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뉴스=최선재 기자] 식약처의 중앙 IRB(중앙임상시험심사위원회) 확대 시행을 둘러싼 논란이 가중된 모습이다. 기존의 중앙IRB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데 이를 확대할 경우 또 다른 문제가 파생될 것이란 지적이 제약업계 곳곳에서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팜뉴스는 지난  '식약처 ‘중앙 IRB’...제약사들은 ‘왜’ 반기지 않을까보도의 후속 기획으로, RA(제품 인허가 전문가) 업계의 목소리를 더욱 구체적으로 전한다. 

중앙IRB 공식 홈페이지 전면 사진
중앙IRB 공식 홈페이지 전면 사진

# 중앙 IRB의 모태는 공동 IRB, 새로운 제도? NO!

IRB는(Institutional Review Board) 임상시험심사위원회의 약자다. 피험자(임상시험 참가자) 대상의 임상시험을 윤리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실시하기 위해 임상 계획서 및 시험 관련 중요 사항을 심사하는 곳이다. 의료인과 비의료인 등으로 구성된 수십명의 IRB 위원들이 전국 곳곳의 대형 임상시험 실시기관(병원) 내에 포진한 이유다.

식약처 임상 승인을 받아도 실시기관 내의 IRB ‘허들’을 넘지 못하면 임상시험 진행이 어렵다. 그만큼 IRB 과정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식약처가 코로나19 치료 후보물질에 대한 임상을 승인해도 제약사는 또 다시 각 병원의 IRB를 통과해야 비로소 임상시험이 가능하다. 

중요한 사실은 식약처 승인 과정에서 임상시험 계획서에 대한 ‘보완’ 지적이 나오듯이 병원 IRB에서 임상시험계획서 등의 서류가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도 ‘보완’이 나온다는 점이다. 제약사들의 임상시험은 그만큼 늦어진다. 중복심사의 우려도 상존한다. 

그래서 식약처는 지난해 7월 30일 서울대병원 등 40개 병원(임상실시기관)이 참여한 중앙 IRB 출범을 알렸다. 당시 식약처는 중앙 IRB를 “대규모 다기관 임상시험시 기관별 IRB에서 각각 심사하지 않고 중앙IRB에서 한 번에 통합 심사하는 제도”로 정의하고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등의 신속한 임상시험 진입 지원”이 명분이었다.

하지만 ‘각각 심사하지 않고 한 번에 통합 심사한다’는 내용은 애초에 사실이 아니었다. 중앙IRB를 통과해도 해당 결과를 병원 IRB가 수용할 법적 의무를 부여하지 않아 미완의 제도로 자리 잡은 탓이다. 식약처 측은 “그럼에도 중앙 IRB가 제 기능을 하고 있다”고 항변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이 전하는 현실은 다르다( 중앙IRB 확대시행, 제약사들은 왜 반기지 않을까 보도 참고)

더구나 중앙IRB 제도는 새로운 제도가 아니다. 2007년 식약청 시절 임상시험의 다기관, 다국가 형태 증가로 중복 심사를 피하기 위해 공동 IRB를 도입했다. 당시 임상시험실시기관장의 협의를 거쳐 공동으로 임상시험심사위원회를 개최할 수 있도록 ‘의약품 안전 등의 관한 규칙’을 개정했다. 더구나 일정 조건 하에 제약사들은 ‘신속심의’ 요청도 할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도입된 ‘중앙IRB’ 가 ‘신속’ 그리고 ‘공동’이 핵심인 기존 제도의 틀을 그대로 가져왔다는 뜻이다. 중앙IRB를 통과하면 병원 IRB를 신속하게 통과할 수 있다는 명분을 제약·바이오업계가 새롭게 느끼지 않는 배경이다.

# 제약업계 “임상 빨라질 것이란 기대는 이미 꺾였다”

업계 분위기는 암담하다. 기존의 문제점을 개선하겠다고 선보인 제도가 과거의 형태를 답습한 것은 물론, 중앙IRB를 통과한 건조차도 병원 IRB에서 막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이유에서다. “중앙IRB를 거치면 더욱 빨리 임상에 진입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꺾인 이유다.

팜뉴스는 해당 문제점을 수차례 보도해왔지만 오히려 식약처는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에서 전체 질환으로 심사 대상을 확장했다. 업계 대상 공청회 등 공론화 과정도 없었다. 중앙IRB에 대한 업계와 식약처 사이의 인식차가 더욱 커져가고 있는 배경이다. 

대형 제약사 임원은 “중앙IRB 통과와 상관없이 개별 IRB에서는 여전히 과거와 똑같이 한다”며 “회사 입장에서는 중앙IRB 하느라고 시간을 낭비하고 손해만 보고 있다. IRB 과정을 두 번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지금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데 다른 질병으로 확대되면 문제점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전했다.

물론, 애초에 중앙IRB 제도를 활용하는 것은 제약사 의지에 따른 ‘선택’이다. 하지만 업계는 식약처의 홍보 내용에 따라 중앙IRB 제도를 신뢰했다. 하지만 오히려 부메랑으로 돌아왔다는 게 문제다. 아래는 앞서 임원의 말이다. 

“코로나19 관련 임상의 경우 중앙 IRB가 끝날 때까지 개별(병원) IRB를 받아주지도 않는다. 이는 더 큰 문제다. 임상실시기관에서 IRB 신청 접수조차 안 받는 것이다. 여기에 중앙 IRB를 끝내면 개별 IRB에서 또 다시 시간을 한참 보낸다. 현행 제도의 옥상옥(屋上屋) 규제부터 해결하는 것이 우선 아닌가”

# 중앙IRB 통과했는데 병원IRB ‘정규심의’ 또 Waiting!

업계의 목소리는 ‘앓는 소리’에 그치지 않는다. 중앙IRB 통과 이후에도 병원 IRB의 중복심사가 이뤄지면서 전체 임상이 지체된다는 점 이외에도 또 다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병원 IRB의 정규심의가 특정 날짜에 이뤄진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S 병원 IRB ‘정규 심의’ 일자는 매월 2번째 수요일이다. 회의가 한 달에 한번 열리기 때문에 여기서 보완사항을 지적받으면 제약사들은 다시 그 자료를 보완해서 제출한 뒤 다음 심의가 열릴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물론 주당 1회씩 열리는 ‘신속심의’ 제도도 있다. 하지만 “이미 허가된 연구의 허가 기간 내에 사소한 연구변경” 등의 일정 조건이 붙는다. 신속심의는 서면으로 회람을 돌리는 경우도 많아서 제약사 입장에서 안정적인 제도가 아니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중앙IRB를 비교적 빠른 속도로 통과해도 그 결과를 병원IRB에서 수용하지도 않는데다, 정규심의 등 병원 특유의 IRB 형식도 수월하지 않아 더욱 시간이 지체된다는 것이다. 식약처 지금의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있다는 목소리가 업계에 파다한 배경이다.

식약처가 배포한 질의응답 내용 중 캡처
식약처가 배포한 질의응답 내용 중 캡처

# 병원 IRB 위원의 중앙IRB 참여 도움? NO!

이뿐만이 아니다. 중앙IRB는 병원 IRB 위원들을 참여시키는 방식을 도입했다. 식약처 중앙IRB 질의응답집은 “개별 시험기관 IRB 위원은 중앙IRB 위원을 겸임할 수 있다”며 “아울러, 중앙IRB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위원은 중앙IRB 심사 결과 등을 개별 IRB에 설명하는 등 중앙IRB와 개별 IRB간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협조 부탁드린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개별(병원) IRB 위원의 중앙IRB 참여로 제도의 실효성이 높아져야 한다. 하지만 병원IRB 인적 구성이 정규심의와 신속심의 과정에서 또 다시 바뀐다는 것이 업계 입장이다. 중앙IRB에 참여한 지역 IRB 위원이 소통 노력이 무용지물일 수 있다는 얘기다.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병원 IRB 인원은 5명 이상 위원으로 구성하고 그 분야의 전문가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며 “그런데 구성이 임의로 바뀐다. 중앙IRB에 참여한 위원이 병원 IRB에서 참가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병원 IRB 위원이 중앙 IRB에 참여한 의미가 퇴색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같은 문제가 총체적으로 누적되고 있다”며 “다국적 임상을 하면 우리 정부 뿐 아니라 해외 정부는 물론 해외의 IRB를 전부 거친다. 임상 프로토콜을 전 세계적으로 진행하면 전부 뜯어고칠 수가 없다. 그런데도 국내 병원 IRB에서는 중앙IRB를 무리 없이 통과한 사안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한다. 글로벌 임상 일정 전체가 늦어지고 있는 배경이다. 식약처는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지 묻고 싶다”고 덧붙였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이 시각 추천뉴스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