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뉴스=김태일 기자] 일본의 편의점 산업이 단순한 소매 유통 채널을 넘어 지역사회의 핵심 생활 인프라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업계의 트렌드가 아닌, 인구 감소와 고령화, 만성적인 인력난이라는 일본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전환의 일환이다.
일본프랜차이즈협회에 따르면, 2025년 3월 기준 일본 전역에 약 5만5792개의 편의점이 운영 중이며, 이들은 전국을 촘촘하게 잇는 ‘생활망’으로 기능하고 있다. 대도시는 물론 농촌과 도서 지역까지 커버하는 물류망과 점포망을 바탕으로, 일본의 편의점은 이제 의료, 금융, 행정, 건강관리 등 다양한 기능을 흡수하며 ‘마을의 허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동형 편의점, 고령자의 일상까지 들어가다
고령 인구가 집중된 지방 도시에서는 상점의 폐업과 교통 불편으로 인해 생필품 구입조차 어려운 곳이 늘고 있다. 이에 일본 편의점 업계는 ‘이동형 점포’라는 새로운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패밀리마트가 운영하는 ‘패밀리마트호(ファミマ号)’는 냉장·냉동 설비를 갖춘 트럭으로, 마을회관이나 버스 정류장 등 고령자들이 자주 모이는 장소를 순회하며 도시락, 생필품 등을 판매한다. 이 차량은 단순한 상점이 아니라, 이웃과 안부를 주고받고 사회적 고립을 해소하는 소통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기존 점포 출점이 어려운 지역에도 진입이 가능해지며 새로운 수익 모델로 주목받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B2G 사업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의료·헬스케어 지원까지…건강한 편의점으로의 진화
편의점은 고령화 시대의 ‘건강관리 거점’으로도 진화하고 있다. 로손은 일부 점포를 헬스케어 특화 매장으로 전환해, 간호사나 약사가 상주하는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고객은 편의점에서 혈압을 측정하고 복약 지도를 받을 수 있으며, 약국과 연계한 처방약 수령도 가능해졌다.
이러한 서비스는 편의점이 단순한 쇼핑 공간을 넘어, 일상 속에서 건강을 챙길 수 있는 접근 가능한 의료 창구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AI 무인점포·자동화 발주…만성 인력난에도 끄떡없는 시스템 구축
노동력 부족 문제에 직면한 일본 편의점 업계는 무인화·자동화를 빠르게 도입하며 대응에 나섰다.
로손은 AI 및 센서 기술을 활용한 무인점포 ‘Lawson Go’를 도쿄 도심에 시범 도입했으며, 2024년 11월에는 오사카 지하철 역사 내에도 무인 편의점을 오픈했다. 이들 점포는 고객이 상품을 집으면 자동으로 결제가 이뤄지며, 점원이 없이도 24시간 안정적으로 운영이 가능하다.
패밀리마트 역시 무인 결제 기술 기업과 협력해 ‘터치 투 고(TOUCH TO GO)’ 방식의 테스트 매장을 운영 중이며, 세븐일레븐은 AI 기반 발주 시스템을 통해 날씨, 지역 행사, 판매 데이터를 분석해 자동 발주를 실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인력 의존도는 줄고, 폐기율은 낮아지고 있다.
점포 다기능화로 포화시장 돌파…행정 서비스도 제공
점포 수 5만 개 시대에 접어든 일본의 편의점 시장은 물리적 확장 중심의 성장 전략에 한계를 맞이하고 있다. 이에 업계는 점포 기능을 다변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세븐일레븐은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키오스크를 통해 주민표, 인감증명서, 마이넘버 확인 등 각종 행정 서류를 발급하는 서비스를 도입했다. 특히 시청이나 구청과 멀리 떨어진 도심 직장인들에게 큰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각 지역 특산물을 판매하는 로컬 경제 연계 모델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홋카이도에서는 유제품과 전통 과자를, 와카야마현에서는 지역 감귤을 활용한 자체 브랜드 상품을 판매하는 등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앱과 구독으로 충성 고객 확대…디지털 전환도 가속
디지털 전환 역시 일본 편의점 산업의 중요한 변화 축이다. 세븐일레븐은 ‘세븐앱’을 통해 쿠폰, 전자결제, 주문 서비스 등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며, 고객의 구매 데이터를 바탕으로 개인화된 할인·추천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패밀리마트는 ‘Famipay’라는 디지털 지갑에 정기 구독 모델을 결합해 커피, 건강보조식품 등의 반복 소비를 유도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은 소비자의 재방문율과 객단가를 동시에 끌어올리는 데 큰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KOTRA 오사카 무역관은 "일본 편의점의 진화는 고령화, 노동력 부족, 지역경제 침체 등 구조적 사회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생활 인프라로의 전환이라는 점에서 한국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라면서 "단순한 상품 판매 공간을 넘어 이동형 점포, 건강 지원, 무인 운영, 디지털 기반 서비스 등 다양한 기능을 통합하며 지역사회의 핵심 거점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한국 역시 유사한 사회적 과제를 안고 있는 만큼, 일본 사례는 민간 유통기업과 지방자치단체의 전략 수립에 구체적 참고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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