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량신약은 단순 제형 변경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 임상 현장에서 환자 순응도를 높이고 입원률을 낮춰 의료비를 절감하는 중요한 혁신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약가정책은 이러한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대표 사례가 2014년 보건복지부의 개량신약 약가 우대정책 축소다. 이후 개량신약은 오리지널 대비 소폭 인상된 가격만 인정받으며 사실상 ‘형식적 혁신’으로 취급됐다.
현재 제도에서는 복합제 약가 산정 시 구성 약제의 단순 가중평균 방식이 적용된다. 복약 편의성과 의료비 절감 효과가 있어도 약가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
심평원이 발표한 최근 개선안—평가기간 단축, 제네릭 등재 전까지 가산 유지—은 절차상 개선일 뿐, ‘왜 이 제품이 더 비싸야 하는가’에 대한 근거 기반 가치평가 틀은 여전히 부족하다.
이제 필요한 것은 단순 가산이 아니라 가치 기반(Value-based) 약가제도의 본격 도입이다. 순응도 개선으로 입원율이 감소한 근거가 있다면, 그 사회적 편익을 약가에 반영해야 한다.
건강보험공단은 지난해부터 리얼월드데이터(RWD) 기반 약가 재평가 모델 연구용역을 시작했다. 개량신약이 실제 현장에서 부작용을 줄이고 의료비를 절감했는지를 데이터로 검증하고, 이를 약가에 반영하는 방식이다.
가치 기반 평가가 자리 잡으면, 실질적 개선을 이룬 제품이 정당하게 보상받고, 명목상 변경만 있는 제품은 자연스럽게 걸러지는 구조가 된다.
두 번째로 필요한 것은 성과연동형 약가제도(Outcome-based pricing)다. 기존 항암·희귀질환 치료제에만 적용되던 위험분담제(RSA)를 개량신약으로 확대해 초기 일정 가산 후 실제 성과가 목표에 미달하면 환급하는 방식을 적용해야 한다.
이는 이미 영국·독일·호주 등에서 복합제와 서방정에 적용되는 현실적 모델이다. 한국이 개량신약에도 적용하는 것은 새로운 시도가 아니다.
세 번째는 공급 안정성 반영이다. 코로나19와 원료의약품 수급 불안 상황에서 국내 제약사들이 개량신약 중심으로 필수약품 공급을 유지한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 공중보건 기여도는 약가 산정 시 별도 점수로 반영돼야 한다.
네 번째는 제네릭 등재 후 약가연동 방식 합리화다. 현재는 제네릭 등장 시 오리지널과 개량신약 모두 일률적으로 가격이 인하된다. 혁신적 개선을 이룬 제품도 ‘제네릭 등장’이라는 외부 변수로 가격이 하락한다.
앞으로는 개량신약 성능·효과가 검증된 제품에 대해 제네릭 등재 시 차등 인하율을 적용해야 한다. 미국 FDA의 ‘디퍼런셜 인센티브 모델(DIM)’과 유사한 방식이다.
다섯 번째는 심평원의 근거 요구 기준 투명화다. 개량신약 약가신청 단계에서 어떤 임상자료와 경제성평가 수준이 필요한지 명확히 공개해야 한다. 불투명하면 연구개발 투자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복지부·심평원·제약사·의료계·환자단체가 참여하는 상설 협의체를 만들어 평가 기준을 정례적으로 조정하고 공개해야 한다. 예측가능성이 높아야 지속적 R&D가 가능하다.
개량신약은 신약처럼 ‘임상·기술적 도약’을 상징하지 않지만, 현실 의료의 효율성과 환자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개선한다. 이제는 절차적 개선을 넘어 임상·경제성 기반 가치 평가·성과연동·공급안정 반영이라는 3대 원칙을 약가제도에 정착시켜야 한다. 그것이 환자에게 더 나은 치료를 제공하고, 산업에 지속 가능한 혁신동력을 부여하는 현실적 해법이다.
개의 댓글
댓글 정렬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