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여자대학교 이충우 교수
숙명여자대학교 이충우 교수

5월 첫 주의 연휴, 어떻게 보내셨나요? 오랜만에 정동길에서 후배를 만나기로 했습니다. 기분 좋은 햇살 아래 반짝이는 나뭇잎을 보니,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서 구형 자동카메라로 코모레비(木漏れ日: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를 찍는 야쿠쇼 쇼지의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후배를 보자마자 저는 웃으며 “혹시 조상님이 홍길동 할아버지 아니야?” 다짜고짜 물었습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5년 전까지만 해도 저와 함께 근무했던 후배는 이후, 세 곳–스타트업, 대기업, 공공의료기관–의 이직을 거쳐, 다음 달에는 미국의 헬스케어 기업으로 출국하기 때문입니다. 연수지는 뉴욕, 근무지는 하와이, 게다가 영주권까지. 참고로 후배는 간호사 출신으로 미국에서 공부했고 현재 나이는 마흔 중반입니다.

오늘은 실버층의 일자리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워낙 다양한 특성과 변수들이 씨줄과 날줄로 엮여서, 어디서부터 실타래를 풀어야 할지 매우 난감한 주제입니다. 두 가지를 생각해 봅니다. 우선 한국 사회에 만연한 세대 담론 속의 고정관념입니다.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는 경제 성장기의 주역이었지만 이제는 변화와 혁신에 뒤처진 ‘구세대’로, X세대(1965~1980년생)는 개방된 해외 문화를 흡수하며 소비문화의 상징이었으나 지금은 넛 크랙커(nut-cracker) 처지가 된 ‘낀 세대’로, Y세대(1980~1989년생)는 IMF와 리먼 사태로 인한 경제적 불우함을 겪으면서 성장한 ‘냉소 세대’로, Z세대(1995~2005년생)는 사교육비의 정점 속에 성장했으나 미래 불안감에 ‘위축 세대’로 말입니다.

기존의 세대 담론은 세대와 세대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보다 오히려 차이점을 부각하는 데 집중해 왔습니다. 세대 간의 공통점을 이해하려는 사회적 노력이 부족하다 보니, 득실에 따른 이해관계가 얽혀 공존보다는 경쟁을 심화시켜 왔습니다. 결국 일자리 문제도 각 세대에 존재하는 다양한 내부적 특성을 간과한 채 상호 배타적 입장만이 더 첨예해진 상황입니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일하고 싶지만, 원하는 일자리가 없다!”라는 것이죠.

한편, 생애주기 모형에 대해 생각해 볼까요. 과거 인간의 삶의 단계는 ‘놀이-공부-일-은퇴’라는 순차적 생애주기 모형으로 설명해 왔습니다. 시간의 흐름을 선형(linear)으로 살펴본 이 모델은 시효가 지난 산업화 시대의 유물이 되었습니다.

지금처럼 기대 수명이 늘어난 초고령 사회에는 ‘공부-일-공부-일’의 선형적 형태를 여러 번 반복하는‘다중 생애주기’와 ‘일-공부’가 정해진 시기 없이 동시다발적으로 순환하는 루프(loop) 형태를 보이는 ‘순환형 생애주기’, 본캐와 부캐의 역할로 여러 가지 ‘일-일’을 통해 미래를 대비하는 ‘포트폴리오 생애주기’ 등이 훨씬 더 설명력이 높습니다.

이직과 재취업을 위해 일과 공부를 반복 순환하는 생애주기에서 연령 구분은 무의미합니다. 지금처럼 세대 담론이 고정관념을 공고히 할수록 실버층, 특히 고용시장에서 소외된 50대를 위한 일자리는 없습니다. 이 시대는 생물학적 나이의 초월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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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중심에 ‘연령친화(aged-friendly)’의 개념이 있습니다. 이미 2010년 세계보건기구(WHO)는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이 지역사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나이에 상관없이 모든 이에게 존중을 베푸는 세상”을 연령친화라고 천명하였습니다.

이후, 2016년 미국의 기업가인 지나 펠이 소개한 ‘퍼레니얼 세대’도 연령친화와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습니다. 펠은 다년생 식물을 뜻하는 단어 퍼레니얼(Perennial)에 세대 개념을 적용하였습니다. 퍼레니얼 세대는 전통적인 세대 구분을 초월해 지속적 성장과 변화하는 삶을 위한 태도와 행동의 마인드셋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2023년 미국 와튼스쿨의 마우로 기옌 교수도 그의 저서(The Perennials)에서 ‘자신이 속한 세대의 생활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나이와 세대를 뛰어넘는 사람들’이란 뜻으로 퍼레니얼을 언급하였습니다.

연령친화와 퍼레니얼의 사고방식은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세대 간의 경계를 허물고, 나이에 구애받지 않는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데에 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구세대와 낀 세대로 불리는 베이비붐과 X세대에서부터 냉소적이고 위축된 세대라 알려진 MZ세대까지 누구나 이를 동화할 수 있습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최근 개인 브랜딩 혹은 개인의 경력 관리를 다룬 책들을 읽고 있습니다. 동기는 지속할 수 있는 커리어 패스(Career Path)에 관한 관심 때문입니다. 취업, 퇴직과 이직, 전업, 창업 모두 만만한 일들이 아니죠. 인생은 그림과 같아서 한 번 잘못 그리면 지우는 데 시간이 제법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오늘은 실버층의 일자리에 대한 거대 담론이었다면, 앞으로는 소외된 50대가 주도권을 회복하는 방안에 대해 살펴보려 합니다. 시간이 있고 열정과 꿈이 있다면 아직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미국으로 떠나는 후배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글. 숙명여자대학교 실버비즈니스학과 이충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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