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잊고 지내고 있는 인연들이 누가 있나 챙겨 봐야 하겠다. 인연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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