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여자대학교 이충우 교수
숙명여자대학교 이충우 교수

한 학기 성적 마감을 하고 나면, 어느새 방학으로 접어듭니다. 시간이 참 빠르게 흘러갑니다. 저만 그럴까요. 지난 학기는 강의 준비와 글쓰기, 강연 등으로 이래저래 바쁘게 보냈습니다. 어떤 범부가 그러더군요, "당신이 바쁘다는 건 그 누군가는 한가로워지는 거라고." 시간의 소중함과 감사의 마음을 다시 새깁니다.

노년기에 시간은 청년기의 시간과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비록 시간의 객관적 흐름은 같을지라도, 주관적 경험과 의미 부여 방식은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죠. 로라 카스텐센(Laura Carstensen)의 사회정서적 선택이론(socioemotional selectivity theory)에 따르면, 노년기의 실버세대는 시간의 유한성을 인식합니다. 만일 생애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진다면, 여러분은 어떤 가치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아무래도 가족, 연인, 친구와의 의미 있는 관계에 더 집중하지 않을까요. 분명 그 안에서 정서적 만족을 우선시하지 않을까요.

노년기를 '자아 통합 대 절망(integrity vs. despair)의 시기'로 설명한 에릭 에릭슨(Erik Erikson)은 이를 잘 설명해 줍니다. 노년기는 삶, 즉 자신의 생애를 회고(reflection)하는 시기입니다. 또한 그 시간을 재해석하면서 한편으로는 이를 통합하려는 심리적 욕구가 강해지는 시기입니다. 이처럼 노년기의 시간은 과거의 시간과 현재가 교차하면서 회고적 시간 감각(retrospective temporality)이 주를 이룹니다.

상대적으로 어린 시절과 청년기에 비해 시간의 체감 속도가 달리 느껴지는 이유도 결국 살아온 시간의 총량 때문입니다. 영국의 수리생물학 교수인 크리스티안 예이츠(Christian Yates)는 아인슈타인이 주장한 시간의 상대성 개념을 확장하여, 물리적 시간뿐 아니라 지각된 시간(perceived time)을 인지하는 것 역시 상대적임을 수학적으로 설명합니다. 우리가 감지하는 시간은 우리가 이미 살아왔던 기간의 비율에 좌우된다는 것인데요. 예를 들어, 10살 어린이에게 1년은 지금까지 살아온 10년 인생의 10분의 1이지만, 70세 성인에게 1년은 70분의 1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살아온 시간의 총량과 비교했을 때, 같은 1년이라도 노년기에는 상대적으로 더 짧게 느껴지게 됩니다.

혹시 동창회 모임에 참석해 보셨나요? 참석한 친구들의 면면을 보면 살아온 시간의 총량을 여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같은 세대(cohort)이지만 노화(aging) 측면에서 마치 종단(longitudinal) 연구의 결과를 보는 것 같습니다. 이차적 노화(secondary aging) 양상, 가령 모발·골격·피부 등의 신체적 변화를 보면, 실제 나이 이상으로 보이는 친구가 태반입니다. 자리가 파할 무렵, 한두 명씩 젊어 보이는—엄밀히 말해 관리를 잘한—친구에게 비결이 뭐냐며 봇물 터지듯 질문이 넘칩니다.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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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드베리와 심콕(Stephan Sudbury & Howard Simcock)은 외모를 통해 자기가 느끼는 나이(subjective age)와 실제 나이(chronological age)의 차이에 주목하면서, 젊게 보이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성과 심리적·사회적 변수가 주관적 나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였습니다. 연구 결과, 실버층은 자신을 실제 나이보다 6~12년, 평균적으로 10년 더 젊게 인식하였습니다. 또한, 자신을 더 젊게 인식할수록 건강, 행복감, 사회적 활동 참여 등에서 만족감이 높고,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결론적으로 실버마케팅에서 STP(Segmentation·Targeting·Positioning) 전략의 핵심은 연대적 나이로 타겟팅하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 측면의 주관적 나이를 기준으로 세분화해야 합니다. 또한 여전히 능동적이고 세련되며 활동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하여, 젊은 세대에는 아주 멋(hip)지게 실버층에는 긍정적인 자기 인식을 심어줘야 합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왜 실버층은 실제 나이보다 더 젊게 인식하는 것일까요? 건강할수록 노화의 진행을 거부하는 방어기제가 강하게 발현되고, 전통적 실버 세대가 지닌 사회적 낙인(ageism)과 고정관념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는 아직 노인이 아니다'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욕망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욕망은 하고 싶은 일이고, 노년기에 욕망은 시간의 유한성에 비춰보면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Francis Scott Key Fitzgerald)의 단편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읽어보셨나요. 저는 "시간의 출발선"이 키워드라고 생각합니다. 실버층 스스로가 시간을 어떻게 인식하느냐가 삶의 질과 행동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시간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글. 숙명여자대학교 실버비즈니스학과 이충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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