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뉴스=김태일 기자] 글로벌 할랄 시장의 확대 속에 필리핀이 새로운 경쟁자이자 파트너로 부상하고 있다. 무슬림 인구 20억 시대, 소비의 윤리성과 안전성이 강조되면서 할랄(Halal) 제품은 더 이상 종교적 제약을 넘어 ‘신뢰할 수 있는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식품·화장품·건강기능식품을 중심으로 한 수요가 비(非)이슬람권에서도 가파르게 증가하며 전 세계 할랄 시장은 2027년까지 약 1조 8,900억 달러(약 2,600조 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가운데, 필리핀 정부가 ‘할랄 수출국’ 전략을 공식화하고 수출 주도형 산업으로서의 할랄 생태계 육성에 본격 착수했다. 2023년 발표한 ‘할랄산업 발전 전략계획(2023–2028)’은 단순 종교적 수요를 넘어, 산업 차원에서 식품, 관광, 화장품, 물류, 제약 등으로 확장하는 구조적 전환을 담고 있다.
KOTRA 마닐라무역관은 "필리핀 정부는 할랄 산업을 미래 수출 전략의 핵심축으로 설정하고, 식품을 넘어 관광·화장품·물류 등 연관 산업까지 포함한 생태계 조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라면서 "말레이시아, UAE 등과의 인증 상호인정 협정 추진, 중소기업 대상 인증비용 지원, 다바오·잠보앙가 등 지역 기반 거점 육성을 통해 구조적 기반을 강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책적 정비와 수요 기반 확대는 필리핀이 향후 ASEAN 내 할랄 산업의 교역·생산 허브로 자리잡을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 전략으로 키우는 ‘할랄 수출국’ 구상
필리핀 산업통상부(DTI)는 2025년까지 할랄 제품 수출액을 전년 대비 2배로 확대하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세웠다. 특히 미국, 한국, 일본, 터키 등 비무슬림권 내 ‘프리미엄 할랄’ 수요 증가에 발맞춰 적극적인 해외 마케팅 및 엑스포 참가를 병행 중이다. 사우디 할랄 엑스포 현장에서는 1억 페소 이상 규모의 계약을 성사시키며 초기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국가 할랄산업개발사무국(NHIDO)을 출범시키며, 인증제도 통합, 수출지향 제품군 육성, 중소기업 참여 확대 등 전 주기적 지원체계도 갖췄다. 특히 말레이시아 JAKIM, UAE ESMA 등 주요 인증기관과의 상호인정협정(MRA)을 통해 필리핀산 할랄 제품의 국제 시장 진입 장벽을 낮추고 있다.
‘할랄 관광’ 중심 다바오, 산업 생태계로 진화
지방정부와 관광부도 이에 호응하고 있다. 다바오시는 중동 직항노선 확대를 계기로 ‘할랄 관광 거점 도시’로 부상 중이며, 호텔·레스토랑 인증 확대, 관광 셰프 교육 등 지역 친화 전략을 펼치고 있다. 2025년 6월 개최되는 ‘필리핀 할랄 관광 무역 엑스포’는 BIMP-EAGA 외교사절과 글로벌 바이어가 참여하는 대형 교류 행사로, 청년층을 중심으로 한 인식 확산과 산업 참여 유도도 병행된다.
청년 주도 스타트업·중소기업 약진…OEM 제안도 증가
민간 부문도 활발하다. NHIDO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할랄 인증을 획득한 민간 기업 수는 전년 대비 27% 증가했으며, 이 중 63%가 종업원 수 50인 이하의 중소기업이다. 지방도시에서는 할랄 식자재 유통사, 레스토랑, 화장품 제조 스타트업이 늘고 있으며, 국제 인증기관과의 연계를 통해 직접 수출을 겨냥하는 전략도 뚜렷하다.
현지에서 할랄 간편식을 제조·유통 중인 J사는 “한국 식품은 품질이 높다는 인식이 있어, 할랄 인증만 받으면 수출 가능성이 크다”면서, “OEM·공동개발 제안이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즉, 필리핀은 ‘경쟁자’이자 ‘생산 파트너’로서의 이중 역할을 할 수 있는 위치에 놓여 있는 것이다.
한국 기업, 소비시장 아닌 ‘전진기지’로 활용해야
전통적으로 K-푸드, K-뷰티는 동남아·중동 시장에서 브랜드 충성도가 높고, 품질 프리미엄이 작용하는 시장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할랄 인증 장벽과 물류 구조상 직접 진출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필리핀을 ‘소비시장’이 아닌 ‘생산·수출 전진기지’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업계 관계자는 "필리핀 현지 인증을 활용한 OEM 생산, 혹은 현지 스타트업과의 합작법인 설립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중동 시장으로 진출하는 데 효과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라면서 "필리핀 정부가 중소기업 인증비용을 보조하고, 국제 인증 호환성을 높이고 있는 지금이 진입 적기"라고 분석했다.
이어 "필리핀의 할랄산업 육성은 단기적으로는 한국 기업과의 경쟁을 심화시킬 수 있지만 보다 장기적으로는 공급망 다변화, 글로벌 인증 공동 대응, 공동 브랜드 전략 등에서 협력 가능성이 크다"라면서 "ASEAN 내 할랄 시장이 통합적으로 재편되는 흐름을 고려할 때, ‘필리핀을 동남아·중동을 잇는 허브’로 활용하는 전략적 제휴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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