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아

추위가 물러가고 설렘과 기대를 안고 출발하는 계절의 시작, 봄.

선비들이 아끼고 정성을 들였던 문방사우처럼 나를 풍요롭고 충만하게 해주는 친구를 발견하는 시간이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 대체 봄은 언제 오나, 오기는 할까 했었는데, 소리도 없이 스리슬쩍 우리 곁으로 찾아왔다.

1년은 열 두 달로 짜여있고 각각의 달은 저마다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데, 그 중 3월은 희망과 기대, 설렘을 가득 품고 있다.

새해는 1월로 시작하지만 실질적인 출발을 알리는 3월은 힘들었던 마음도 새출발이라는 명분 아래 위로와 용기를 주며 의욕과 에너지를 심신에 가득 채워준다. 사람뿐 아니라 동식물들도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활동을 시작하고, 추위를 견디며 모아두었던 기운들을 마음껏 방출하며 색색이 아름다운 꽃들을 피어낸다.

얼마 전 대형 문구점에 가니 아이들과 같이 온 부모들로 매우 북적였다. 신학기 이벤트들을 보고 있노라니 그 누구보다 3월을 손꼽아 기다렸던 사람은 이제 막 7세에서 8세가 돼 초등학교 입학한 아이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울러 아이들이 초롱초롱 눈을 굴리며 무엇을 살까 고민하는 학용품들을 보니 이번 달 주제는 무엇으로 할까 했던 고민이 선조들의 학용품이 라고 할 수 있는 문방사우로 정해지며 해결됐다.

글방의 네 친구 문방사우

‘문방사우(文房四友)’는 글자 그대로 ‘글방의 네 친구’를 말한다. 종이(紙), 붓(筆), 먹(墨), 벼루(硯)가 주인공으로 문방사보(文房四寶), 문방사후(文房四侯)라고도 한다. 우리가 흔히 문방구라고 하는 곳은 조선 시대 남자들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랑방의 다른 표현이 문방인데, 선비들이 글을 읽고(문,文) 공부하는 방(방,房)에 꼭 갖추고 있어야 할 물건(구, 具)이라는 뜻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먼저 옛날의 종이는 닥나무, 삼 등을 재료로 직접 만들어 사용했는데, 특히 닥나무로 만든 한지는 두껍고 질기고 오랫동안 변하지 않아 대나무, 마로 만든 중국의 종이보다 훨씬 우수했으며, 중국에서 온 사신들이 선물로 많이 가져갔다.

그리고 종이 위에 글을 쓰기 위한 필기구에 해당되는 붓은 동물의 털로 만들었는데 토끼털, 여우털, 양털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들었지만 족제비털로 만든 황모필이 가장 유명했다고 한다. 굵기, 소재, 용도, 가격 등이 제각기 다른 수 십 개의 붓이 진열된 화방에 가면 붓의 종류가 얼마나 다양한지 알 수 있다. 끝이 딱딱한 펜과 달리 털로 만든 우리의 붓은 부드럽고 유연해 힘 조절에 따라 글씨의 굵기를 조절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그래서 글씨뿐 아니라 그림도 그릴 수 있으며 붓글씨를 일컫는 서예(書藝)는 예술의 한 장르로서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잘 그린 그림을 보면 완급 조절을 하며 화려하게 손을 놀리는 화가의 진중하면서도 역동적인 모습이 느껴지곤 한다.

2018년 트렌드 중 하나가 ‘워라벨(work and Life Balance)’이다. 힘들고 지친 사회생활을 이겨낼 수 있는 나만의 시간, 취미생활을 가지는 이들이 점점 느는 가운데 운동, 외국어공부, 악기들을비롯해 서예를 배우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오로지 손에 쥐고 있는 붓에만 집중을 해야 하므로 상념에서 벗어나 한 가지에만 몰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붓글씨를 쓰는 사람들을 보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다. 벼루 열 개와 붓 천 자루를 썼다는 추사 김정희는 붓글씨는 땅을 딛고 있는 발끝에서, 즉땅의 힘으로 나와야 된다고 하였다.

손을 떨지 않고 팔에 힘을 주고 몸의 중심인 허리를 곧게 하기위해서는 위로는 어깨와 가슴을 펴고 아래로는 발끝에 힘을 주어야 하므로, 글씨를 쓴다는 것은 온몸의 기운과 정신이 깃든 행위라는 의미이다.

붓으로 남긴 흔적, 필적(筆跡)을 통해 그 사람을 파악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붓으로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는 먹이 있어야 하는데, 먹은 나무나 기름을 태울 때 나오는 그을음을 아교와 섞어 굳게 만든 것으로, 특유의 향(묵향)과 색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먹을 갈기 위해서는 벼루가 있어야 했는데 도자기, 기와 등으로 만든 것도 있지만 주로 돌로 만들었다.

옛 선비들은 사흘 동안 세수는 안 해도 벼루는 씻었다는 말이 있다. 벼루를 자주 씻고 먹을 자주 갈아줘야 아교가 엉키지 않고 먹이 메마르지 않으며 뿌옇게 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어느 하나 쓸모없는 것이 없고 떼려야 뗄 수 없는 글방의 네 친구들. 문방사우라는 단어 자체는 옛스럽게 느껴지지만 센스 있는 작명이 아닐 수 없다.

겨우내 묵은 먼지를 털어내는 대청소를 하며 버릴 것들은 버리고 정리를 통해 나에게 필요한 것들만 남겨놓고, 글방 네 친구들 처럼 나를 즐겁고 행복하게 해주는 친구들이 무엇인지 곰곰이생각해보자.

애지중지 여기는 피규어가 될 수도 있고, 시간과 정성을 들여 가꾸는 텃밭이나 화분이 될 수도 있다. 많지 않더라도 내 삶을 여유롭고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에 신경을 쏟다 보면 지친 심신이 힐링이 되고 따뜻한 바람과 함께 밝은 기운으로 충만해질 것이다.

자료제공 아리지안(www.arij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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