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뉴스=최선재 기자] 식약처는 코로나19 치료제 개발 속도를 높이기 위해 제약업계를 대상으로 고(go)-신속 프로그램, 개발집중지원협의체, 중앙IRB 등 다양한 종류의 지원책을 마련해왔다. 업계에 따르면 이중 신속프로그램과 협의체는 그동안 제 기능을 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중앙IRB(중앙임사심사위) 제도에 대한 업계의 시선은 회의적이다. 중앙 IRB는 행정절차의 중복을 피하기 위해 다기관 임상시험을 통합한 시스템이다. 하지만 또 다시 중복 심사가 이뤄지면서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이 지연되고 있다는 전언이 들린다. 

‘고go-신속 프로그램’은 지난해 4월 식약처가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개발 촉진을 위해 도입한 신속 심사 제도다. 약물 재창출에 의한 코로나19 치료제 후보물질 임상 심사 기간을 통상 30일에서 7일로 줄이고 신물질을 15일로 단축하는 것이 제도의 취지다. 

‘개발집중지원협의체’는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을 돕는 제도로 임상 3상에 진입한 국내 개발사의 애로사항을 해소하기 위한 협의체다. 식약처는 그동안 두 제도가 ‘국산 1호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을 지원하고 독려해왔다고 홍보해왔다.

그렇다면 현실은 어떨까. 

익명을 요구한 제약사 임원은 “식약처가 신속 프로그램을 통해 빠르게 치료제 리뷰(검토)를 해주고 있다”라며 “예전에는 영업일 기준 30일이 신약 임상 승인 기간이었다. 보완사항이 나오면 더욱 많은 시간이 걸리는데 보통 한번은 나온다. 그러면 통상 90일이 흐른다. 하지만 지금은 7일이다. 보완이 없을 때를 전제한 것이지만 기간이 상당히 단축된 것은 사실”이라고 평했다.

그러면서 “국내 제약사들은 아무래도 해외보다 임상 디자인 전체를 끌고 가는데 역량이 부족하다”라며 “식약처는 전 세계의 약물을 리뷰한 데이터와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전부를 공개할 수 없지만 임상 디자인 영역에서 1차 평가변수(Primary endpoint), 2차 유효성 평가 변수 (Secondary endpoint) 설정에 대해 구체적인 조언을 해주고 있다.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고go-신속 프로그램’과 '개발집중지원협의체'가 업계의 ‘합격점’을 받은 것. 

하지만 규제과학 전문가로 불리는 제약업계 'RA(Regulatory Affairs)'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식약처가 최근 도입한 중앙IRB 제도가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의 허들로 작용하고 있다는 하소연이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치료제 임상 승인 이후 임상 오퍼레이션(관리) 단계에서 제약사가 넘어야 할 허들이 존재한다”며 “과거에는 임상실시기관, 즉 병원(개별 의료기관)마다 임상시험윤리위원회(Institutional Review Board, 이하 IRB)를 통과해야 실제로 임상이 가능했다. 하지만 최근 식약처가 중앙IRB를 통과하면 각 병원의 개별 IRB를 신속히 끝낼 수 있다는 취지의 제도를 만들었는데 제대로 시행이 안 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식약처는 7월 30일 서울대병원 등 40개 병원(임상실시기관)이 참여한 중앙 IRB 출범을 알렸다. 당시 식약처는 중앙 IRB를 “대규모 다기관 임상시험시 기관별 IRB에서 각각 심사하지 않고 중앙IRB에서 한 번에 통합 심사하는 제도”로 정의했다. 

명분은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등의 신속한 임상시험 진입 지원”이었다. 개별적으로 이뤄진 IRB 심사를 통합 심사 체계 시스템으로 바꿔서 행정절차 중복을 피하기 위한 일환이었다. 

예를 들어 한 제약사가 14개 병원에서 대규모 임상 시험을 진행할 때 한 곳의 IRB에서 승인을 받지 못하면 전체 임상 일정이 느려지거나 임상 디자인 전체를 다시 손봐야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중앙IRB를 통과하면 병원IRB를 더욱 신속히 통과할 수 있도록 만든 이유다. 

하지만 제약사들이 식약처가 대안으로 내놓은 중앙 IRB를 통과해도, 개별 병원이 IRB 심사 중 ‘스톱’을 외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 업계의 지적이다. 

앞서의 RA 관계자는 "예를 들어 A 병원이 하나의 임상실시기관이고 B 병원이 두번째, C 병원이 세 번째라면 코로나19 치료제의 경우 중앙IRB를 통과하면 이것을 조선시대 마패와 같이 제시해서 ABC 병원이 '진행해도 좋다'고 하면 좋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하지만 지금은 개별 병원들은 ‘빨리 심사하겠지만 쉽게 통과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이는 식약처의 의도한 것과 전혀 다르다. 임상 오퍼레이션이 지체되고 치료제 개발이 늦어지고 있다”라고 밝혔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중앙 IRB 제도는 7월 30일 40개 병원의 참여로 시범 운영 중이지만 일부 병원(임상실시가관)은 이번 명단에 없다. 특정 병원을 중심으로 중앙IRB를 시행해왔기 때문에 일부 제약사가 임상 오퍼레이션 과정에서 차별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이유다.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을 독려하기 위한 제도가 오히려 제약사들의 신약 개발 의지를 저해하고 있다는 뜻이다.

더구나 위드 코로나 정책이 본격화하고 백신의 돌파감염이 일어나면서 국산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의 중요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중앙IRB 제도가 본래 취지대로 작동해야 제약사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 규제과학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앞서의 제약사 임원은 “식약처도 나름의 사정이 있기 때문에 전적으로 책임을 묻기는 곤란하다”며 “하지만 중앙 코로나19 치료제가 중앙IRB를 통과하면 일단 우선 임상의 문을 열어주고 추가로 보완할 것이 있으면 추후 확인하는 쪽으로 제도를 고쳐야 한다. 애초에 이를 권고사항으로 규정한 점이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백신이 광범위하게 보급되면 치료제 개발이 물 건너갈 수 있다”며 속도가 중요한 긴급 상황이다. 계주로 비유하면 주자들이 바통을 주고 받을 때 제대로 받았는지 확인하고, 또 주었는지 확인하는 국가는 질 수 밖에 없다. 이미 늦었기 때문이다. 바통을 자연스럽게 이어받는 나라가 승자가 된다. 언제까지 이런 제도를 고수할 것인가”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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