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뉴스=최선재 기자]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죽는다"라는 유명한 속담이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돌이 누군가의 생사를 가르는 돌멩이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신중히 행동해야 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유명 속담을 인용한 이유가 있다. 복지부가 올해 '약재 급여 적정성 평가' 기준을 사전 예고 없이 바꾼 이후 업계에서 나오는 목소리를 종합해보면, 제약사들의 처지가 속담 한마디로 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최근 복지부와 심평원이 주최한 '약제 급여 적정성 평가' 설명회 이후 "(정부가) 무심코 던진 돌(재평가 기준 변경)에 개구리(제약사)는 죽는다"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만큼 업계는 이번 평가 기준 변경을 상당히 무겁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그렇다면 업계가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의도는 무엇일까. 내년부터 적용된다던 기준이 올해부터 적용될 경우 업계는 어떤 피해를 입을까. 팜뉴스는 지난 약제 급여 '재평가' 기준 변경 '날벼락', 업계 분위기 '암담'에 이어 업계 목소리를 후속으로 전한다. 

# 제약사, '임상적 유용성' 입증 못하면 '수백억' 매출 손실 

시계를 되돌려보자. 

지난해 3월 4일, 복지부는 "건강보험 약제 급여적정성 재평가 계획 공고"를 냈다. 

'2023년' 재평가 대상 약제로 레바미피드, 리마프로스트알파덱스, 옥시라세탐. 아세틸엘카르니틴염산염, 록소프로펜나트륨, 레보설피리드에피나스틴염산염, 히알루론산나트륨점안제 등 8개 성분을 발표했다. 

청구금액(3년 평균) 기준으로, 적게는 200억에서 많게는 2000억을 훌쩍 넘고, 수십 곳의 제약사가 판매 중인 약제가 대부분이다.

재평가를 통해 급여에서 퇴출되면 수백억의 매출 손실이 발생한다. '재평가 기준'이 늘 화두로 떠오르는 이유다. 

해당 공고에 따르면 재평가 기준은 세 가지다. 임상적 유용성, 비용효과성, 사회적 요구도에 따라 순차적으로 평가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최우선 트랙은 '임상적 유용성'이다. 임상적 유용성을 인정 받지 못하면 재평가 여정이 험난하기 때문이다.
 

# 업계 "교과서 수재시 임상 유용성 인정된다"고 믿었다

때문에 제약업계 관계자들은 당시 "임상적 유용성' 재평가 기준을 면밀히 들여다봤다.

복지부는 "임상적 유용성"의 1차 평가방법으로 "교과서, 임상진료지침, HTA(Health Technology Assessment) 보고서 등 검토한다"고 밝혔다.

여기서 교과서는 "심평원 근거문헌활용지침 및 학회 추천 교과서"다.

임상진료지침은 "학회 추천 임상진료지침"이다. 복지부는 이어 "교과서 및 임상진료지침은 최근 5년 이내 발간된 자료에서 선정함을 원칙으로 함"이라고 부연했다.

HTA보고서는 "정부 관련 또는 비영리 기관 수행 평가 보고서, 코크런(Cochrane) 자료 등"을 말한다. 

2차 평가방법은 "임상연구문헌"을 토대로 이뤄진다고 전했다. "SCI, SCIE 등재 학술지에 게재된 RCT(무작위배정 임상시험) 문헌 검토" 방식으로 진행된다. 

특히 업계는 해당 약제가 '교과서'에 '수재'됐다면 임상적 유용성 입증을 낙관해왔다.

콜린알포세레이트 성분을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재평가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적어도 업계가 교과서 수재 등1차 기준을 완벽히 입증한다면 복지부와 심평원이 학술지에 게재된 RCT를 보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왔다. 

그동안 제약사들이 교과서 수재 사실을 입증하려고 필사적으로 자료를 준비해서 제출해온 까닭이다. 
 

게티
게티

# 교과서에 있어도 RCT를 보겠다고? 

하지만 복지부는 지난 5월 30일 느닷없이 뜻밖의 발표를 했다. 

복지부는 임상적 유용성 관련 용어 명확화를 이유로 '1차 평가'를 '의학적 권고'로, '2차 평가'를 '임상효과성'이란 단어로 바꿨다. 

여기까지는 업계도 수긍했다. 하지만 다음 문장이 문제였다. 

복지부는 "2024년 약제 급여적정성 재평가 대상 성분을 선정하고, 재평가 방법을 개선하여 2023년 급여적정성 재평가를 추진한다"며 "평가의 합리성을 제고하기 위하여 의학적 권고 평가시 문헌의 질적 수준을 종합적으로 고려토록 하였다"고 덧붙였다.  (약제 급여 '재평가' 기준 변경 '날벼락', 업계 분위기 '암담 참고)

'의학적 권고'를 평가할 때도 '문헌'을 보겠다는 것이다.

이는 곧 각종 학회 추천 교과서에 약제에 대한 임상적 유용성을 언급해도 별도로 RCT를 면밀히 검토하겠다는 것으로 업계는 이해했다. 

지난 6월 14일 복지부가 공고한 "2024년 건강보험 약제 급여적정성 재평가 계획" 속에 명시된 '의학적 효과성'과 '임상효과성'이란 키워드들이 당장 올해 하반기 재평가를 앞둔 약제에 적용된다는 뜻이다. 

더구나 이전에 기준으로 자료 제출을 마친 상태였기 때문에 업계가 느끼는 당혹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교과서 수재로 1차 평가를 통과하더라도 RCT 등 임상 문헌을 바탕으로 종합적 평가를 다시 받는다는 불안 때문이다.

# 심평원 "RCT는 원래 봤어, 이전과 같다" 

때문에 업계 관계자 대다수는 최근 열린 '약제 급여 재평가 설명회'에서 한 제약사 관계자가 제기한 목소리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교과서에서 임상적 유용성이 인정되면 2차적으로 임상 문헌을 보지 않았을 텐데 이제는  임상적 유용성이 교과서에서 충분히 인지가 된다고 하더라도 문헌(RCT)을 보겠다는 것 아닌가. 이는 결코 사소한 변경이 아니다. "

하지만 심평원 평가실 관계자(부장)은 이같은 지적에 대해 "원래 저희는 교과서에서 임상적 유용성이 있거나 추천되더라도 RCT를 평가해왔다"며 "모든 교과서에는 레퍼런스(참고 문헌)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교과서에서 충분히 지지가 됐는데 RCT가 없는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대답했다.

이어 "학회에서 충분히 지지된 내용을 교과서에 실을 때에는 충분한 근거 없이 싣지 않는다"며 "교과서, 임상 진료 지침이 1단계이고 2단계로 임상 문헌으로 넘어가겠지만 1단계에서도 종합 평가가 들어간다. 학회는 RCT에 대한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추천한다. 어떤 평가방법으로 하든, 결과는 동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게티
게티

# 업계 "이전과 전혀 달라" 결국 우리는 돌 맞은 '개구리' 처지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 다수는 심평원 측의 입장에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 자료를 제출한 제약사들이 멘붕에 빠졌다"며 "교과서 수재 입증에 총력을 다했던 제약사 입장에서는 청천벽력같은 일이 벌어졌다. 의학적 권고가 충분하기 때문에 임상적 유용성 '있음'을 낙관했던 회사들이 바뀐 기준에서는 '효과 불분명' 또는 '없음'이 나올 수 있다는 리스크를 안게 됐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올해 재평가 대상 중 일부 약제는 그동안 잘 써왔고 학회에서도 추천하고 있지만 RCT가 약할 수 있다"며 "의학적 권고 영역을 충족하더라도 RCT를 종합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일부 제약사들 입장에서는 중대한 리스크다. 더구나 자료를 이미 제출해놓고 정부가 기준을 변경했기 때문에 마땅한 대응책도 없을 것이다. 정부 입장에 우리가 절망하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업계의 지적에도 복지부와 심평원은 일관된 입장이다. 결과에 영향을 좌우할 만큼의 평가 기준 변경이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정부가 무심코 던진 돌의 파장이 어마어마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하반기 재평가 결과가 나왔을 때 정부가 무심코 던진 돌을 제약사들 전부가 맞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마저 엿보이고 있다.

한편, 팜뉴스는 이번 재평가 기준 변경과 관련된 업계 또 다른 목소리를 연속으로 보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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