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성은아 박사
사진. 성은아 박사

일로프로스트가 중증의 동상에 적용하도록 2024년 2월 FDA의 승인을 받음으로써 최초의 동상 치료제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심하게 동상에 걸린 환자가 손발가락 등을 절단할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동상 치료 중에 이 약을 투여한다.

일로프로스트는 새로운 약이 아니다. 벤타비스라는 상표명으로 폐동맥고혈압에 사용된다. 동상에 대하여도 이미 사용되고 있다. 이 화합물은 말초혈관 확장 작용을 하기 때문에 동상에 걸린 조직에서의 혈류를 원활하게 하여 조직의 회복을 돕는다. 아이코스라는 회사가 얼루민이라는 상표명을 붙여서 이번에 동상치료제로 승인을 받았다.

추운 날씨에 장기간 노출되어 동상에 걸리는 경우는 많지만, 손발가락 등을 절단해야 할 정도로 중증의 동상에 걸리는 경우는 드물다.

이렇게 심한 동상에 걸리는 경우는 극심한 환경에서 장시간 야외 활동을 할 때나 기저 질환 때문에 혈류가 원활하지 않은 사람이 장기간 추운 환경에 노출될 때 등 제한적인 상황에서 일어날 뿐이다. 극심한 동상에 걸리는 환자의 수가 많지 않고, 제약회사의 입장에서는 작정을 하고 임상시험을 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이번에 일로프로스트가 승인을 받을 때에 근거가 된 주요한 자료는 발표된 지 10년이 넘은 논문이다. 프랑스의 몽블랑 산악지대에 있는 병원에서 10여년에 걸쳐서 47명의 동상 환자를 치료했는데, 일로프로스트를 사용한 경우가 사용하지 않은 경우에 비해서 손발가락의 절단을 막는 데에 월등하게 효과적이었다는 내용이다.

일로프로스트는 1980년대에 독일의 쉐링이 개발했다. 체내에서 여러가지 생리 작용을 조절하는 프로스타글란딘과 유사한 물질이다. 혈관 확장 작용이 있고 혈액 응고를 억제한다. 임상시험을 거쳐서 폐동맥고혈압 약으로 2004년에 FDA의 승인을 받았으며, 그 이전인 1990년대 중반부터 동상에 대해서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심하게 동상에 걸리면 조직의 일부가 얼어서 손상을 받지만, 또한 얼었던 조직이 녹는 과정에서도 손상을 받는다. 해동 과정에서 염증이 생기고 혈전 때문에 혈액 공급이 막혀 조직이 괴사한다.

그래서 동상을 입은 조직을 치료할 때에 항염증제와 함께 혈류의 순환을 돕는 말초혈관 확장제, 혈전 억제제나 혈전 용해제 등을 사용한다. 이 때 사용되는 약물들 중의 하나가 일로프로스트이다.

굳이 임상시험에 관한 자료가 아니더라도, 일로프로스트가 중증의 동상에 대해서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약물의 효과에 대한 사례보고 등의 자료가 풍부하다. 적게는 1명에서 많으면 수십 명에 대한 치료의 기록들이다.

극한 환경에서 스포츠 활동을 하다가 동상에 걸린 사람들이 많다. 에베레스트 산을 등반하던 사람, 안나푸르나 지역에서 트래킹을 하다가 눈사태에 갇혀 있던 사람, 캐나다 북부 극지대에서 울트라 마라톤을 한다고 3일 동안 연속해서 뛰다가 온 사람도 있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기초 체력이 강한 30대에서 40대 남자들이지만, 일부 여자 환자도 있다. 고령자, 노숙인, 약물 중독자 등 신체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도 있다.

동상에 걸린 후에 급히 병원으로 이송되어 빠른 시간 안에 치료를 받은 경우도 있고, 현지의 날씨 때문에 이송이 지연되어 며칠 경과한 후에 치료를 받은 경우도 있다.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치료 과정들을 망라한 사례들을 종합해서 분석했을 때 일로프로스트가 심하게 동상에 걸린 조직의 회복을 돕고 손발가락의 절단을 막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오랜 기간을 거쳐 임상적으로 동상치료에 사용되어 오다가 명실상부한 동상 전문치료제로 승인을 받은 얼루민은 약물 개발의 흥미로운 사례이다. 개발자인 아이코스는 2017년에 설립된 회사이니, 얼루민의 승인의 근간이 된 2011년 발표된 임상시험과 직접적인 관련도 없다.

약을 필요로 하는 환자의 수가 많지 않으니 이 약이 그다지 회사에 상업적으로 기여하는 바도 크지 않을 듯싶다. 하지만 이 회사는 전신성 경화증이나 에크모 요법 등에서 말초혈관의 혈류 순환을 돕는 목적으로 일로프로스트를 사용하도록 개발 중이며, 얼루민의 약물 승인은 그러한 노력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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