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장덕규 변호사(법무법인 반우)
사진. 장덕규 변호사(법무법인 반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지난 2월 본회의로 쏘아 올린 여러 공들 중 간호법은 결국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였지만, '의료법 개정안'과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은 무사히 세상으로 나오는데 성공하였다.

이 중에서도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은 요양기관에 환자의 건강보험 가입자격 확인의무 부여, 제약사의 약제비 소송 집행정지 이득 환수 규정 등으로 의약계 구성원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는데, 개정안의 내용 중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았지만 추후 의료기관의 운영에 있어 꽤 큰 영향을 미칠 내용이 있어 이를 본 칼럼에서 조명해 보고자 한다.

현행 국민건강보험법 제57조 제1항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보험급여를 받은 사람·준요양기관 및 보조기기 판매업자나 보험급여 비용을 받은 요양기관에 대하여 그 보험급여나 보험급여 비용에 상당하는 금액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징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해당 조항은 요양기관이 지급 받은 요양급여 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징수한다고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법원은 소위 말하는 요양기관의 부당·허위 청구에 대해 공단이 환수처분을 한다 하더라도 그 비용을 전액 환수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대법원 2020. 7. 9. 선고 2018두44838 판결 등 참조).

해당 사안에서 대법원은 "국민건강보험법 제57조 제1항의 문언상 일부 징수가 가능하므로, 부당이득 환수 처분은 그 범위를 공단이 정할 수 있는 재량행위가 된다"라며 "그런데 요양기관으로서는 부당이득징수로 인하여 이미 실시한 요양급여에 대하여 그 비용을 상환 받지 못하는 결과가 되므로, 그 침익적 성격이 매우 큰 점을 고려하여야 한다"라고 판단하였다.

따라서 의료법 위반의 요양기관이거나 청구가 허위·부당으로 판단된 요양기관이라 하더라도 이 판결에 기초해서 적어도 실시한 요양급여의 대가 일부는 보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이 이와 같이 요양기관의 침익적 사정을 잘 살피라고 판결한 취지가 무색하게, 건보법 개정안은 제57조 제1항을 "그 보험급여나 보험급여 비용에 상당하는 금액을 징수한다"고 바꾸어 재량권 행사 범위, 즉 일부만 환수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애버리고 무조건 부당청구 금액이라고 하면 전액을 환수하여야 하도록 제도를 변경해 버렸다.

이로 인해 개정법 시행 이후로는 의료법 위반 의료기관이든 급여기준을 위반하였거나 부당청구를 한 요양기관이든, 부당청구의 내용, 동기, 비율 등은 무관하게 무조건 요양급여비용 전액을 환수당하게 된 것이다.
 

사진.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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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개정은 '잉크도 마르지 않은' 대법원 판결을 그대로 형해화(形骸化)시킨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사법부가, 그것도 최고 재판소가 내린 법령의 해석이 행정부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하여 법령 자체를 통째로 바꿔버린다면, 삼권분립을 통한 견제와 균형은 무너지게 된다.

물론 요양급여비용은 건강보험 재정에서 지출되는 것으로서 국민들의 건강을 위해 적정하게 사용되어야 하므로, 관계 법령과 요양급여기준을 위반한 비용 청구를 용납할 수 없다는 취지는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공정한 대가 측면에서라면 적어도 요양급여가 실시되었다는 점 자체에 관한 고려 역시 있어야 마땅하다.

국가는 의료기관을 요양기관으로 강제 지정하여 가입자인 국민들에게 그 기준에 맞춘 요양급여를 제공토록 하고 있는바(요양기관 강제지정제), 의료기관은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요양기준에 맞춘 의료행위만을 실시하여야 하고 그에 대해 국가가 정한 대가만을 지급 받을 수밖에 없다.
 

민간이 설립한 의료기관을 국가 정책 목적에 동원하여 무조건 국가가 원하는 진료와 대가만을 강요해 놓고, 국가가 세운 기준을 위반하였다고 그 대가마저 다 빼앗는 꼴이다.

이러한 구조 하에서라면 아무리 의료기관의 요양급여비용 청구가 부당청구로 의율(擬律)된다 하더라도, 그 중에서 요양급여가 실시된 부분에 관한 공정한 대가만큼은 보전해 주는 것이 상식에 부합하지 않을까.

아직은 개정법이 시행되지 않았고 침익적인 법률의 소급 적용은 허용될 여지가 많지 않으므로 지금까지의 청구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을 것이지만, 오는 2023년 8월 20일에 개정법이 시행되면 그 이후의 부당청구는 예외 없이 전액 환수 대상이 된다.

이에 대해 의료기관으로서는 요양급여를 실시하여 가입자의 치료에 기여한 부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대가를 모두 환수당하게 되어 의료기관 측의 피해가 매우 큰 바, 부당이득 환수처분을 당하게 되는 요양기관으로서는 과잉금지원칙 위반을 근거로 재산권과 직업수행 자유권 침해에 관하여 위헌성을 다퉈볼 여지가 있을 것이다.

목적 자체가 부당한 법률은 거의 없다. 수단이 목적을 이루는데 부적합한 법률도 많지 않다.

그러나 종종 어떠한 법률은 달성하고자 하는 공익에만 올인(all-in)하느라 제한되는 사익을 도외시하기도 하고, 어떠한 법률은 그 목적을 위해 민간의 기본권 침해를 최소화하여야 한다는 원칙을 잊기도 한다.

법률은 목적과 수단 외에 공·사익간의 균형과 침해되는 사익의 최소화에도 노력하여야 한다. 이번 개정법의 시행을 앞두고 보건당국의 요양기관 관리 행정에 관하여도 과잉금지 원칙이 유효하게 적용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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