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뉴스=최선재 기자] 식약처가 최근 중앙임상시험심사위원회(중앙IRB) 심사 대상을 전체 임상 시험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가운데 제약업계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업계에서는 중앙IRB가 ‘옥상옥’ 규제로 작동하는 현실을 바로잡지 않고 이를 전체 질환으로 확대할 경우 제도의 취지가 더욱 몰각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식약처는 지난해 7월 30일 서울대병원 등 40개 병원(임상실시기관)이 참여한 중앙 IRB 출범을 알렸다. 당시 식약처는 중앙 IRB를 “대규모 다기관 임상시험시 기관별 IRB에서 각각 심사하지 않고 중앙IRB에서 한 번에 통합 심사하는 제도”로 정의하고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등의 신속한 임상시험 진입 지원”이 명분이었다. 

지난 19일 식약처는 중앙 IRB 심사 대상을 현행 코로나19 치료제·백신, 항암제에서 전체 임상시험으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시범 운영 불과 5개월 만에, 임상 심사 대상을 전체 질환으로 확대한 것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다른 질환도 다기관 임상이 많은 상황이기 때문에 행정절차의 효율성을 위해 심사대상을 늘렸다”고 취지를 밝혔다.

하지만 업계의 분위기가 이상하다. 중앙IRB 확대 시행을 반기기보단, 오히려 현행 제도를 향한 비판 목소리만 가득하다.

업계 관계자는 “‘중앙IRB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업계에 퍼진 공공연한 사실”이라며 “임상연구계획서 등 서류가 중앙IRB(임상시험윤리위원회)를 통과해도 여러 병원(기관) IRB에서 보완을 내는 경우가 허다해서 임상 진입 속도가 더욱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분위기가 좋지 않은데 확대 시행 얘기가 나오니, 환영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본지는 “제약사 발목 잡는 ‘중앙IRB’”를 통해 제약사들이 임상 허가 이후 해당 계획서가 중앙IRB를 통과해도 병원 IRB에서 또 다시 중복심사가 이뤄지면서 코로나19 관련 신약 개발 과정이 지체된다고 보도했다. 특히 각 제약사의 제품 인허가 담당(RA) 관계자들은 중앙 IRB의 현실이 팜뉴스 보도 당시에 비해 더욱 악화됐다고 전했다. 

식약처의 개선 의지가 없어 중앙IRB 제도가 이미 ‘옥상옥(지붕 위에 지붕)’ 규제로 자리잡았다는 것. 

다른 업계 관계자는 “중앙IRB를 하면 개별 IRB를 빨리 통과할 수 있다는 것이 현행 제도의 취지”라며 “하지만 여전히 중앙IRB 제도를 통과해도 개별 IRB에서 깐깐하게 리뷰를 해서 추가 자료를 내라고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중앙IRB를 마패로 해서 개별 IRB에서는 신속 심사로 통과시켜야 하는데 개별 IRB에서 과거에 하던 것처럼 똑같이 심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제약사 입장에서는 시간을 더욱 허비하는 중이다”며 “IRB 과정을 두 번 거치게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중앙 IRB는 이미 그런 ‘옥상옥’이 돼버렸다. 병원 IRB는 윤리 심사가 고유한 권리이기 때문에 생략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중앙IRB 심사가 약사법상 권고 사항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정부는 고작 '중앙IRB를 통과했으니 절차를 빨리 진행해달라'고 부탁하는 공문을 내려보내는 수준이다”라고 덧붙였다.

일선 제약사들은 중앙IRB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지만 식약처가 오히려 심사 대상 질환을 확대하고 협약 기관을 대폭 늘리면서 ‘거꾸로’ 행보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이뿐  만이 아니다.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뛰어든 제약사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중앙IRB가 또 다른 형태의 규제로 작용하고 있는 이상, 이를 확대할 경우 중앙IRB를 기피할 것이란 예측도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중견제약사 임원은 “중앙 IRB를 통과해서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개별 병원의 IRB에서도 통과가 돼야 하는데 너무 늦어져서 ‘도대체 왜 그러느냐’고 하면 중앙IRB를 하면 개별 IRB를 생략해도 좋다든지, 특이사항이 없으면 며칠 내에 통과시킨다든지, 하는 법적 강제화 조치가 없다는 설명을 듣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 번이라도 중앙IRB과정을 경험해 본 회사들은 알 것”이라며 “임상 진입 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해 중앙IRB를 선택했는데 오히려 시간이 더욱 지체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같은 문제를 고치지 않고 전체 질환으로 확대 시행하면 제약사들은 점점 중앙IRB 기피하고 개별IRB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식약처가 의욕적으로 도입한 중앙 IRB가 사문화될 수 있다는 얘기”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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