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계절이 어느새 가을로 접어듭니다. 학생들의 옷차림, 긴팔 카디건과 앵클부츠 차림의 실루엣이 가을 햇살에 오버랩되며 계절은 더 완연해집니다. 짧아진 해가 뉘엿거릴 무렵, 학교 강의를 마치고 내리막 골목길을 걸어갑니다.
그늘진 골목의 정적을 깨치는 배달 오토바이 소리, 고양이의 무심한 눈빛, 아직은 하릴없는 잉어빵 주인장의 가게를 지나 잰걸음으로 남영역을 향합니다.
저는 1호선의 승객입니다. 사실 지하철이라 해야 할지, 국철이라 해야 할지 좀 혼란스럽습니다. 제가 갈 곳은 도심 속 지상 구간이고, 서울역에서 청량리까지는 지하철이기도 하고, 또 예전에는 인천행을 국철이라 부르기도 해서 말이죠.
다만 변함없는 한 가지는 바로 한강이 주는 고마움입니다. 초등학교 때 당시 놀이공원과 동물원이 있었던 '창경원'에 갈 때도, 훗날 대학생이 되어 통학할 때도 1호선에서 보는 한강의 풍광은 하루의 온갖 잡념을 잊게 하는 지우개였습니다.
공식 명칭 '서울 지하철 1호선'은 1974년 8월 15일에 첫 운행을 시작했습니다. 청량리와 구로를 잇는 한국 최초의 지하철이자 산업화의 상징이었던 이 노선은 반세기가 지난 오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저출산 고령화라는 인구 피라미드의 축소판인 셈이죠.
선글라스를 낀 채 유튜브를 보는, 안경을 이마 위로 고정한 채 문고판을 읽는, 꼿꼿이 묵주를 손에 쥐고 기도하는 분들까지, 1호선에는 예사로움과 평범함을 넘어서는 다양한 고령층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현상에 대한 해석을 추론하기 전에, 고령층의 세분화를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하철 1호선의 고령층은 크게 보면 '노령 세대(1955년 이전 출생자)'와 '전기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 출생자)'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 노령 세대의 노스탤지어가 이 노선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청량리·동묘·종로에는 전통시장, 약국·의료기기, 병원이 밀집해 있고, 젊은 시절 만남과 연애의 추억이 서린 곳입니다.
둘째, 전기 베이비붐 세대의 청춘이 이곳에서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1980년대 학창 시절을 보낸 그들에게 종로·충무로·대학로는 음악다방과 서점, 영화관과 소극장, 카페가 즐비했고, 뜨거운 민주화의 열기와 낭만이 공존했던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세월은 흘렀고, 이제 청춘의 무대는 홍대와 강남, 성수로 이동했습니다. 1호선에서 2호선으로 바뀐 셈입니다.
종로3가역에 자리한 탑골공원은 이 변화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탑골공원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아니, 그보다 고령층의 성지가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요?
사실 과거 명칭은 '파고다(pagoda: 불탑) 공원'이었습니다. 다만 서울시가 영어식 표현 대신, 이 일대가 예로부터 '탑골(원각사지 10층 석탑이 있는 마을)'로 불려 온 것에 착안하여 1992년에 우리말로 이름을 변경하게 된 것이죠.
자료에 따르면 탑골공원으로 고령층이 모이기 시작한 것은 대략 1990년대 이후라고 합니다(「한국 최초의 도시공원이 노인문화 중심지로…」, 경향신문, 2022).
그런데 1998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무료 급식소가 들어서면서 도시 빈곤 노인의 집결지가 되었고, 동시에 음주, 주취, 무기력 등 부정적 이미지가 덧씌워졌습니다. '노인의 성지'라는 말 뒤에 '노혐(怒嫌)'의 낙인도 따라붙은 것입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탑골공원을 그저 낡은 이미지로만 남겨둘 수는 없습니다. 브랜딩의 범주, 도시 브랜딩 측면에서 탑골공원을 세대 간 교류와 통합이 가능한 커뮤니티 공간으로 리포지셔닝해야 합니다.
물론 지난 2000년대 초 공원 성역화 작업으로 디자인을 전면적으로 바꾸고 재개장한 이후, 과거의 모습에서 많이 변화해 온 것도 사실이지만, 여전히 '노인 전용 공원'이라는 인식에 갇혀 있습니다.
소위 '힙'한 실버세대가 오게끔 해야 합니다. 인근 세운상가 재개발 계획에 공원을 기점으로 그들이 마음껏 오고 즐길 수 있는 건강·문화·교육·여가가 결합한 '실버 스트리트'를 구축해야 합니다.
이러한 물리적 환경, 서비스스케이프(servicescape)를 기반으로 모든 세대가 함께 어울리는 도시 공동체의 장, 즉 세대 조화의 장(Generational Harmony Hub)으로 새롭게 변모해야 합니다.
지하철 1호선은 한국의 근현대사를 싣고 달려왔습니다. 이제는 고령층의 일상만이 아니라, 모든 세대가 함께 미래를 모색하는 희망의 전철이 되어야 합니다. 탑골공원이 세대 통합의 상징으로 거듭난다면 초고령사회는 위기가 아니라 분명 기회로 다가올 것입니다.
글. 숙명여자대학교 실버비즈니스학과 이충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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