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뉴스=최선재 기자] 대한민국 사회에서, 직업 끝에 '사(士)'가 붙으면 대접이 달라진다. 판사, 검사, 변호사 등 법조인뿐 아니라 의사, 약사 등 의료인들이 차지한 위치 때문이다. 이들의 판단이 국민 개개인의 생사여탈권에 미치는 영향이 막강하다. 특히 그 영향력은 이들이 지닌 '전문성'에 대한 신뢰에서 출발한다. 

국회 보건복지위에서도 다르지 않다. 전통적으로 의사, 약사 출신 의원들의 질의는 다른 의원들에 비해 수준이 상당히 높다. 특히 일선의 병원과 약국에서 근무한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질문을 던진다. 제21대 국회에서 서영석 민주당 의원, 서정숙 국민의힘 의원 질의 관련 보도가 국감 전후로 쏟아진 배경이다. 

하지만 반대로 '사(士)' 출신이 아니어도, 상당한 실력을 자랑하는 의원들도 있다. 굳이 병원과 약국에서 근무하지 않았어도, 의사·약사 고시를 통과하지 않아도, 존재감이 드러나는 주인공들이 있다는 뜻이다. '국민'을 위한 '국정감사'라는 취지의 걸맞게 민초(民草)들을 대변해왔기에 국감이 끝난 이후에도 여운을 남긴다.

25일 열린 보건복지위 마지막 국감에서는 김영주 민주당 의원의 질의 모습이 그랬다. 그는 제21대 국회 여성 최다선 의원, 국회 부의장을 거머쥔 관록을 토대로 날카로운 질의를 이어갔다. '키 크는 주사' 오남용을 방관한 식약처를 고발하고, '대상 포진 백신' 단가 문제를 외면한 복지부를 질타했다. 그의 생생한 국감 현장을 전한다. 

# 김영주의 창끝, 식약처장 '엉뚱' 해명의 '폐부'를 찌르다

김 의원은 먼저 오유경 식약처장을 향해 "성장 호르몬 제조 바이오 의약품 24종은 식약처에서 단 한 번도 일반인을 대상으로 임상 시험을 한 적이 없다"라면서 "식약처도 효능 효과를 확인한적 없다고 저희에게 보고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최근 3년간 해당 의약품은 대한병원, 일반병원, 성장클리닉 등 전국 의료기관 5761곳에서 1066만개가 처방됐다. 하지만 이중 97%(1035만개)가 질병과 아무 상관없이 일반인에게 비급여로 처방됐다. 성장호르몬 결핍 또는 저신장증 환자들 처방 건수는 30만개로 극소수였다"고 덧붙였다. 

김 의원은 "뇌하수체 성장호르몬 분비 장애, 터너 증후군 등 문제가 있는 아동들에게 필요한 의약품인데 일반 아이들의 '키 크는 주사'로 변질됐기 때문이다"며 "월 70-80만원, 연간 천만원에 가까운 치료비가 드는 것도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 순간 오유경 처장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김 의원은 곧바로 "의약품 허가 취지와 별개로 일반인에게 오남용되고 있다"며 "주사를 맞아서 우리 아이가 1센치라도 큰다면 밥을 굶더라도 주사를 맞히고 싶어하는게 부모심정이다. 그런데 식약처는 그동안 아무 단속이나 관리를 하지 않고 있다"고 일갈했다.

김 의원의 질의에 오유경 처장은 엉뚱한 해명을 했다. 오 처장은 "그동안 온라인 오프라인으로 과대 광고를 점검했다"고 답변했다.

김 의원은 의료기관의 '키 크는 주사' 오남용 문제를 지적했다.

허가 목적 외 사용에 대한 처벌 또는 단속과 관련된 답변이 나와야 하는데, 오히려 오 처장이 광고를 단속 중이라고 핵심에 빗겨간 발언을 이어간 것이다. 

이어 김 의원은 "키 크는 주사도 차별이다"며 "여유 있는 아이들은 맞고 어려운 사람은 못 맞는다. 식약처는 국민들에게 해당 의약품의 오남용 위험성을 알리고 일반이에게 무분별하게 처방하는 부분에 대한 단속을 해야 한다. 식약처장에게 의견을 다시 묻고 싶다"고 밝혔다. 

결국 오 처장은 "모든 의약품은 허가 범위내에서 사용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의료인의 오남용 부분도 있어 복지부와 협력해서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이 의원이 집요하게 질의를 이어가자 결국 오남용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기존의 입장을 수정한 것이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과 김영주 의원이 25일 종합 국감에 임하고 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과 김영주 의원이 25일 종합 국감에 임하고 있다

# 김영주의 데이터,  복지부 장관 '황당' 답변을 부수다

이뿐만이 아니다. 김 의원은 2차 질의 당시 조규홍 복지부 장관을 향해 "대상포진 환자가 매년 70만명 이상 발생하는데 50대 이상 국민이 한 번 걸리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며 "유명 연예인까지 TV 광고를 할 정도로 국민들의 큰 관심사다. 하지만 대상포진 백신은 필수예방 접종 사업에 포함이 되지 않았고 비급여 제품이라서 국민들의 부담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제가 확인해보니, 스카이 조스터주는 가장 저렴한 것이 4만원이고 가장 비싼 것이 23만원이었다"이라며 "조스타박스주 백신은 저렴한 것이 7만원, 비싼 것이 40만원이다. 똑같은 제품인데 접종비 차이가 크다. 비급여 제품이라서 자율적으로 금액을 정하기 때문에 병원마다 다른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정말 로또 복권을 뽑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형편이 어려운 국민은 4만원에 맞을 수 있는 것을 40만원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원인이 무엇인가"라고 질의했다.

이에 대해 조 장관은 "비급여 항목의 경우, 가격 통제가 어렵기 때문에 (가격을) 공개한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앞서 오 처장처럼, 조 장관의 답변 역시 질의의 취지를 벗어난 답변이다.

의료기관마다 같은 대상포진 백신 가격의 널뛰기 원인이 질문의 핵심인데 조 장관은 "백신 같은 비급여 제품 가격을 공개하고 있다"고 황당 답변을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이때 김 의원이 따로 입수한 대상포진 백신 공급단가 데이터(표)가 등장했다.

김 의원은 "표를 한 번 봐달라"며 "조스타박스주 2021년 최소 단가가 9400원인데 올해 9월 최대 단가는 18만원이다. 같은 제품인데 문제가 크다. 기본적으로 납품업체가 시장 가액을 마음대로 조정하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병원마다 자율적으로 접종가를 정하는 이유"라며 "저렴하게 공급 받은 병원도 40만원에 백신 주사를 놔주고 있다. 이는 마치 '예방접종 복불복'으로 국민들이 운이 나쁘면 비싸게. 운이 좋으면 싸게 맞고 있다는 얘기다. 정부가 이런 부분을 반드시 챙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결국 조 장관은 김 의원이 추가 질의 도중 "네"라는 답변을 반복했다.

복지부 장관이 문제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자, 강중구 심평원장도 "가격 차이가 심한 원인을 조사한 뒤 대상 포진 백신 비용 부담 완화를 위한 방법을 강구하겠다"고 답했다.

지영미 질병청장도 "대상 포진 백신이 국가 필수예방접종 사업 포함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김영주 의원은 이력이 독특하다. 170cm의 큰 키를 자랑하는 김 의원은 1973년 실업 명문 서울신탁은행 여자농구팀에 입단한 선수 출신이다. 부상 여파로 선수 생활을 접고 은행원을 하다가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2004년 열린우리당 간판을 달고 여의도에 처음 입성한 것을 계기로 금배지만 네 번을 달았다. 문재인 정부 초대 노동부 장관을 지낸 것은 물론 지금은 국회부의장일 정도로 베테랑 정치인이다. 

그가 거친 직업들은 '사(士)' 출신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김 의원은 국감 때마다 특유의 관록을 바탕으로 남다른 존재감을 드러낸다. 김 의원이 21대 마지막 국감의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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