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뉴스=노병철 기자] 국무조정실이 최근 보툴리눔 톡신의 국가핵심기술 지정 과정에서 규개위 심의 기록이 단 한 건도 없었다고 확인하면서, 그동안 규제 심의의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해온 산업통상자원부 생명공학 분야 전문위원 2명의 장기 연임 체제가 여론의 중심에 섰다.
제약업계에서는 "절차 누락도 심각한 문제지만 그 절차를 사실상 좌지우지하던 구조 자체가 문제"라며 제도 전면 개편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핵심은 명확하다.
한국은 국가 전략기술 규제를 비공개 전문가 2~3명이 10년 이상 장기 점유하는 구조를 유지해 왔지만, 미국·EU 등 주요국은 제도적으로 이런 독점 구조를 허용하지 않는다.
미국 연방 규제 검증 체계(OIRA)는 규제 영향이 클수록 '경제·법률·기술 전문가+시민단체·소비자 대표+산업계 이해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심의 참여 주체가 자동으로 확대되는 다층 구조를 채택한다.
이 4개 축이 동등한 비중으로 참여하며, 특히 ‘Peer Review Bulletin’ 규정은 특정 전문가가 심의를 사실상 독점하는 행태를 명시적으로 금지한다.
미국 체계에서는 한국처럼 동일 인물 2명이 10년 넘게 전략기술 심의를 좌우하는 구조는 제도 설계 단계에서부터 차단된다.
EU 규제심사위원회(RSB)는 한국과 달리 고정된 장기위원이 존재하지 않는다.
구성은 시민사회+중소기업+산업 전문가+경제·법률 전문가 등으로 다각화되며, 반대·찬성 의견이 모두 공개되는 투명성 중심 체계다.
EU에서 규제는 전문가의 독점물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 과정이라는 대원칙을 세우고 있어, 한국처럼 ‘비공개 장기 전문위원 체제’는 애초에 성립할 수 없다.
그동안 국정감사에서 지적돼 왔듯이 산자부 생명공학분야 전문위원회는 명단 비공개, 장기 연임 관행으로 특정인 독점화, 토론·반대 의견 비공개, 산업계·시민사회 참여 부재 등 네 가지 폐쇄성을 동시에 갖고 있었다.
그 결과, 고위험·고영향 기술 규제를 소수 전문가의 개인적 견해가 좌우하는 구조가 고착됐다.
업계 일각에서는 "3년 넘게 규제 개선을 요청할 때마다 산자부 장기연임 전문위원 2명이 반복적으로 반대 의견을 제출해 정책이 사실상 움직이지 않았다"며 "특정 개인 견해가 국가 규제의 준거가 된 셈"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학계·산업계에서는 한국형 국민배심원제를 시급히 도입해 산자부 생명공학분야 전문위원회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형 국민배심원제 기반 전문위 모델은 '전문위원 + 시민배심원 + 산업계 + 법률·경제 전문가'가 정해진 비율로 공동 심의를 하며, 장기 연임은 금지(연속 2회 제한)됨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
시민위원은 무작위 추출제이며, 의견서·근거 자료는 전면 공개되며, 국가핵심기술 규제는 시민·전문가 공동 과반 가결제 적용으로 합리적 민주주의 원칙을 전면 도입해야 한다.
이 모델은 미국의 다층 심의 구조와 EU의 공개성 원칙을 한국적 환경에 맞게 압축·재설계한 것으로, 심의 독점·정보 불균형·장기 고착화를 근본적으로 차단한다는 장점이 있다.
행정법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심의 누락이라는 단발 문제가 아니라, 심의를 결정해온 구조 자체에 대한 경고"라고 해석한다.
한 법조계 인사는 “절차적 하자는 재심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구조적 독점은 개혁 없이는 반복된다.
국민 참여형 구조로 전환하지 않으면 어떤 전략기술 규제도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아울러 "기술 규제는 전문가의 판정이 아니라 국가 리스크 관리이자 사회적 합의 과정이다. 산자부 이번 톡신 사태를 계기로 10년 장기 연임 전문위원 2명을 즉각 해임시키고, 국가핵심기술 선정제도를 근본적으로 다시 설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이 지적했다시피 이번 톡신 사태는 단순한 행정 누락 사건이 아니다.
한국 규제체계가 오랫동안 안고 있던 구조적 문제, 즉 폐쇄성·독점·장기 연임·비공개가 한꺼번에 드러난 사건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규제의 정당성은 절차에서 나오고, 절차의 신뢰는 심의 구조에서 나오며, 구조의 투명성은 시민 참여에서 나온다"며 "이 원칙을 제도화하지 않는 한, 이번 사태는 앞으로 다른 기술 분야에서도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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