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경 (leeheekyoung@hotmail.com)

어릴 적 접했던 사회주의 국가 소련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어서 인지 여전히 조금은 낯설고 멀게만 느껴지는 나라, 러시아. 올해 초, 여동생 가족이 주재원으로 발령을 받아 모스크바에 가지 않았다면 나의 여행리스트에는 쉽사리 오르지 않았을 나라이다. 그런 낯선 나라에 살고 있는 동생의 안위를 살피고 정착을 도와준다는 미명 하에 이번 여름, 약 3주간 백야의 나라 러시아를 방문했다.

한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알기 위한 방법 중 하나는 그 나라의 예술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미술관을 찾는 것이다. 모스크바에 있는 트레차코프 미술관은 11세기 모자이크와 이콘부터 20세 기까지 10만 점이 넘는 러시아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어 러시아 미술사와 더불어 역사와 문화를 엿보기에 적당한 곳이다. 트레차코프 미술관은 19세기 말 러시아 최대 재벌이던 파벨트레차코프가 우연히 사들인 그림 한, 두 점에서 시작되었다.

 

 

취미로 그림을 모으던 그는 점차 러시아 회화의 매력에 빠져 전문적으로 수집하게 되었으며 화가들과 친분을 쌓은 후에는 직접 그림을 주문하거나 제목을 정해 전시회를 하기도 해 예술가들의 작품 활동에도 많은 지원을 했다. 1856년 자택에 그림 몇 점을 걸어놓으며 시작된 그의 컬렉션은 점차 방대해져 더 많은 공간이 필요하게 되었고 1904년 현재의 위치에 그림전시만을 위한 미술관이 건립되었다. 그는 시민들에게도 감상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모스크바시에 미술관 건물과 함께 전체 미술품을 기증하기도 했으며 그 이후로도 점차 소장품이 늘어나면서 증축에 증축을 거듭하여 현재 미술관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러시아를 여행하다 보면 마을 곳곳에서 둥근 지붕을 한 예쁜 성당을 볼 수 있다. 눈이 많이 내리는 러시아 기후의 특성을 고려해 건물이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둥그렇게 설계된 둥근 지붕은 러시아식 비잔틴 양식을 띠고 있다. 900년대까지만 해도 다신교를 섬기던 러시아의 슬라브 민족은 블라디미르 공후가 권력을 잡고 대공의 자리에 오르며 다른 여러 민족들을 통일하기 위해 정신적 구심점의 역할을 할 종교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블라디미르는 이에 988년 그리스 정교를 정식 국교로 지정하게 되고 이때부터 러시아에 비잔틴 문화가 도입되기 시작한다. 트레차코프에서 만나게 되는 이콘화는 당시 문맹률이 높았던 국민들에게 성경과 복음을 가르치기 위해 전파되었다. 가장 많이 사랑받는 정교회의 이콘은 어린 시절의 예수님이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와 뺨을 맞대는 모습으로 그려진 블라디미르의 성모이다.

영어로 Ivan the Terrible이라고도 불리며 러시아 역사에서 잔혹한 공포정치를 했던 이반 4세는 정치 초반기에는 개혁정책을 실행하고 몽골을 무찌르는 등의 성공적인 국가 통치를 했지만 후반기에 들어서면서부터는 폭정을 일삼으며 측근들을 제거하다가 결국에는 후계자인 아들까지 죽이게 된다. 이런 그의 포악하고 의심 많은 성격은 어렸을 때 궁정에서 겪었던 궁정 내의 암투가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Ilya Repin은 분노를 이기지 못한 채 자신이 휘두른 지팡이에 관자놀이를 맞고 쓰러져 죽은 아들을 부여잡고 있는 이반 4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는 아들을 보고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파악한 그의 눈에는 당혹감과 후회감이 가득 차 있다. 후손이 없었던 황태자의 죽음으로 인해 결국 류릭왕조는 이반 4세를 마지막으로 끝을 맺고 이후 1917년 혁명으로 니콜라이 2세가 처형 당하기 전까지 로마노프 왕조가 러시아를 다스리게 되었다. 러시아의 유명한 귀족 집안의 딸로 태어난 모로조바는 역시 귀족인 모르조프와 결혼해 부유한 생활을 했던, 지금으로 보면 상위 1%의 대귀족이었다. 그러나 짜르의 왕권강화를 둘러싸고 17 세기에 러시아에 몰아 닥친 종교적 변화과정에서 구교도를 지지 하는 운동에 참여하면서 개혁파와 왕이었던 알렉세이1세의 분노를 사 체포되게 된다. 그 당시 종교 개혁을 외치는 개혁파에서 요구했던 것은 기존에 성호를 그을 때 손가락 두 개를 이용하던 것을 세 개를 이용해 하자는 것. VasilySurikov가 그린 그림에서 검은 색 옷을 입고 양손에 수갑을 찬 상태로 수레에 끌려가면서도 결의에 찬 표정으로 손가락 두 개를 펼치고 있는 그녀가 모로조바 부인이다. 손가락을 세 개로 펴기만 하면 풀어주겠노라는 왕의 협박이 있었지만, 그녀는 뜻을 굽히지 않아 화형에 처할 위기에 처했지만 결국은 수도원에 감금되어 그곳에서 일생을 마치게 되었다고 한다. Surikov는 이 그림을 통해 짜르의 전제 정치시대에서도 뜻을 굽히지 않았던 모로조바의 정신을 통해 19세기 러시아가 처한 상황에서 민중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환기 시키고 있다.

모스크바와 함께 러시아를 대표하는 또 다른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표트르 대제에 의해 건설된 곳이다. 발트해 연안의 쓸모없는 늪지대에 대규모 토목공사를 진행해 새로운 수도를 만 든 그는 서구화 정책과 영토 확장으로 짜르 제국을 진정한 러시아 제국으로 만들었다. 그런 그도 어렸을 때는 이복누이에 의해 실권을 하고 지방으로 내려가 목수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1689년에 이복누이가 터키제국과의 전쟁에서 패하면서 귀족층 의 반발이 생기자 이를 계기로 그녀를 권력에서 몰아내고 권력 을 차지하게 된다. VasilySurikov가 그린 이 그림의 제목은 ‘친위 병 사형날의 아침’이다. 그는 이복누이의 친위대였던 스트렐치 군대의 반란을 진압하고 친위병들을 모두 사형에 처하게 되는 데 이 그림은 사형 당일 아침의 모습을 담고 있다. Surikov는 사 실적인 묘사를 위해 사형 장면을 목격했던 사람의 이야기를 참고해 그렸다고 한다. 오른편의 말위에서 냉담한 시선을 던지고 있는 사람이 표트르 대제이다. 왼편으로는 사형을 앞둔 친위대와 가족들의 참담한 모습이 그려져 있다. 흑인이었던 외조부의 영향으로 가무잡잡한 피부에 이마 위로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을 지닌 이 청년의 이름은 푸쉬킨이다. 문학에 문외한이더라도 소싯적 누구나 한 번쯤은 나직이 읊어 보았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하지말라’라 는 시의 작가 푸쉬킨. 푸쉬킨 미술관을 비롯해 푸쉬킨 박물관, 푸쉬킨 기념관, 푸쉬킨 문학카페 등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그를 기리는 기념관이 유독 많다. ‘푸쉬킨 이전에 러시아는 없다’라고 할 정도로 러시아에서 대문호이자 국민작가로 인정받는 그는 러시아어의 아름다움을 이용해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글을 쓴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부인의 명예를 위해 치른 결투에서 총상을 입고 37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해야 했던 그.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며 여전히 그는 읊조렸을까. ‘슬픈 날엔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이 오고 말리니.’ 수많은 푸쉬킨의 초상화 중에서 OrestKipresnky가 그린 이 초상화가 가장 유명하다.

결혼반지를 끼기 위해 가녀린 손을 힘없이 들어 올린 꽃같이 어여쁜 어린 신부. ‘틀림없이 행복해진다’라는 꽃말을 지닌 은방울 꽃 화관을 쓴 그녀의 표정은 역설적이게도 어둡고 허망해 보이며 퉁퉁 부은 눈은 지난밤 그녀가 겪었을 괴로움을 나타내 주고 있다. 그 옆에서 어린 신부와 결혼식을 올리고 있는 사람은 칠십은 족히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 그는 결혼식에 대한 긴장감 때문인지 겸연쩍음 때문인지 다소 상기된 얼굴로 소녀의 얼굴을 곁눈질로 쳐다보고 있다. ‘불평등한 결혼식’이라는 제목의 이 그림은 19세기 당시 빚을 갚지 못하는 농노의 딸이 재력을 앞세운 부유층에게 노리개로 팔려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던 것을 표현하고 있다. 오른편에서 팔짱을 낀 채 이 부조리한 결혼식을 준엄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젊은 남자는 화가인 VasilyPurikev 자신이다. 19세기 중후반이 되면서 러시아 사회는 다가오는 혁명을 앞두고 사회 전체가 들썩이게 되었다. VailyPerov가 그린 Troika는 이런 변화의 시대에 기득권자에게 희생당하는 가난한 민중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러시아어로 3을 뜻하는 트로이카는 혁명 전 에는 삼두마차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 그림 속에서 로이카는 칼바람이 뼛속까지 에일 것 같은 겨울에 현실의 마차를 끄는 세 아이를 의미한다. 부모의 품에서 따뜻하게 자라나야 할 아이들이 내몰린 차가운 한겨울 추위와 바람이 시간과 화폭을 뛰어넘어 보는 이의 마음을 먹먹하게 한다. 트레차코프 미술관은 ‘모스크바 강 건너편’이라는 뜻을 지닌 자 모스크보레치예 지역에 있다. 미술관을 둘러보고 나와 직선으로 조금 걸어 나오니, 시원한 강바람과 함께 야경이 아름다운 모스크바 강이 나타났다. 러시아인과 수 세기에 걸친 질곡의 역사를 함께 했을 모스크바강의 유유한 물결처럼 앞으로의 트레차코프 갤러리에는 밝고 희망적인 그림들이 전시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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