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핵심기술 제도의 본래 목적은 국가 안보와 국민 생명, 미래 전략적 자산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시대가 변함에 따라 법과 제도도 현실을 반영해야 함은 법치/민주국가의 대전제다. 급변하는 바이오 환경 속에서 톡신 균주를 여전히 핵심기술로 묶어 두는 것은 목적과 수단이 뒤바뀐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균주란 자연계에 존재하는 미생물 자원 중 하나이며, 특정 균주만이 독점적 가치를 갖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전 세계 기업들이 주로 활용하는 Hall A 타입 톡신 균주는 국제적으로 쉽게 확보 가능한 자원이다. 그럼에도 이를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하는 것은, 보편적 자연 자원을 인위적으로 독점적 지위에 올려놓는 법적 왜곡이다.
핵심 문제는 기업 활동의 자유가 제한된다는 점이다. 국가핵심기술 지정 이후, 기업들은 해외 기술 협력이나 수출 과정에서 산업부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하며, 그 과정에서 평균 수개월의 지연이 발생한다. 세계 시장이 분 단위로 움직이는 바이오산업에서 수개월의 지연은 곧 치명적 손실로 이어진다.
법적 관점에서 규제는 최소한으로 정당화되어야 한다. 헌법이 보장하는 직업 선택의 자유와 기업 활동의 자유를 제한하려면 중대한 공익적 필요와 합리적 비례성이 요구된다. 그러나 이미 생화학무기법, 전략물자 통제, 약사법, 감염병예방법 등 다양한 안전 규제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균주까지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하는 것은 과도하고 중복된 규제다.
철학적으로도 기술은 보호가치와 공유가치 사이의 균형 위에 서야 한다. 인류 공통 자원인 균주를 국가핵심기술로 고착시키는 것은 보호를 넘어 ‘기득권의 영속화’를 정당화하는 장치가 된다. 이는 정의가 아닌 독점이며, 보호가 아닌 배타적 특혜를 의미한다.
실제 업계 조사에서 82% 이상의 기업이 균주 지정 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국가핵심기술 제도가 특정 소수 기업의 이익 수호 장치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균주 지정은 산업 생태계의 다양성을 억압하고 후발 주자의 진입을 차단하며, 공정 경쟁 원칙과도 충돌한다.
기술 경쟁력의 본질은 균주 자체가 아니라, 정제·배양·공정·제형화 기술 등 후속 개발 능력에 있다. 국제무대에서 승패를 결정하는 것은 이미 알려진 균주가 아니라, 이를 고도화된 의약품으로 상용화하는 능력 곧 다양한 치료/미용적 적응증 확보다. 균주를 국가핵심기술로 묶어 두는 것은 원석을 금괴라 주장하며 금고에 가두는 것과 같다.
국제 경쟁 환경도 중요하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자유롭게 균주를 활용해 신제품을 개발하는데, 한국 기업만 규제에 묶여 있다면 국가 경쟁력 손실로 이어진다. 한쪽은 자유로운 환경에서 날개를 펼치고, 다른 한쪽은 족쇄를 차고 뛰라는 격이다.
균주 해제를 반대하는 측은 안보와 안전을 이유로 든다. 그러나 이미 다층적 법체계가 이를 엄격히 관리하고 있으며, 국가핵심기술 지정이라는 중복 규제는 불필요하다. 필요한 것은 균주 자체가 아니라, 공정과 제품화 과정에서의 안전 기준을 철저히 감독하는 체계다.
결국 국가핵심기술 제도는 시대 변화에 맞춰 재검토되어야 한다. 톡신 균주는 더 이상 국가가 독점적으로 보호해야 할 핵심이 아니다. 이제 기업들이 자유롭게 경쟁하고 혁신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할 때다. 균주 지정 해제만이 K-바이오가 세계 무대에서 도약할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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